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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재조명하는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문학 세계
문학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재조명하는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문학 세계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7.05.04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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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대표되는 작가 이효석. 2018년 평창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이효석 선생의 문학을 국제적으로 재조명해보자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오랫동안 이효석 문학에 대해 활발한 연구를 이어온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대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방민호 교수는 작품을 작가의 삶과 연결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단지 한 작가의 작품 몇 개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을 총체적으로 보게 되면 어느 순간 한 인격을 갖춘 작가가 작품에서 걸어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단다.

그렇게 마주한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인생을 알아가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는 게 방 교수가 문학을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국경 없는 이상주의자, 이효석

그런 그가 이효석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이효석 선생의 탄생 100주년 무렵이었다. 당시 대산문화재단에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주최했는데, 그가 맡은 작가가 이효석 선생이었던 것이다. 심포지엄을 앞두고 이효석 선생의 전집을 모두 섭렵한 그는 사람들이 그동안 이 선생에 대해 너무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지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서정적 소설을 쓴 작가로만 알고 있었죠. 일제 강점기에 민중들은 헐벗어지고 있는데 나무로 만든 목욕통에 물을 받아 한가롭게 목욕하고, 한 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가 원두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오로지 자기 사생활만 즐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가 이해한 이효석 선생은 꽤 미래적인 삶을 산 작가였다. 요즘 현대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개인의 취향이다.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신이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이러한 인생을 먼저 가르쳐 준 사람이 이효석 선생이라고 말하는 방민호 교수.

“이효석 선생은 스스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음료수 한 잔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마셨어요.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삶을 일찍이 실천한 사람이었죠. 그가 자신의 취향을 추구했다고 해서 이를 민중주의와 대립해 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민중 속에서 각 개체의 다양성을 인정한 그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동정, 공감도 절대 잃지 않았어요. 민중주의와 개인주의를 모두 지향했던 작가였습니다.”

<벽공무한>과 <풀잎>으로 본 반일 사상

1907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이효석 선생은 1942년 서른다섯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꽤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가 살다간 시대가 1941년 일제 강점기, 특히 태평양 전쟁 전후라 친일적 성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마도 그가 대학 졸업 후 잠시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며 검열을 봤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터. 더불어 일본어로 쓴 소설에서 일제가 요구하는 내선 결혼에 대한 메시지가 비쳐 오해는 더 커졌을 것이다.

“이효석 선생이 조선총독부에서 일했다는 것은 사실이나 젊을 때의 시행착오라고 할 정도로 근무 기간이 불과 몇 달도 채 되지 않아요. 검열 부서에 있었다는 것도 일선에서 제기하는 설일 뿐이고요. 일본어 소설에서 대일협력 메시지만 전달한 것도 아닙니다. 조선인 주인공이 고구려의 유물을 절대 일본인 박물관 관장에게 팔지 않으려고 하는 등 일제에 저항하는 모습도 담겨 있어요. 단순히 하나만 보고 이효석 선생 전체를 평가하기는 어렵지요.”

도리어 그는 대동양주의를 주장한 일본이 조선인에게 징용과 징병을 요구할 때 상당히 불편한 감정, 반전 의식을 보여주는 작품 <벽공무한>과 <풀잎>을 펴냈다. 특히 소설 <풀잎>에서는 전쟁 중 적기의 야간공습을 대비해 한 도시의 모든 불빛을 강제로 끄는 등화관제에 대한 그의 저항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등화관제 훈련이 있을 때는 심지어 담배도 피우면 안 되고,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풀잎> 속 이효석 선생을 닮은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남몰래 뒷골목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면서 생각하죠. ‘나는 낮에 백성의 의무를 다했으니, 밤에 이 정도의 자유는 있어야 한다.’ 아내를 잃은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새로운 여자를 만나 헐린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거랍니다.”

한창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제가 전쟁 동원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운운하는 것은 엄청난 저항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문학 검열이 심한 시대에 그런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벽공무한>에서는 어땠을까? 이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다양한 해석이 오가지만, 방 교수는 이효석 선생의 반일 사상을 더욱 높이 치켜세웠다. 

“소설 속 ‘천일마’라는 주인공이 만주의 신경, 지금은 창춘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복권을 샀다가 당첨이 됩니다. 그 돈을 가지고 경마장에 간 그는 판돈을 거는데, ‘태양’이라는 말과 ‘아킬레스’라는 말 중 후자를 선택합니다. 여기서 태양은 일본, 아킬레스는 조선을 상징하지요. 결국 누가 이겼을까요? 처음엔 태양이 앞서가다가 나중에 아킬레스에게 따라잡혀요. 이윽고 천일마는 큰돈을 벌게 됩니다.”

 

진리는 국경도 없다

이어지는 그의 <벽공무한>에 대한 해석은 무척 흥미진진하다. 경마로 대박이 난 천일마는 곧장 하얼빈으로 향한다. 러시아 제정시대의 귀족, 예술가가 많이 망명한 하얼빈은 서양 문물이 꽃핀 국제도시다. 그곳에서 접한 오케스트라를 조선에 초청한 천일마는 사랑에 빠진 러시아 여성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여자의 이름은 ‘나아자’. 그에게 한글을 배운 나아자는 소설에서 조선의 온돌문화가 굉장히 훌륭하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일제 협력 소설이겠어요?”

오히려 이 소설에는 일본 지배의 굴레에서 벗어나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선 문화를 진흥하자는 메시지가 잔뜩 깔려 있다.
이효석 선생의 작품 중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아름다움과 진리, 가난은 구역이 없고 경계가 없다.’

“일종의 국제주의죠.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 유대를 맺어야 한다는 사상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움 또한 동서양 어디를 가든 인정받아야 진정한 아름다움이고, 진리 역시 매한가지죠. 일본이 대동양주의가 진리라고 주장할 때 이효석 선생은 서양의 것도 진리라면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진정한 것은 국경도 없다면서요.”

동서양 어디서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서로 향유할 수 있을 때 세계는 비로소 평화로울 수 있다. 이효석 선생은 누구보다 빨리 세계화를 외친 소설가였다고 그는 되뇌었다.

원초적 에로티시즘

이쯤 되어서 다시 <메밀꽃 필 무렵>을 펼쳐본다. 이 소설의 주제는 무엇일까? 아직도 이효석 선생에 대한 선입견을 거두지 못한 이라면 쉽게 답하지 못할 터. 소설 속 주인공 ‘허생원’은 어둑한 밤 물레방앗간에서 홀로 울고 있는 한 처녀를 만나 하룻밤을 지새운다.

소위 밤 야(夜)자를 쓴 야합이지만 그는 절대 이를 더럽거나 나쁘게 보지 않고 소중하게 여긴다. 그렇게 태어난 ‘동이’라는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씩씩한 청년이 되고, 마침내 아버지를 만났을 거라는 독자들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삶은 가난하고 이름 없는 자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생명은 참 끈질기게 이어집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 또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잖아요. 특히 속물적인 것, 세속적인 것, 권위적인 것을 아주 싫어한 이 선생이 <메밀꽃 필 무렵>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이효석 선생의 작품 중에는 <들>과 <산>, <소라>가 있다. 이 소설에서 <메밀꽃 필 무렵> 속 주제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방 교수는 설명했다.

“<들>과 <산>, <소라>는 삼부작인데요. <메밀꽃 필 무렵>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어둡거나 나쁜 것으로 보지 않았어요. 외려 인간을 파멸과 불행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권력과 편견, 지배라고 말하지요. 이게 이 선생이 남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봐도 무난합니다.”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갖는 숱한 오해 중 하나로 향수의 문학이라는 평도 있는데…. 사실 그에게 있어 향수의 의미도 사뭇 남다르다고 방 교수는 분석했다.

“보통 고향 향(鄕)자를 써 향수라고 말하는데요. 이효석 선생은 <화분>이라는 작품에서도 보였듯 자신이 태어난 곳만이 고향은 아니요, 내가 가고 싶은 곳도 다 고향이라고 했어요.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 이상향 같은 미래의 고향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선생의 작품을 향수의 문학이라고 해서 그가 태어난 평창 등만 떠올리면 쉬이 토속성이 강해져 곤란합니다.”

국제적으로 재조명할 기회 있었으면

이효석 선생의 진면목을 알게 된 귀중한 시간…. 방민호 교수는 논문 <이효석과 하얼빈>을 통해 그를 ‘국경 없는 이상주의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이효석 선생의 전집을 출간하는 데 일부 관여하는 등 그의 매력에 푸욱 빠진 방민호 교수.

그는 앞으로도 이효석 선생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국제적으로 재조명하는 기회를 얻길 원한다. 2018년 2월 평창 올림픽을 앞둔 지금이 가장 적기가 아닐까 싶다.

“앞서 두루 이야기했듯 이효석 선생의 작품에는 보편주의와 공통주의, 그리고 미지의 것을 향한 동경이 깊숙이 자리해 있어요. 특히 동양인임에도 서양을 긍정하려고 했던 것, 문화 상대주의, 문화적 통합에 대한 염원도 그러하지요. 그가 서양 문학과 음악, 영화에 심취했을 정도입니다. 또 이를 소설의 장치로 썼던 작가예요. 그의 고향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을 발판 삼아 이효석 선생을 국제적으로 재조명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무엇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방민호 교수. 곧 그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기를 함께 소원해 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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