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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호르몬 무방비 시대, 대물림되는 ‘바디버든’
환경호르몬 무방비 시대, 대물림되는 ‘바디버든’
  • 송혜란
  • 승인 2017.04.21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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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불청객, 생리통은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우리 주변에 도산해 있는 환경호르몬이 주범이라면? 최근 방송된 <SBS 스페셜-바디버든 1부 자궁의 경고>는 환경호르몬과 자궁 질환의 상관관계에 대해 파헤치는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환경호르몬 무방비 시대를 사는 우리의 바디버든이 상당했음은 물론, 이는 곧 아이들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었는데…. 결국 답은 유기농 라이프 밖에 없는 것일까?


당신의 자궁은 안전한가요?

직장인 정모(여, 32세) 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 플라스틱 통에 든 샴푸로 머리를 감고, 스킨·로션·크림 등 화학성분이 듬뿍 들어간 화장품으로 얼굴 전체를 도포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는 코끝을 찌르는 향수를 한두 번 칙칙 뿌려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늘 업무가 바쁘다 보니 점심은 가까운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거나, 그도 어려울 땐 화학성분으로 코팅된 일회용 컵에 커피를 담아 훌쩍훌쩍 마신다. 목이 마를 땐 페트병에 든 생수를, 매달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해 온 지는 어언 20년이 넘었다.

지금껏 평생을 화학제품으로 연명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매달 찾아오는 그날의 극심한 고통을 맞이하는 데 진통제는 필수 약품이 된 지 오래다.

환경호르몬과 자궁 질환

지난 2월 26일 TV에서 방송된 <SBS 스페셜-바디버든 1부 자궁의 경고> 편이 장안의 화제다. 이번 방송은 2006년 방송된 ‘환경호르몬의 습격’ 편의 후속 작이다. 방송 당시 생리통이 있는 여고생들은 자궁내막증 위험도 크다는 것을 밝혀 낸 SBS 스페셜 팀은 그때도 사회에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현재, 환경호르몬과 자궁 질환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밝혀졌을까?

스페셜 팀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5개 기관 30명의 연구진과 함께 생리통을 비롯한 자궁내막증 등 5가지 자궁 질환자 41명에게 8주간의 ‘바디버든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바디버든(Body Burden)은 인체 내 특정 유해인자 또는 화학물질의 총량을 말한다. 바디버든이 높을수록 체내에 축적된 유해 물질 또한 상당하는 것을 뜻한다.

우선 이들 몸속의 바디버든을 측정해 보았다. 10년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생리통이 더 심해졌다는 것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희귀 질환이었던 자궁내막증에 시달리는 여성이 늘었다는 것. 우리가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사용하는 모든 화학제품은 바디버든의 원인이 된다. 특히 다양한 화장품 등 화학제품을 더욱 자주 사용하는 여성들이 라이프스타일 상 환경호르몬의 영향에 더욱 취약한 편이다.

가장 먼저 자궁이 공격을 받는다. 환경호르몬 중 상당수가 몸속에 들어와 여성호르몬인 척 작용하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은 이름만 호르몬이지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물질이 결코 아니다. 호르몬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물질이 우리 몸의 정상적인 호르몬의 작용마저 방해해 문제가 된다.

실험에 참가한 여성 모두 바디버든 수치가 심각하게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자궁내막증 등의 자궁 질환은 에스트로겐 의존성 질환으로, 발생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불안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독성의 대물림

여기서 특히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독성의 대물림이다. 방송에서 캐나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베리 코헨은 11세 딸과 함께 바디버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베리 코헨은 딸의 혈액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금지된 화학물질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베리 코헨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자신과 딸의 바디버든 프로젝트 전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가 ‘제브라피쉬’라는 물고기를 이용해 환경 생태 독성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산모 태아 연구도 함께 벌이고 있는 그는 모유 수유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물질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모유 수유를 한다. 그러나 그 모유 수유를 통해 어머니의 바디버든은 줄어드는 반면, 축적됐던 환경호르몬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이에 최 교수는 “환경호르몬은 나이가 어릴수록 언제 노출되느냐가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경고했다.

오가닉 라이프가 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환경호르몬에 무턱 대고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스페셜 팀은 조금이나마 그 대안이 될 방법을 제시했다. 주변의 환경호르몬과 절교를 선언하는 것이다.

8주간의 바디버든 프로젝트에서 여성들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샴푸, 화장품 등까지 모두 친환경 제품으로 바꿔 쓰고, 채소 위주의 유기농 식사를 했다. 짧은 시간에 이뤄진 실험이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만큼 극심한 생리통에 힘들어했던 여성들은 생애 처음 그날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생리 불규칙으로 고통받던 여학생은 생리가 원활해졌을 뿐 아니라 피부도 좋아지고 살도 절로 빠졌다. 방송을 본 후 2~3주간 오가닉 라이프를 실천했던 기자 역시 거칠고 칙칙했던 피부가 먼저 부드럽고 환해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불규칙했던 생리 날짜도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음은 물론이다. 달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하자 이내 두통도 서서히 사라져 가는 기분이었다.

더 나아가 방송은 자연 숲에서 뛰어놀고, 면 생리대를 쓸 것을 권유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님을 인정한다.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아직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없이 많은 환경호르몬의 무차별적 공격에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이를 곧 다가올 위기의 징조로 받아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 우리가 한 번 겪은 바 있는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


[Queen  송혜란 기자 ] 사진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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