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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기획자 이명수가 권한다, 따뜻한 시(詩) 한 모금 어때요?
심리기획자 이명수가 권한다, 따뜻한 시(詩) 한 모금 어때요?
  • 송혜란
  • 승인 2017.05.30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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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아득한 세상.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 지옥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누가 보아도 고통스러운 객관적인 지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느 시인의 ‘손톱 밑에 가시가 박혔을 때, 비싼 밥이 맛없는 때 연락하라’는 시 한 구절이 말해 주듯 대부분의 지옥은 주관적인 경험일 터. 그깟 가시, 팔자 좋은 소리? 누군가 던지는 돌멩이가 자신의 지옥을 더욱 키우고 있다면 심리기획자 이명수의 마음 시 처방전을 받아 볼 때이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세상과 사람에 드리운 균형 잡힌 시선으로 많은 이들의 심리 치유에 힘써 온 이명수. 그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심리치유공간 ‘와락’부터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한 ‘치유공간 이웃’까지 사회적 재난 현장에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했다. 최근 들어 이러한 재난 상황뿐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개인의 일상에도 마음속 지옥이 도사리고 있음을 목격한 그는 심리 치유 에세이 <내 마음이 지옥일 때>를 펴냈다. 
돈과 권위의 잣대로 내 존재가 부정당하고,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친절을 베풀어야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후 세상은 아무 일도 없는 듯 돌아갈 때…. 그 순간 누구도 예외 없이 낭떠러지 같은 지옥에 떨어지고 만다.
세상에는 객관적으로 지옥인 사람이 있다. 가령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그렇다. 무엇이라 위로할 수 없을 정도다. 삼풍백화점이나 환풍기가 무너져 내리는 등 대형 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사람도 객관적인 지옥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옥은 대개 주관적인 것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손톱 밑에 가시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본인은 무척 괴로워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시험을 앞둔 사람도 자신의 고통 외에 다른 것은 눈에 잘 안 들어옵니다. 결국 지옥은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에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비싼 밥이 왜 맛없을까? 남들에게는 한없이 부럽고 좋아 보여도, 이런 식으로 말하면 그 사람 마음에 지옥 하나를 더 만들 뿐입니다.”

왜 시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고통과 괴로움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을까?
“있죠.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려 주는 지도 한 장만 있으면 돼요. 안개가 걷히고 혼돈이 줄어듭니다. 굳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도 시야만 확보되면 헤쳐 나갈 힘이 생겨요. 제 경험상 시는 그런 지도를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입니다.”
1970년대 학창 시절 그는 국어 선생님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며 반강제적으로 시를 외웠다. 기본적으로 운율로 이뤄진 시는 그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었고, 졸업할 때 무려 1,000편의 시를 달달 읊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덧 중년이 된 그는 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저 느낌 그대로 시를 읽는 게 더 흥미로워졌다. 특히 심리 기획을 하면서부터 그는 시가 뿜어내는 치유적 공기에 매료되었다. 왜 하필 시인가?
“시는 우리의 생각을 좀 더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어 줘요. 관념적이라기보다 문학적이지요. 물론 시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는 잘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게 합니다. 시는 시인이 어떤 사물, 사람, 자연,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성찰한 결과물이니까요.”
오랫동안 수만 편의 시를 읽어 온 그는 ‘내마음보고서’와 ‘내마음워크숍’, ‘힐리Talk’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시야말로 공감과 통찰, 눈물, 아름다움으로 아픈 마음을 다독이는 부작용 없는 치유제임을 확신했다. 유독 예술 치유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음악과 그림 등 다양한 도구도 시험해 봤지만 단언컨대 시의 치유 효과가 가장 컸다고 자부한다.
“한번은 대기업 임원을 상대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오랜 기간 심리 검사를 한 끝에 보고서를 주면서 개인에게 적합한 시도 함께 처방했는데요. 한 분이 자기 사무실 책상에 그 시를 붙여 놓고 한가로울 때 무심코 들여다봤답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더래요. 그리고 생각했다지요. 나의 젊을 적 꿈이 과연 이거였을까? 시는 삶을 멈칫하며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어요. 일종의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하는 말입니다.(웃음)”

당신이 옳다

그의 시 처방과 함께 마음 지옥을 탈출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자기 탓하지 말기’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습관적으로 자기 탓부터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자기 탓은 상황을 중립적으로, 합리적으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 상황이 모호하거나 가해자를 분명하게 적시할 수 없을 때, 또는 상황이 분명해도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나 성찰을 치열하게 하지 못할 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분석이 자기 탓이기 때문이다. 자기 탓은 얼핏 도덕적 성찰로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이를 미덕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있다. 자기에게만 채찍을 휘두르다가 언제 행복해질 것인가?

춘계 전국야구대회 1차전에서 탈락한 산골 중학교 선수들이 제 몸뚱이보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지고, 목련꽃 다 떨어져 누운 여관 마당을 나서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저마다 저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지 모두 고개를 꺾고 말이 없다. 간밤에 손톱을 깎을 일도 죄스럽고, 속옷을 갈아입은 것도 후회스러운 것이다.

여관집 개도 풀이 죽었고,
목련도 어젯밤에 꽃잎을 다 놓아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흔든다,

봄은 미신(謎信)과 가깝다.

-윤제림의 <목련꽃도 잘못이다>

혹시 자기 탓을 하고 싶어질 때 이 시를 슬쩍 보곤 한다는 이명수. ‘니들 모두 아무 잘못 없다’는 것을 이 시가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어서다. 시의 힘으로, 시인의 힘으로 모든 제3자의 일처럼 곧장 객관화되는 순간, 마음은 이내 갈 곳을 되찾는다. “세상에 어떤 경우도 내 탓을 할 상황은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은 언제나 옳습니다. 상대방도 다 마찬가지예요. 사람은 다 옳아요.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내면까지 들어갈 필요 없어요. 감정을 들여다본다고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다 같아요. 서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당신이 옳다. 고로 나도 옳다.’ 이 전제에서 출발하면 구체적인 문제 해결은 좀 쉬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이 바뀌었을 뿐

그의 마음 지옥 탈출법 두 번째는 ‘너답지 않게’라는 덫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예부터 전해 온 이야기 중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이 혹여나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들을까 봐 질색한다. 자기 안의 일관성을 중요시하는 인간에게 자기모순은 분명 견디기 힘든 일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더 큰 고통과 불합리까지 껴안다 지옥으로 추락하기 일쑤이니 말이다. 이에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던지는 ‘너답지 않게’라는 말은 인간의 개별성을 무너뜨리는 아주 악랄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물리적 상태가 달라졌으니 마음도 변하는 게 당연하지요.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걸요.”
누군가는 ‘그럼 앞으로 돈 빌리고 난 다음에 마음 바뀌었다고 안 갚는다고 해도 되겠네?’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현실적인 문제에서 생각이 바뀌었다면 그건 사기죠. 다만 스스로 만든 족쇄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에요. 그 족쇄를 한번 풀어 보세요. 실제 상황이 달라진 게 없어도 마음은 훨씬 홀가분해질 겁니다. 여기서 지옥 탈출 팁은 간단해요.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면 됩니다. 열쇠는 항상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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