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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성당에서 아름다운 만남(嘉會, 가회)
가회동 성당에서 아름다운 만남(嘉會, 가회)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7.04.10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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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행

김태희와 비가 결혼한 곳으로 유명해졌지만, 이전부터 가회동 성당은 북촌의 터줏대감이었다.
깊은 역사가 깃든 이곳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거룩한 감정은 자연스럽다.
고해를 위해 한옥과 양옥이 교감을 이루는 공간, 가회동 성당을 찾았다.
성당의 이름처럼 곳곳에서 아름다운 만남(嘉會, 가회)의 축복이 있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57 가회동 성당. 길을 걷다 언뜻 보면 성당으로 보이지 않는다. 북촌한옥마을의 풍경 속에 도드라지지 않게 섞여 있기 때문이다.

입구에 다다르자 가회동 성당을 안내하는 표지석과 함께 한옥과 양옥 그리고 배롱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설립 5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표지석은 상주에서 생산된 돌이라 ‘상주석’이라 부른다. 더는 상주에서 이 돌을 생산하지 않아 표지석 자체가 하나의 골동품이 되었다. 예전에 가회동에서 많이 사용했다는 글씨체는 가회동의 과거를 말해준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배롱나무 옆에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보였다. 이렇게라도 성인을 마주할 수 있는 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은 서로 다른 동서양의 디자인 요소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단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선비와 푸른 눈의 외국인 사제가 어깨동무하는 형상’은 가회동 성당의 고유한 정체성을 반영한다. 재건축을 했다지만 곳곳에서 성당의 과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한옥과 양옥 사이 마당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양옥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가 눈에 띈다. 이 돌 십자가는 예전 건물에 있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십자가 아래로는 종탑이다. 1958년 독일에서 주물로 제작된 종은 이전 성전에 있던 것으로, 오랫동안 내버려 둔 탓에 녹이 많이 슬었지만 버리지 않고 손질해 살려냈다. KBS에서 녹음했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종소리는 곧 청아하게 울려 퍼질 것만 같았다.

한옥은 소박한 미가 느껴진다. 무늬만 한옥이 아니라 전통 기법으로 제대로 지었다. 국내 소나무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외국산으로 지으려는 것을 신부님이 막았다는 비화가 있다. 결국, 전국을 뒤져 홍천에서 춘향목이라고 부르는 적송을 어렵게 구했다. 목수들이 자재를 쓰다듬고 감탄을 했다기에 한번 어루만져봤다.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건 느낌 탓이었을까?

건축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다수의 상을 받았다. 작품성이 세간에 알려지며 대목장이 문하생을 데리고 오거나 대학 건축과 학생들이 견학을 오기도 한다.

한옥의 대청마루와 누마루는 활짝 열린 공간이다. 길 건너편에서 대청마루를 통해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듯한 성전 계단을 볼 수 있다.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한옥 풍경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모두에게 개방하고 소통하려는 성당의 섬세한 배려로 성당을 방문한 사람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사랑방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취향을 이것저것 물으며 정성을 담은 커피는 창살에서 들어온 햇살을 만나 풍미를 돋웠다.

중국 북경교구에서 밀입국한 최초의 선교사 주문모(야고보) 신부는 1795년 4월 5일 부활 대축일에 정약종, 황사영 등 초기 신자들과 함께 조선 첫 미사를 집전했다. 그 순간을 재현한 모형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고 있는 모습에서 첫 미사에 대한 설렘과 경건함이 묻어난다. 천주교를 박해하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순교했다. 마침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빛이 이를 위로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사랑방을 나와 성모상 옆 누마루 정자로 향했다. 장독이 있는 뒷마당이 나오고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보였다. 이곳은 옛 돌 제대와 타임캡슐을 두어 가회동 성당의 역사를 하나로 묶었다.

성전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으며 이곳에 온 이유를 곱씹었다. 성전에서는 미사가 거행 중이었다. 미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성수를 손끝에 찍어 성호경을 그었다.

성전 내부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조심스러워 몸가짐을 바로 했다. 신부님이 스페인으로 성당건축 연수를 다녀온 후, 빛의 유입을 예측해 열두시가 넘으면 빛이 십자가 위를 비추도록 창을 설계했다. 그 광경이 신비스럽다고 하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웠다. 대칭과 비대칭이 혼합된 창 역시 독특하게 다가왔다.

운이 좋게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바흐의 코랄이 성전 안을 채웠다. 한 음 한 음 살아 숨 쉬어 인간의 심성을 가장 깊게 울린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로 마음속에서 깊은 파동이 일었다. 고해의 순간이 왔다. 잠시 기도를 했다. 내면에서 이루어진 아름다운 만남을 마무리 짓고 나자 파이프 오르간을 가까이 보고 싶어졌다. 연주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회동 성당의 오르간은 독일의 얀(Thomas Jann)에서 제작한 기계식이라고 한다.

옥상인 하늘정원에 가고 싶었다. 남쪽으로는 남산과 첨단의 현대식 건물이, 북쪽으로는 한옥이 고풍스럽게 보존된 전망은 현대와 과거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일반 관광객의 급증으로 문제가 발생하여 현재는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가회동 성당은 우리 땅에서 첫 미사가 봉헌되고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마지막 황실에서 모두 세례를 받은 곳이다. 1층 역사전시실에서 그 역사를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데,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접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또한 한옥 건축 후 남은 적송을 활용한 기념품이 판매 중인데, 가회동 성당의 일부를 소장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가회동 성당은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 제2코스의 출발지다. 순례자가 아니라도 종교를 초월하여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하지만 진정한 가회(嘉會, 아름다운 만남)를 위해선 이곳이 성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이들의 족적이 있는.


글·사진 [Queen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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