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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광석과 딸 서연, 부인 서해순..거듭되는 의혹 속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가수 김광석과 딸 서연, 부인 서해순..거듭되는 의혹 속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 유진모
  • 승인 2017.11.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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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고 김광석 씨의 친형 김광복 씨가 서해순 씨를 상대로 제기한 고소·고발 건에 대해 수사한 결과, 모두 '혐의없음'으로 결론 냈다고 밝혔다. 그동안 거듭되는 의혹 속 고 김광석 씨와 딸 서연, 부인 서해순씨의 미스터리를 진단한 Queen 11월호 기사를 통해 다시한번 그간의 의혹과 오해를 짚어본다.

(Queen 11월호) 지난 8월 30일 개봉된 다큐멘터리영화 ‘김광석’(이상호 감독)은 김광석의 아내 서해순 씨가 굳이 알리려 하지 않았던 딸 서연 양의 죽음(2007년 12월 23일)에 대한 수사를 유도했고, 김광석의 죽음(1996년 1월 6일)에 대한 의문을 다시 재기하는 가운데 의문사 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도록 아예 2000년 8월 1일 이전의 살인사건까지도 공소시효를 없애라는 이른바 ‘태완이법’을 개정한 ‘김광석법’ 입법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사회적 파장이 크다. 이상호 기자는 영어제목을 아예 ‘Suicide made’로 적어 누군가 김광석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부녀의 살해범으로 고인의 부인이었던 서해순 씨를 강력하게 의심한다.

#왜 김광석인가

김광석은 1987년 노래를찾는사람들 1집에 참여한 뒤 이듬해 초 7인조 포크그룹 동물원의 멤버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2집을 통해 ‘거리에서’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히트곡의 주인공이 된 후 1989년 솔로 데뷔앨범을 발표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후의 행보는 널리 알려진 대로다.

당시 제도권 가수들은 소위 PR비라는 홍보비용을 상당히 많이 써야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매니저조차 없던 김광석에겐 먼 나라 얘기였기에 그는 작은 콘서트 무대를 선택했다. 그런데 예전에 들국화가 그랬듯 그의 순수한 음악세계와 탁월한 음악성은 입소문을 타고 번져 점점 관객이 늘더니 몇 년 뒤에는 공연업계에 ‘김광석의 콘서트는 흑자’라는 공식이 굳어질 만큼 항상 성황을 이루게 됐다.

그는 ‘착하다’는 말 한 마디로 간단하게 표현하기 힘든 아주 선한 성품의 소유자다. 다툼이나 갈등을 싫어하고 남이 언짢아할 만한 언행을 철저하게 조심하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스타일이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긴 했지만 비폭력적인 얌전한 성격과 행동을 보였다. 그는 그냥 음악이 취미이자 생활인, 연예인보다는 뮤지션 그 자체였다.
 

 

김광석과 서 씨는 1990년 6월 결혼했다. 당시 신문사 연예기자였던 필자는 그보다 2~3달 전 정보를 입수하고 김광석을 설득한 끝에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내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김광석의 인간성을 확연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거듭 “저 같은 사람이 기사거리가 되나요”라며 매우 조심스러워하고 또 쑥스러워했다. 또한 며칠 뒤 데리고 나온 서 씨에게 깍듯했으며 최대한 배려하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후 김광석은 점점 더 유명해졌지만 사후에도 제도권에선 여전히 준연예인이었다. 그런 그를 ‘국민가수’ 반열에 올려준 일등공신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였다. 영화가 흥행에 크게 성공함으로써 하이라이트 장면에 삽입된 ‘이등병의 편지’가 덩달아 히트됐고 이에 힘입어 그의 거의 모든 곡들이 재조명됐다. 더불어 송강호의 “그런데 광석이는 왜 그리 빨리 갔냐”는 대사까지 유행되며 김광석은 하나의 명품 브랜드로 굳어졌다.

김광석이 뒤늦게 살았을 때보다 더 크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그의 음악의 우수성 때문이다. 밥 딜런이 뛰어난 가사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가사에는 인생의 철학이 담겨있다. 일반 대중가요처럼 사랑타령도 눈에 띄지만 의외로 삶을 살아가는 의미와 머물러 있어야 할, 그리고 헤쳐 나가야 할 ‘처해-있는 피투성과 기투하는 이해’의 하이데거에 대한 고찰이 읽힌다. 게다가 노랫말들은 아름답다. 멜로디 역시 자극적이지 않고 매우 편하거나 때론 애절하다. 대부분 슬픈 마이너코드(단음계)가 아닌 메이저코드(장음계)임에도 이토록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값어치는 사후 뒤늦게 고향인 대구에 ‘김광석 거리’가 조성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후배 가수들이 그의 레퍼토리를 앞 다퉈 부르고 있다는 건 그 노래의 값어치와 음악성 그리고 대중의 지지도를 입증한다. 팬들이 그런 순수함을 간직한 천재적 뮤지션이 요절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건 당연하고, 바람에 실려 들려왔던 죽음의 의혹에 대해 분노할 것이며,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그의 노래에 대한 애정으로 증폭되는 가운데 그 과정에서 돌연변이로 변주된 분노를 쏟아낼 비상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크게 이슈화되는 게 아닐까  물론 서 씨의 해명 역시 완벽하다고 보긴 쉽지 않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언론이 입수한 부검감정서의 결론은 목을 매어 숨진 것을 의미하는 ‘의사(縊死, 자살)로 판단된다’였다. 또한 마약 등 약물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고, 다만 혈중알코올농도가 0.09%로 나왔다. 아무런 저항 없이 타살당할 만큼 의식이 없던 만취상태는 아니라는 의미. 흥미로운 건 자살기도의 흔적 혹은 그토록 보이게끔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손목의 선상 반흔. 이에 대해 고인의 친형 광복 씨는 언론에 “(자살 기도) 그런 적이 없다. 흉터에 대해서도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지만 서 씨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 메모습관이 있었다는 고인이 유서 한 장 안 남기고 자살했다는 정황은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만약 타살이라면 진범이 ‘내가 범인이요’라고 자백하지 않는 한 자살이란 부검결과를 뒤집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고인은 이미 수천 만 줌의 재가 돼 팬들의 추억 속으로 날아가 청춘의 열병으로 자리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서해순 씨는 왜 표적이 됐나

문제는 돈이다. 서 씨는 자신이 받은 저작인접권료 수입에 대해 ‘7~8년 동안 받은 돈이 1년에 500~600만 원 정도’라고 아주 적은 액수임을 강조하면서도 시기를 애매모호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한 매체의 취재결과 사실은 달랐다. 김광석은 죽기 전 이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저작인접권 수입 권리자로 등록했다. 그러나 서 씨는 소송을 한 끝에 2008년 10월 자신과 서연 양 앞으로 100% 권리를 받아냈다.

한 매체는 서울지방청을 통해 지금까지 서 씨가 올린 수입을 약 9억 5000만 원이라고 공개했다. 음반저작권협회 자료에는 2005년부터 2017년까지 받은 수입이 7억 원을 상회한다고 기록돼있다. 2009년 받은 수입이 약 800만 원이니 일견 그녀의 주장은 맞는다. 그러나 2011년 4500만 원, 2012년 6300만 원, 2013년 7300만 원 등 뒤늦은 ‘김광석 열풍’으로 매년 수입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2014년 1억 7000만 원을 올린 이후 매년 1억 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고인은 1995년 서 씨와 그녀의 내연남으로 알려진 이모 씨와의 관계를 일기장에 쓴 바 있다. 보도된 미국 법원의 공식자료에 따르면 이 씨는 서 씨의 Husband(남편)로 기록돼 있다. 두 사람은 한때 하와이에 아파트를 2채 보유한 동거인 혹은 사실혼 관계였다. 서 씨는 서연 양의 사망 후 2달도 안 돼 이 씨와 함께 하와이로 가 그들의 이름을 딴 법인 ‘해성 코퍼레이션’을 만들어 한 마트를 인수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하와이에서 함께 지낸 게 공식문서로 확인되는 두 사람은 현재 경기도 기흥 골프빌리지 내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이웃들이 증언한다. ‘하와이 자금’의 출처는 확인된 바 없다.

서 씨는 영화 개봉 후 의혹이 자꾸 불거지고 각계에서 ‘김광석법’ 제정을 운운하자 JTBC ‘뉴스룸’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그동안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녀의 인터뷰 내용 등을 본 다수는 그녀의 발언과 행동 등에서 부자연스러운 점이 많이 눈에 띈다는 피드백을 내놓고 있다. ‘뉴스룸’에서 그녀는 기자의 취재를 ‘뒷조사’라고 표현했고, 이상호 기자한테 라이선스(기자 자격증)가 있냐며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기자는 자격증이 없고 사원증이 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현재로선 김광석의 죽음은 자살 쪽에 강하게 무게가 실린다. 그래서 광복 씨는 서연 양에 대한 유기치사 혐의와 더불어 자신 등 가족들과 서 씨 사이의 저작인접권 소송과정에서 서 씨가 딸의 죽음을 감췄다는 점에 대한 사기 혐의에 대해 고소했다.

한 매체가 입수한 서연 양의 부검확인서에 따르면 사망원인은 폐 질환 중에서도 미만성 폐포손상인데 간단한 감기가 악화된 폐렴이라기보다는 폐 전체에 퍼져있어서 폐가 거의 망가진 수준이었다. 또 이물흡입이라는 내용도 있지만 정확히 적시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미만성 폐포손상이 올 정도로 심각한 수준으로 망가졌으면 그 전에 징후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그토록 심각한 상황이었다면 상태가 악화되는 증세가 심했을 것이고, 엄마 입장에선 병원에 데려가 치료하려는 게 일반적이었을 텐데 모든 상황이 지나치게 급진전됐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서 씨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됐을 내용으로 보이는 ‘사망 5일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고 설사와 구토를 해서 병원 치료를 쭉 받아왔는데 호전되지 않아 결국 숨졌다’는 내용에 대해 전문가들은 5일 만에 그토록 심하게 폐렴이 진행되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보인다. 서연 양의 지병이었던 가부끼 신드롬은 심장박동수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긴 하지만 만약 폐렴으로 인해 그토록 빨리 숨진다면 직전에 다른 징후들이 많이 보였을 것이라는 것.

따라서 심정지 직전 4~5시간 동안 호흡곤란이 오고 당사자는 굉장히 힘들어했을 텐데 엄마로서 신속하게 대응했는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서 씨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인터뷰에서 “물을 달라고 하더니 쿵 쓰러졌다”고 밝혔을 뿐 사망시점을 구급차 도착 전, 운행 중, 병원에서 응급처치 중 언제인지 확언을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서연 양이 사망한 지 불과 2달 지난 2008년 2월 하와이에 해성코퍼레이션을 설립한 점에 대해서도 시선이 그리 곱지 못하다.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 시댁과의 저작권 법정다툼 등으로 경황이 없고, ‘경제적으로 어렵던’ 그녀가 하와이이민을 실행하고, 거기서 회사를 설립했으며, 와이키키 해변에 고급 빌라를 얻을 수 있었는지 보통사람 시각과 주머니사정으론 납득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서 씨와 이상호 기자를 번갈아 부르며 유기치사 혐의에 대한 수사를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김광석이 국가와 사회에 남긴 숙제

1995년 6월 정상을 달리던 듀스가 해체를 선언한 지 5개월 후인 11월 19일 김성재는 이현도에게 받은 솔로 데뷔곡 ‘말하자면’을 SBS ‘생방송 TV가요 20’서 불러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냈다. 음반유통사에는 주문전화가 폭주했다. 그날 저녁 숙소인 서울 홍은동의 한 호텔로 돌아가 매니저 등과 성공을 자축하는 파티를 연 김성재는 이튿날 아침 사망한 채 발견됐다.

그의 팔과 가슴에서 28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발견됐고 부검 결과 동물마취제 졸레틸이 검출됐다. 19일 숙소에 함께 있었던 의대생 여자친구가 졸레틸을 구입한 사실이 확인됐고, 그녀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그녀가 구입한 졸레틸 양이 치사량에 못 미친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그녀는 개명하고 성형수술까지 한 뒤 치과의로 근무 중이라는 게 김성재의 타살을 확신하는 그의 유족 및 팬들의 주장이다.

김광석과 김성재가 유명연예인이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 중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죽음의 의혹은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게 다수의 간절한 바람이란 건 그동안 각종 보도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났다. 문제는 법과 공무원의 업무자세다. 이번 ‘어금니 아빠’ 사건만 해도 경찰의 초동수사 문제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적되는 숙제다.

김광석의 사망 당시 다각도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경찰이 초동수사에서 완벽했는지, 그리고 김성재 살인혐의 용의자 재판과정에서 공정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자유로우려면 모든 의혹이 속 시원하게 해소돼야만 한다. ‘김광석법’ 입법이 중요한 건 이를 통해 당시의 수사와 재판 담당자들에 대한 재조사를 해서라도 의혹이 단지 의혹일 뿐인지, 다른 진실이 있는지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두 사람의 가족과 팬들이, 그리고 다수의 국민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언론과 대다수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유명연예인의 죽음조차 이렇게 숱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자살로 마무리됐는데 하물며 힘없는 서민들에게 억울한 일이 없을 리 없다는 게 또 다른 의혹이다.
 
글 유진모(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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