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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어른살이를 꿈꾸다 - 홍미랑 칼럼
행복한 어른살이를 꿈꾸다 - 홍미랑 칼럼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7.08.3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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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성장연구소 '지음' 홍미랑대표 어른성장칼럼
▲ 필자 - 어른성장연구소 '지음' 홍미랑대표

“엄마는 뜨겁지 않아요?”

찌개 냄비 손잡이를 맨손으로 잡아 가스레인지에서 밥상으로 옮기는 나를 보고 아이가 물었다. “괜찮아.” 대답하고 나서 손을 보았다. 조금 빨개졌을 뿐 뜨겁다거나 아프다거나 하는 감각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힘들다, 아프다, 싫다, 이런 말들을 하지 않고 살게 된 것이……. 돌아보면 이런 말과 멀어지게 된 이유가 일상의 모든 일이 쉬우며 편안하고 즐거워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취직과 결혼으로 얻게 된 어른의 삶을 살게 된 이후 나에게 마음이라는 게, 감각이라는 게 있었나 싶다. 날마다 집과 일터에서 좀비처럼 몰려드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밤낮없이 보채는 젖먹이 아이를 달래느라 내 마음이 있는지도 몰랐고, 돌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어른으로 살면서 이따금 떠오른 사람이 있다. 첫 직장에서 만난 여자 과장님. 그녀는 뛰어난 능력에 성격도 좋아서 누구나 좋아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한 어린 어른이었던 나의 눈에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어른이었던 그녀는 이런 말로 종종 대화의 여백을 채웠다. “인생은 고해고, 삶은 고행이야.”

그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녀의 말이 일하는 여자로 아이를 낳고 살면서 삶의 순간마다 얼마나 깊게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삶은 어렵고 힘든 일만이 연이어 계속되는 고행의 연속이기만 한 걸까? 내가 경험한 어른의 삶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았다. 아이가 주는 즐거움, 가족 안에서 함께 느끼는 만족과 안정감, 일에서 얻는 성취 등 돌이켜 보면 삶의 순간순간마다 즐기고 누릴 거리가 참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렇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던 걸까? 생각을 거듭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편안함이 찾아올 때, 나는 그 행복한 감정들을 온전히 즐기고 누렸던가?’

이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편안함 안에 있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내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고, 다음 할 일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 행복한 감정에는 아주 잠깐 머물고 지나갔던 것 같다. 불과 5분도 할애하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는 언제 쉬어요?”
아이의 눈에 비친 나는 눈맞춤을 할 잠깐의 시간도 낼 수 없는 바쁜 사람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엄마에게 들었던 서운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었나 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왔던 시간들 속에서 놀아줄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어느새 다 자라서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리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바쁜 아이의 뒤에서 나와 잠시라도 눈맞춤 해주기를 기대하며 지난 날 같은 마음으로 기다렸을 아이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어째서 모든 일은 지나간 뒤에야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인지, 후회가 이어지는 지난날들에 아쉬움만 더해진다. 그때는 더없이 중요하다 여겼던 것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 무엇을 인생의 축으로 두고 살아가야 할 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다. 어떤 이는 이것이 중년으로 가는 통과의례라 했다.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날이 지나고, 이제껏 만들고 지키려 애쓰던 사회적인 나보다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편안한 노년으로 가기 위한 자연의 순리란다. 우리가 이상형으로 꼽는 편안한 인상을 가진 백발의 어른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란다.

그러나 어린 시절 받았던 학교 교육에서 ‘잘 나이 먹는 방법’에 대한 배움은 없었다. 사회에서 내 자리를 만들고 그것을 지키는 온갖 기술을 배웠을 뿐,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어른으로 어떻게 나이 먹어갈 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시간이 없었기에 젊은 날 열심히 살아왔던 만큼 중년의 방황과 고민은 깊어간다.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처럼 중년 이후의 삶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행복을 느낄 여유도, 아플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았던 지난날로 인해 이제는 세밀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훈장처럼 여기던 닳아 없어진 지문 대신 굳은살이 두툼하게 자리 잡은 손가락 끝의 무딘 감각 때문에, 미래의 어느 날 행복이 찾아왔을 때 이를 알아채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지금처럼 행복 안에 머물지 못하고 늘 미래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준비로 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채우면 어쩌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어른은 언제쯤 행복할 수 있을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가족에 대한, 사회에 대한 책임 말이다. 그렇다면 잘 나이 먹는 어른이 되기 위한 책임의 시작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어떤 그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 먼저이어야 하고, 보다 충실해야 한다. 나에게는 단 한 번의 생이 주어진다. 또한 나는 내 아이가 만나는 첫 번째 어른이며, 곁에서 늘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존재다.

나는 아픔도 감정도 느낄 줄 아는, 보듬어 살펴야 할 귀한 존재다. 본래의 내가 없이 어찌 엄마, 아내, 며느리, 딸,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내가 있을 수 있겠는가?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나에 대한 존중을 실천해 나가는 장이다. 자연의 순리가 말하길 타인에 대한 존중은 내 것이 충족된 이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잘 나이 먹는 방법을 알고자 작은 모임을 도모했다. 어른성장연구소 지음은 오늘을 사는 어른으로서 내가 본래의 내 목소리에 집중하고, 나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하는, 우리 사회의 어른살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 나누는 마음공원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 출발했다.

숨을 쉬는 일이 마음먹고 계획해서 하는 거창한 일이 아니듯, 밥 먹고 일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지금껏 그래왔듯 본래의 나로서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어린이는 어른이 되고 배움은 지혜로 영글어 우리가 꿈꾸는 ‘어른의 여유로움’ 이 묻어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정신없이 떠밀리는 삶이 아닌, 깨어있는 삶을 꿈꾸는 어른들이 모여 배움을 나누고 지혜를 쌓다 보면 행복한 어른살이에 대한 길이 보이지 않을까. 지금도 삶의 현장 곳곳에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보낸다. 그보다 먼저, 하루를 마감하는 나에게 속삭인다.
“오늘도 수고했어. 사랑한다, 홍미랑”

글 - 어른성장연구소 '지음' 홍미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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