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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문화 콘텐츠 기획자 김공숙의 드라마 신화학
방송작가•문화 콘텐츠 기획자 김공숙의 드라마 신화학
  • 송혜란
  • 승인 2017.07.11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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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내 남자의 여자>, <밀회> 등 불륜 드라마의 성공 비결은?
 

드라마 <애인>부터 <내 남자의 여자>, <밀회> 등 멜로드라마는 불륜을 소재로 했음에도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까지 모두 인정받았다. 더욱이 진부할법한 불륜 드라마가 여전히 갖은 형태로 변주되며 끊임없이 창작, 애청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중독성’ 때문이라는 김공숙 작가.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왜 멜로드라마에 중독되는 것일까? 역사와 인종을 초월해 모든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신화의 원형에서 답을 찾은 그녀의 시각으로 보는 드라마 신화학.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방송작가이자 문화 콘텐츠 스토리텔링 기획․개발자, 드라마 평론가로 맹활약 중인 김공숙 작가. KBS <아침마당>•EBS <명의> 등 교양 프로그램과 평창올림픽•대종상•연기대상 시상식 등 행사, 포스코•교육부 등 홍보영상까지 굵직굵직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해온 그녀는 최근 <애인>, <내 남자의 여자>, <밀회> 등 멜로드라마의 매력에 푸욱 빠져있다.

물론 단순히 드라마를 보는 재미 때문은 아니다. 드라마의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해 함께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리거나 혹은 분노하며 스토리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단다. 이는 비단 그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터. 드라마 애청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소위 ‘막장’이라고 불리는 불륜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경우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이러한 드라마에 도대체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그녀 역시 드라마를 보는 내내, 특히 고려대학교에서 문학 석•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드라마 서사원형을 연구하며 궁금증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기어코 인간 본성의 집합체인 그리스 신화를 비롯해 우리 무속 신화의 남신과 여신들의 특징을 두루 살핀 그녀는 그 해답을 신화에서 끄집어냈다.

“신화 속 신들의 성격이 멜로드라마 캐릭터 창조의 비결이었어요.”

예컨대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등장인물 ‘화영(김희애)’에게는 팜므파탈적인 아프로디테가 깃들어있고, <애인> 속 여주인공 ‘여경(황신혜)’에게는 영원한 소녀 코레인 페르세포네가 엿보인다. 또, <밀회>의 ‘선재(유아인)’에게는 여자의 남자 디오니소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고, ‘혜원(김희애)’에게는 권력 지향적인 남성성이 도드라진 그리스 아테네 여신이 오버럽되어 보이기도 한다.

신화에도 불륜 이야기가 꽤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들 드라마와 신화 속 인물의 연관성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신화의 원형적인 스토리가 시대에 맞게 변형돼 재탄생한 게 멜로드라마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현대 신화인 드라마의 캐릭터로 되살아난 신들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멜로드라마뿐 아니라 잘나가는 할리우드 영화의 스토리 구조도 비슷해요. 신화에서 등장할만한 캐릭터의 일상적인 순간을 보여주고,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그가 다른 세계로 떠밀려갔다가 그곳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며 다시 현실에 돌아왔을 땐 영웅이 되어있는, 내면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주로 그리죠. 신화적 상징과 은유가 대중성, 예술성 획득의 열쇠였던 거예요.”

 

고전 못지않은 드라마

이에 성공한 드라마 캐릭터가 고전문학의 등장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김공숙 작가. 특히 2014년에 제작된 <밀회>의 경우 방영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드라마 커뮤니티 카페에 들리는 회원은 상당하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혜원이 말해요. ‘너 남은 인생 어떻게 살거야?’ 그런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콕콕 박혀서 뒤늦게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스스로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카페에 가입하더라고요. 회원 중에는 나름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여기서 공감받는 캐릭터가 무의식을 건드리는 원형적 인물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공한 드라마 작가들 또한 의식, 무의식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뒤흔들고 가슴 울리는 인기 드라마 캐릭터는 인간의 심연으로 들어가 아주 깊고 예민한 지점을 후벼 파곤 한다.

“<애인>, <내 남자의 여자>, <밀회>의 주인공들은 안정돼 보이는 중년기에 마치 교통사고를 당하듯 불륜이라는 사랑에 빠져요.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요. 캐릭터가 걸어가는 길은 윤리나 도덕, 관습을 넘어 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자기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자기실현, 개성화의 과정입니다. 시청자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원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를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있어요.”

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이는 결국 심리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김공숙 작가가 드라마 캐릭터의 원형을 해석할 때도 융의 인간 심리의 원형 이론과 융 학파 여성학자 볼린의 심리여성학, 심리남성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원형은 드라마 작가의 무의식에서 작용해 드라마의 원형적 캐릭터로 형성화되고 있음을 확인한 김 작가. 그녀가 이에 대해 정리한 책 <멜로드라마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예비 작가들의 캐릭터 창작 가이드로 활용되고 있다. 캐릭터 간의 관계 설정과 이후 행동, 사건, 에피소드를 구축해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평이다.
 
“그렇다고 모든 불륜 드라마가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에요. 사회적 금기와 전통의 비합리성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을 밑바닥까지 세밀하게 보여줘야 하지요. 대중에게 가장 익숙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인간 유형이어야 하지만, 익숙함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천편일률적인 작품만 양산할 수 있어요. 반드시 ‘익숙하지만 낯설게!’라는 과제를 함께 풀어야 할 거예요. 성공한 드라마는 ‘반복’에 바탕을 두고 ‘차이’를 창조적으로 표현했다는 점 잊지 마세요!”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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