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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의 이정표 세운 이정미 전 헌재 권한대행, 따뜻한 성품 지닌 교육자의 딸
대한민국 역사의 이정표 세운 이정미 전 헌재 권한대행, 따뜻한 성품 지닌 교육자의 딸
  • 박소이 기자
  • 승인 2017.04.16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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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2017년 4월호] 2011년 3월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이정미 전 헌재 권한대행은 임명 당시 49세로 사상 첫 40대 재판관이자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었다.

그는 항상 겸손한 자세와 타인의 입장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소송 당사자와 소통이 뛰어나고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하게 재판을 진행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이정미 전 헌재 권한대행은 누구인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 당일 아침.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출근길에 포착된 헤어 롤 두 개가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인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는 당일, 엄중하고 역사적인 순간에 지극히 사적이고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비정상적인 모습이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줬다.

국민들은 순간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시시각각 배가 가라앉는 그 순간,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강남의 미용사와 메이크업 전문가를 청와대에 불러들여 정성껏 올림머리에 치장하는 바로 그 모습이 오버랩 됐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국가 비상사태나 다름없는 순간에도 외모 관리를 최우선하는 국가 지도자의 모습과 자신의 일에 몰두해 헤어 롤마저 잊어버린, 일하는 여성상이 선명하게 대비됐다. 지난해부터 6개월 가까이 대통령 탄핵 여부를 놓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우리 국민들은 비록 짧은 순간이나마 뭔가 뿌듯한 힐링의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정미 대행은 이날 대통령 탄핵심판 판결문을 차분하게 낭독하며 박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당시 출근하면서 잊은 듯 머리카락에 꽂았던 2개의 ‘헤어 롤’은 92일간 헌재가 쏟은 고민의 상징이 됐다. 당시 이정미 권한대행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결정요지서 초안을 당일 새벽 3시에 받았다고 한다. 7시 50분 출근길에도 차안에서 초안을 검토하고 세심하게 다듬다가 간단하게 말아놓은 헤어 롤의 존재조차 까먹은 채 차에서 내리다가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헤어 롤을 달고 출근하는 그의 사진을 싣고 ‘한국의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투영된 한 순간이었다’라고 보도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법조인

이정미 전 재판관은 1962년 울산 출생으로 마산여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87년 사법연수원(16기)을 수료한 뒤 대전지법 판사로 임관했고 이후 서울가정법원 판사, 서울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이후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냈고 대전고법 부장판사였던 2011년 3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지명을 받아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당시 49세로 사상 첫 40대 재판관이며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었다.

그의 판사 시절 판결을 보자. 그는 “제왕절개 수술의 위험성을 미리 설명하지 않아 산모가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면 의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외에도 임대아파트의 하자 보수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에 대한 판결 등으로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한 법조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항상 겸손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남을 대하고 타인의 입장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선후배 및 동료 법관과 법원 직원으로부터 두루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소속 당사자와 소통이 뛰어나고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하게 재판을 진행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헌재 재판관으로 재직하면서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사건의 주심을 맡았고, 당시 찬성 의견을 낸 바 있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국회선진화법 등 주요 사건에서 다수 의견을 냈으며 형법 간통죄 위헌법률심판에서는 “간통은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혼인의 사회적 제도를 훼손하고 가족공동체의 유지·보호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며 합헌의 소수의견을 냈다.

이정미 전 재판관의 헌재 재판관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017년 3월 10일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었다. 이정미 전 재판관은 1월 31일 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퇴임으로 권한대행을 맡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이끌었고, 3월 10일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그는 재판관 중 가장 어리고 사법연수원 기수도 늦지만 부드러우면서도 때론 과감한 지휘로 헌재 ‘8인 체제’에서의 선고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분한 성품의 교육자의 딸

그의 고향은 울산이다. 여기서 태어나 대현초등학교와 학성여중을 졸업했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보면 울산이 아닌 마산 소재의 마산 여고를 졸업했다. 교육자였던 아버지의 전근 때문이다. 당시 울산은 경남도 소속이었고 아버지가 울산에서 경남 마산의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면서 마산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간 것이다. 아버지는 1980년대 초 울산으로 돌아온 뒤 1986년 울산 대현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어릴 적 이정미 전 대행이 책을 손에서 놓은 법이 없었고 집중력이 좋고 차분한 성격으로 기억한다. 가족들은 추운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면서 가사 일을 도왔던 착한 이정미를 떠올린다.

그는 원래 수학 선생님을 꿈꿨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태(1979년)를 보면서 법조인으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당시 살벌한 유신체제에서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중정부장의 재판은 전 국민들의 관심사였고 진로를 고민하던 그가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따뜻한 성품을 알 수 있는 일화도 있다. 그는 대학 시절 고려대 근처 제기동에서 여학생 전용의 하숙집에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당시 주인아저씨는 자신의 딸이나 조카처럼 하숙 여학생들을 돌봤고 힘든 대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줬다. 졸업 후 소식이 끊겼다가 몇년 전 TV에서 헌재 재판관으로 활동하는 이정미 대행의 모습을 보고 수소문 끝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정미 전 대행은 마침 급히 처리할 일이 생겨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고 연락처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통화를 마쳤는데 이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주인아저씨가 서운하게 생각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연락할 방법을 찾았으나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주인아저씨 이름의 블로그를 발견했는데 이를 단초로 수개월을 수소문해서 간신히 연락처를 찾아냈다고 한다. 35년 전후의 인연도 소중하게 간직하려는 그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법치주의 소신 담은 퇴임사
 
이정미 권한 대행은 당일 재판관 전원 일치의 역사적인 대통령 탄핵 결정서를 낭독한 뒤 사흘 뒤인 13일 6년간의 임기를 마쳤다. 권한대행이 6년간 임기를 마치고 지난 3월 13일 종로구 재동 헌재 청사 1층 대강당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경찰 경호를 받으며 청사에 도착한 그는 그동안 묵묵히 청사로 직행하던 과거와 달리 취재진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서기석 재판관 등 동료 재판관 7명과 헌재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그의 퇴임사도 인구에 회자됐다. 그는 대통령 파면 결정을 두고 “헌재는 바로 엊그제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말한 뒤 “언제나 그랬듯이 헌재는 이번 결정을 함에 있어서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절차를 진행하면서 헌법의 정신을 구현해 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며 소회를 밝혔다. 이어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 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가 남긴 퇴임사 중에서 인상에 남는 문구가 있다.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는 내용이다. 이 구절은 <한비자> ‘유도’ 편에 나오는데 ‘인의 도리는 처음에는 잠깐 즐겁지만 뒤에는 곤궁해진다(仁之爲道偸樂而後窮)’는 댓구가 있다.

여기서 잠깐 이정미 전 권한대행이 퇴임사에서 굳이 한비자를 인용한 배경을 살펴보자. 춘추전국시대에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의 법 지상주의 선언이다. 유가는 임금은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백성은 임금을 부모와 같이 여겨야 한다는 논리로 인과 덕을 통치 원리로 내세웠다.

하지만 법가는 인과 덕은 태평성대의 시대에는 유효하겠지만 급변하는 정치 현실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법을 통치 원리로 제시한다. 세상이 변화하면 도를 행하는 방법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법가의 현실 인식이다.

법가사상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 형태를 지향하는 ‘군주철학’이라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지만 21세기 법치주주와 맥이 닿는다. 이정미 전 대행이 한비자의 내용을 퇴임사에서 인용한 것은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내적으로는 헌법과 법률이 유린되고 사회갈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파면을 계기로 헌법과 법률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평생 법조인으로서 살아온 그의 내면세계를 보는 듯하다.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소신 있는 결정 내려

그가 세간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박한철 헌재소장이 퇴임한 지난 1월 31일 이후다. 그때까지는 9인 헌재 재판관의 한 명이었지만 권한 대행이라는 막강한 역할을 맡은 뒤부터 탄핵 반대 세력들에게 온갖 협박에 시달리는 대상이 됐다. 남편 신혁승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와 관련된 루머도 많았다.

탄핵 심판 과정에서 ‘남편이 통진당원’이라는 식의 악성 루머가 퍼졌으나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을 주도한 것이 남편 신 교수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 신 교수는 그동안 정치활동을 한 적도, 당적을 가져본 적도 없다. 전형적인 흑색선전인 것이다.

본인은 흑색선전이 아니라 노골적인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헌재에 마지막 출근을 했던 3월 13일 박사모(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소름 돋는 글을 잇따라 게재하며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면 ‘이정미는 이제 밖으로 함부로 못 나간다’ ‘오늘 이정미 이X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겁니까’ ‘자연인이 된 이정미 집 앞에 몽둥이 들고 서 있는 국민. 이정미 결국 귀가 못하고 헌재 근처에서 노숙 중’ 등 제목으로 협박성 글을 잇따라 올렸다. 한 회원은 “대통령 탄핵소추 선고날 헤어 롤까지 하고 나와서 대통령과 지지자들을 모욕했다. 집 앞에 집회 신고하고 1년 내내 1위 시위나 대규모 시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영수 특별검사 자택 앞에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과격 시위를 벌였던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가 인터넷 팟캐스트 ‘신의 한수’에 출연해 이정미 전 헌재 권한대행의 집 주소와 단골 미용실을 공개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을 향한 무언의 협박 사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경찰은 당분간 이정미 권한대행을 포함해 재판관 7인의 경호수준을 최고 단계로 높여 24시간 경호에 나서기도 했다. [Queen 2017년 4월호]


글 오일만(서울신문 논설위원) 사진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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