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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대 권영민 교수, 인간다운 삶의 가치, 문학이 필요한 이유
버클리대 권영민 교수, 인간다운 삶의 가치, 문학이 필요한 이유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7.07.19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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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혼돈의 시대다. 정신, 영혼보다 물질적인 가치가 더욱 중요시되면서 점점 삶의 균형을 잃어가는 현대인. 이에 버클리대 권영민 교수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찾기 위해 ‘문학’을 따라가 보자”고 권했다. 왜, 지금,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한 것일까?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을 찾은 권영민 교수를 만나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문학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학은 인간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인간의 언어에 기초해 인간 정신과 감성을 예술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권영민 교수. 문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하는 인문학의 핵심 학문이다. 이러한 문학은 인간의 사회적인 삶과 조건을 다루는 사회과학과 구별되며, 인간의 생물학적인 삶과 환경을 다루는 자연과학과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저는 문학이야말로 인간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품성을 함양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동서고금을 보더라도 인간의 자질이나 품성을 바르게 하는 일에 언제나 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문학의 성격과 의의를 말해줍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문학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근대 이후 우리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개인적인 삶의 태도와 가치에 대한 신념을 키워주는 데 문학의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적인 힘이 크게 작용했다. 문학은 인간이 지나온 과거의 것에 의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상상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떨까?

“너무 많이 변했어요. 당장 눈앞의 이익과 물질적 가치에 매달리며 실용적인 것만 따지지요.”
대학에서 인문학 위기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도 여기서 비롯된 일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물론 새로운 시대의 거대한 변화를 보면, 이미 우리 사회는 정보화 과정을 거치며 인간 중심의 지식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 사회를 바람직하게 확립하는 데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문학이며, 창조적 상상력이다. 문학의 중요성, 더 나아가 인문학의 가치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시(時)적 생활이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버클리대 한국문학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버클리대 한국문학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한국문학의 역사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 온 권 교수는 근현대 문학·미술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조명한 <권영민 교수의 문학 콘서트>를 펴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소설과 수필, 희곡 등 문학 중에도 그는 특히 시에 더욱 애정을 쏟는다. 

“저는 시집을 늘 곁에 두고 읽어요. 외국에 나갈 때도 새로 나온 시집 한두 권을 꼭 챙겨 갑니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학생들에게 시집을 읽어보라고 자주 권하지요.”
시는 인간의 심성 자체가 내용과 형식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예술적 형태라는 권영민 교수. 시는 삶의 다양한 경험과 충동에 균형을 부여할 힘을 가지고 있단다.

“시는 그것을 애써 찾아 읽는 사람에게만 충만한 기쁨을 주며, 자기 자신의 삶을 보다 높은 존재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초월의 힘을 발휘하지요. 시적 생활은 시를 통해 정서의 풍요를 누리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그가 시 읽기를 강조한 이유는 시가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으로 빚어지기 때문이다. 시는 가장 잘 정제된 언어로 이루어진다. 언어를 가다듬는 일은 심성을 가다듬는 일과 서로 통한다. 어느 시대이건 문화의 창조력은 언어로부터 나온다. 언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라고 본다고 그는 덧붙였다. 거칠어진 언어를 가다듬고,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을 방법, 그것이 시 읽기가 아닐까? 
 

 


이해와 포용 그리고 사랑

윤동주의 원고 노트를 소중히 간직한 후배 덕분에 윤동주가 차가운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눈감은 후에나마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일본의 한국어 말살 정책으로 발표하지 못한 시들을 <청록집>으로 펴내면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던 박목월과 조지훈의 첫 만남. 친우의 천재적 예술성과 고뇌를 이해하고 이를 시와 그림으로 탄생시킨 이상과 구본웅의 우정. 최소한의 삶을 꾸려가되 최대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예술의 역할을 강조했던 한용운의 기개까지….

특히 권 교수는 작품에 깃든 문학 거장들의 정신을 풀어내 참다운 삶의 가치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과연 참다운 삶의 가치란 무엇일까?

인간의 삶은 항상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이어진다. 고립된 상태에서 혼자 살 수 없다. 나와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 내가 상대방보다 잘 생기거나 똑똑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못나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한다는 권 교수. 그래야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상대를 포용하지 않으면 내가 배척됩니다. 나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저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참다운 삶이란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해인 수녀의 <살아있는 날은>

그가 믿는 이러한 참다운 삶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준 문학가는 바로 이해인 수녀이다. 예전에 한번 부산 수녀원에서 이해인 수녀를 만난 적이 있다는 그는 당시 이 수녀가 수많은 이들과 편지를 나누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깊은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부터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갇힌 죄수, 사랑에 실패한 후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년 등 이들이 보내온 사연에 일일이 답하며 사랑과 위로의 말을 적어 보내는 수녀님의 너그러우신 모습이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 있어요.”

이에 그는 인간관계로 상처받은 이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절망감에 빠진 이들에게 그녀의 시 한편을 추천했다.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있는 연필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살아있는 날은>

“저는 최근에 나온 수녀님의 시전집을 책상 앞에 놓아두고 자주 꺼내 봐요. 가슴 깊이 와 닿는 사랑의 기도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지요. <살아 있는 날은>은 자기희생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시인데요. 삶의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하지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삶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 특히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청춘,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삶의 갈피를 못 잡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 용기를 주는 문학가는 없을까?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문인들을 보면 대개 견디기 힘든 시대적 고통을 이겨냈다. 그런데 이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실천하고자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자세가 자신의 의지를 세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올해 탄생 100년을 맞은 윤동주 선생의 경우 시 속에 항상 자기 의지를 스스로 확인할 때가 많아요. 그는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고 자기 의지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었거든요.”     

회사에서는 일에, 가정에서는 가사·육아에 지친 워킹맘 또는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등 자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이들은 물론, 남자 나이 40이라는 문턱을 넘을 때나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모두 귀감이 되는 이야기다.

“자기가 하는 일이 없으면 자꾸 밖을 보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지요. 남들만 바라보면 자기가 없어집니다. 크든 작든 자기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에서 가치를 찾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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