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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행복을 그리는 화가, 김덕기
가족과 행복을 그리는 화가, 김덕기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7.08.31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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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화가 김덕기
가족과 행복을 그립니다!!

그림 같은 집에서 다정한 부부와 어린 자녀들이 나오는 그림,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천진난만한 그림으로 찬사를 받는 화가 김덕기. ‘가족을 그리는 화가’ ‘행복을 전달하는 화가’로 알려진 김덕기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와 그에 얽힌 사연들을 들었다.
취재 백준상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진전된 산업화와 각박한 생활에 눌려 가족이 설 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 한때 가족이 둘로 나뉘는 기러기 가족이 유행이더니 지금은 1인 가족이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현재 젊은이들 중에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온전한 추억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생각이 명백한 사치임을 알면서도….

부모와 아이 또는 청소년, 부모와 결혼 전 자녀 등으로 이뤄진 핵가족이더라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 또한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굳이 부부의 이혼이 아니더라도 생계를 위한 부부 맞벌이, 거의 매일 밤늦게 퇴근하는 아버지, 취업을 위해 목숨 건듯 공부해야 하는 자녀 등으로 핵가족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현 시대에 있어 화목한 가족은 이상이 되어버렸다. 따스한 온기를 지닌, 나를 지켜줄 든든한 울타리로서의 가족을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족이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물질과 명예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가족과 친구가 없이는 행복이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가족을, 행복을 더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슬프고 안타까운 현실에서 김덕기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은 하나의 큰 위안이다. 김덕기 작가는 4인 가족이 집에서 먹고, 마시고, 자녀를 키우고, 함께 웃고, 함께 노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캔버스에 그림으로 옮긴다. 밝고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낸, 정원 딸린 그림 같은 집의 사랑 넘치는 풍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스함을 느끼게 하고 사랑을 전염시킨다.

김덕기 작가는 경기도 여주 출생으로 서울대 미술대 동양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덕원미술관에서 연 춘추미술대전 전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 회의 개인전과 약 70회의 단체전, 초대전을 연 중견화가이다. 서울국민미술대전 특선(1997), 서울미술전람회 특선(1997). MBC미술대전 특선(1999) 등 여러 차례 수상경력이 있으며 <가족일기> <즐거운 우리집> <즐거운 정원> 등 단란한 가족을 다룬 시리즈로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다. 원색의 색채와 굵직한 질감으로 득특한 화풍을 선보이며 ‘색의 마술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가족의 일상을 그린 그림만으로 일가 이뤄내
“가족, 행복, 추억 같은 소소한 일상들이 제겐 황금 같은 소재입니다. 일상이 지루하고 흑백사진 같지만 돌아보면 그리워지고, 개인에게는 황금 같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덕기 작가를 만난 곳은 여름방학을 맞아 김덕기 특별전 <즐거운 여름방학>을 열고 있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한 시골풍경과 여행지의 모습, 그리고 어릴 적 추억의 친구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그린 그림까지 어린 관람객들을 위해 그는 아낌없이 내놓았다.
장소, 대상, 재료는 달라도 김 작가의 그림 주제는 한결같이 ‘가족애’와 ‘행복’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는 아이들이 꼭 등장하는데, 아이들의 소중함을 인식하듯 그들을 위한 활동도 적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책자 <도서관이야기> 표지그림을 그렸고,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2017년도 달력그림 작업을 맡았으며, 도서관 그림 전시회도 지방도서관을 순회하며 내년까지 이어나갈 예정이다. 지난 8월초에도 미술학교 참여활동을 위해 가족과 함께 부산을 다녀왔다.

김덕기 작가는 부인 한연선 씨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세 식구 가족이다. 그림에서 표현되는 네 식구가 아니며, 하얀 반려견 두 마리도 키우지 않는다. 그는 딸을 하나 더 낳고 싶었는데 아내의 몸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칭 ‘애처가’라고도 했다. 한 씨는 그에게 삶의 이유이자 작업의 영감을 불러오는 뮤즈이기도 하다. 2008년 학교 미술교사를 그만두고 전업교사로 나선 이후 여주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매진하는데, 아내와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을 안타까워했다.

부인 한 씨는 그와는 캠퍼스 커플로 생물학 전공이다. 덕분에 김 작가는 연애시절 연인의 연구실에서 많은 식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경험은 작가의 자연관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그가 그리는 풍경에는 대부분 식물이 우세한 자연이 등장하는데 그는 그것을 ‘자연과의 대화’라고 했다. 그에게 여행은 가족애를 단단히 다지는 여정이지만 자연과 교류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제 가족이야기에서 출발해 소시민의 일상을 그리고자 했어요. 그림에 네 식구가 등장하는 건 4명이 그림에 균형을 이루는데 좋았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가족과 함께 하는 장소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사람과 함께 하는 자리가 제일 소중하지요.”

난해한 현대미술과 달리 그의 그림은 쉽다. 그림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10초면 드러난다. 그런 점이 대중에게는 더 반갑다. 그의 작업은 사물을 단순화, 평면화 하는 대신 그림 안에 스토리를 담고 원색조의 화려한 색상들로 눈길을 붙든다.

그는 팔레트에서 물감을 혼합해 쓰는 일이 드물다고 했다. 자연의 밝은 햇빛에 빛나는 색의 발랄함, 강한 이미지의 색이 좋기 때문이라 했다. 그는 ‘내숭 떨지 않는 색’, 은유와 상징을 내포한 관념적인 색보다는 여과 없이 보여주는 직접적이고 친절한 색을 선호한다.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소리를 내는 색을 찾기에 그의 팔레트에는 순도 높은 물감이 더 필요하다.

김 작가는 가족과 자주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어린 시절 여주의 산야로 쏘다니고 고교 1학년 때까지도 여행을 자주 했던 그는 이제 가족과 함께 제주도, 울릉도를 다녀오고 작품 전시 겸 외국도 여행한다. 그의 이번 여름방학 전시에는 독도를 그린 그림과 알프스를 그린 그림도 전시되고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저 멀리 수평선이 자신을 그려 달라고 (신호를) 발산해요. 화가라는 직업이 보는 것, 본 것을 시각화 하는 것 아닙니까. 다녀온 곳의 공기의 색감을 느끼고, 사물에 색으로 옷 입히는 작업을 하는 거지요. 제 방식의 자연과의 대화라고 할까요.”

여행을 많이 하며 그의 보는 눈이 달라지고 시각이 넓어진 듯하다. 가족 시리즈 초창기에 실내만 그렸던 그는 화폭에 마을 풍경을 중경, 원경으로 담는 일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하지 않던 원근을 넣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등장하는 가족도 외국인이 부쩍 많아졌다. 외국인들도 가족과 행복에 대한 동일한 시각과 꿈을 지니고 있다고 그는 보았다.

 

부친에의 추억과 가족사랑
“돌아가신 아버지를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에 태어나셔서 1.4후퇴 때 개성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여주에서 한약방을 하셨지요. 어머니를 중2 때 여의고, 고1 때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두 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심리적으로 회복이 됩니다.”

형제자매 중 막내였던 김덕기 작가는 부모를 여의고 텅 빈 것 같은 자신과 마주했고 이를 극복하려고 부모님과의 추억에 종종 빠져들었다. 지금도 그림을 그릴 때 그는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행복했던 지난 날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의 가족에 대한 사랑의 시발점이 어디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예고를 다니며 멋진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여느 고교생처럼 대학 입학을 앞두고도 입시미술에만 빠져들지 않았다. 화실은 아예 다니지도 않았고, ‘낭만 고양이’처럼 행주산성 등 야외로 스케치를 다니는 일이 많았다.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어떻게 살까’ 와 같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때였다.

서울대 미대에 입학해서는 은사로 있던 화가 김병종 선생의 격려와 함께, 장학금 혜택을 받아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첫 개인전을 즈음해 결혼했으나 강사를 하던 미술학원이 IMF 한파로 문을 닫는 바람에 생계를 위해 신문배달에 나섰다고도 했다. 이런 전기적 관점에서 볼 때 작가는 가족만이 아니라 인생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회화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그가 동양화가로서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연도 흥미롭다.

김 작가는 원래 한지에 먹으로 컬러 작업을 하던 전형적인 동양화가였다. 오래된 것처럼 처리한 한지에 묵으로 나란히 놓인 두 켤레의 신발을 그려놓고 ‘부부’라는 타이틀을 붙였던 것이 대표적이다. 어느 날 서울 인사동 화방에 재료를 구하러 갔던 그는 화방의 다양한 색상들이 일상을 담아보라고 외치는 아우성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묵 대신에 물감을 집어 들고 가 한동안 한지에 작업했으나 발색이 시원치 않자 한지마저 캔버스로 바꾸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반응이 좋아 그런 작업을 지금까지 이어왔다고 부연했다. 그는 “동양화에 재료만 바꾼 셈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을 여전히 동양화가로 인식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김 작가는 일상에서, 여행에서 그림 소재를 얻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최근 그리는 그림들을 사진으로 살짝 보여주었다. 올해 비엔날레 참석차 뉴욕을 다녀온 후 그린 센트럴 파크 주변의 집들 풍경이다. 홍관조와 더불어 단란한 미국인 가족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이전보다 중첩적인 구도에 글로벌함이 물씬 묻어나 보였다.

‘그리는 대상을 예찬하는 것이 회화’라는 미술계의 말처럼 그림으로 가족을 예찬해 온 김덕기 작가. 그는 행복은 가까운 곳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제 그 행복 바이러스를 한국을 넘어 해외로까지 널리 전파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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