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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화가 김품창, 제주 숲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다
제주 화가 김품창, 제주 숲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다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7.11.29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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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내려가 작품세계를, 삶 자체를 바꾼 화가가 있어 관심을 모은다. 제주도에 정착하여 제주 생명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꾀하는 화가 김품창과 그의 작품세계를 만났다.

나무가 울창한 숲에 고래와 물고기와 아이들이 날아다닌다. 사람들은 숲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거나 사슴 돼지 같은 동물과 교감을 나눈다. 더없이 평화로운 숲에서 사람들은 고래 위에 올라타 유유자적한 비행 또는 유영을 즐기기도 한다.

어느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208×718㎝의 거대한 한지 화폭에 아크릴로 그린 김품창 화백의 ‘어울림의 공간-제주환상’의 내용이다. 제재는 조금씩 달라도 그가 그려온 주제는 한결같다. 제주도라는 공간에 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이다.

지난 가을 김품창 화백은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실에서 제주살이 17년을 그림으로 풀어놨다. ‘어울림의 공간-제주환상’을 주제로 곶자왈 등 제주의 숲을 담은 작품들은 관람객들의 연이은 감탄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제 그림에서는 하늘과 땅, 바다의 구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가치 있는 것이고 존중 받아야 합니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인간이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어울리는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김품창 화백이 그리는 공간에서 인간은 우월적인 존재이거나 주인공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한라산 오름 바다 하늘 별 고래 문어 소라 인어 해녀 외계인 귤나무 야자수 등 어느 하나가 부각되지 않고 고루 나오며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지 않는다. 오직 평화와 공존, 사랑과 소통으로 가득한 동화적 판타지의 세계다.

그의 작품에서는 심지어 한라산 바다 하늘 등도 살아있는 생명체로 나온다. 그래서 눈이 달려 있다. 우리도 생명체라는 것을 외치듯이. 작가가 이러한 동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분명 전략적이다.

누구나 아이였을 때는 모든 동물이 친구였다. 아이와 동물들간의 우정이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어린아이였을 때 동물은 조금 낯설어도 하나의 존재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동물이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동물을 기꺼이 이용하거나 잡아먹는 대상으로 격하하게 된다.

김 화백은 “동물의 눈으로 봤을 때 인간은 가장 나쁜 존재이며 안 좋은 건 다 저지르는 존재”라면서 “관건은 누가 많이 가지는 게 아니라 상생으로, 같이 존재할 수 있는 방법론을 그림 작업을 하며 계속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동화적 판타지의 세계 그려

김품창 화백은 원래 제주 출신은 아니다. 강원도 영월 출생으로 경북 영주에서 성장하고 서울에서 추계예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했다. 지난 2001년 그가 35세 때 가족과 함께 훌쩍 서울을 떠나 서귀포에 장착해 17년째 살고 있다.

제주도에 와서 생명을 만났고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써내며 생명에 대한 생각과 사상을 실천하고 있다. 제주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이 인정받아 KBS SBS MBC EBS 등 많은 방송에 그의 작품세계 가 소개됐고 그는 제주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다.

“제주에 살며 제주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어울림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두가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소통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상세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김 화백이 그리는 작품세계는 결코 판타지의 세계만은 아니며 제주라는 공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제주라는 공간은 상당부분 인간과 자연 속 생명체가 실제로 공존하는 세계라는 것을 그는 간파했다. 해 달 별 산 바다 생명 등 어린 시절 상상력을 키워주던 그 모든 것들이 제주에는 널리 산재한다. 서귀포에 있는 그의 집에서는 바다가 내다보인다. 그와 그의 가족은 돌고래가 바다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집에서조차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제주에 와서야 비로소 자연을 그릴 수 있었다. 서울에서 그가 주로 그리던 것은 시장, 가족과 같은 도시의 일상과, 추상이었다. 그런 작업은 그에게 큰 성취감을 주지 못했고, 급기야 제주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2001년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찾기 위해 부인과 딸 등 가족을 데리고 제주도로 떠나와 맞닥뜨린 것은 제주도의 풍광이었다. 처음에 제주도라는 새로운 환경은 그에게 이질적이어서 오로지 가족만이 유일한 벗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변하는 경이로운 자연현상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생명체들의 신비로움에 사로잡히게 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초기 제주에서의 작품활동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10년간 경제적 궁핍을 참아내야 했고, 일이 너무 안 풀린다는 생각에 절을 찾아가 10시간에 걸쳐 3000배를 올린 적도 있을 정도였다.

제주시절 초기에 그는 자연에 너무 감동한 나머지 여느 풍경화가처럼 바다 풍경과 파도를 그리는데 몰두했다. 그 안의 사람들은 결코 자연에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 같이 조그맣게 등장하고 있다. 5년이 지나니 그림은 산과 숲과 바다를 배경으로 많은 생물이 등장하며 화면은 평면적, 구성적으로 변했고 동화적인 요소가 곁들여졌다. 2010년경부터는 그런 경향이 더욱 농후해지고 정제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울림의 공간-제주환상  한지에 아크릴 208*718cm 2017년작

그가 깊은 숲에서 한없는 자유를 느꼈다는 곶자왈을 배경으로 올해 그린 그림들은 숲속을 나는 고래들의 모습이 압권으로, 더욱 정제되고 세련된 작품으로 거듭났다. 또 누구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채색은 점묘를 통했는데 “점을 찍는 것을 수양이라고 생각하고 그렸다”고 말했다.

제주생활 중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의지를 더욱 굳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고 김 화백은 토로했다. 지난 2014년 어느 날 집에서 자고 일어나니 수령이 48년이나 되는 인근 가로수들이 도로정비 차원에서 몽땅 잘려져 나간 것이었다. 시청과 인근 주민들에게 항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김 화백은 움직이지 못해 도망도 갈 수 없는 나무를 전기톱으로 쉽게 자른 것에 대해 경악했다. 그 사건은 그로 하여금 존재에 대해 더 절실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결국 가로수가 잘려나간 자리에 대신해서 먼나무 70그루를 직접 심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림의 나무 숲 돌 같은 사물에 눈을 그려 넣었다고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것이 생명이구나, 존재구나, 라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제 그림은 눈으로 보고 그린 게 아닙니다. 겉 형상에 끄들릴까봐 그림 그릴 때 스케치도 하지 않습니다. 보고, 또 보고 제주의 풍경이 제 가슴에 녹아내려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며 너무 화면에 옮겨놓고 싶어 못 견딜 때, 그때야 비로소 화폭에 옮겨 담습니다.”

김 화백의 그림에 대한 접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화가는 그림으로 얘기해야 한다”는 그는 작업을 위해 지인들과 교유의 시간도 포기했다. 전시회 기간 중에는 손님을 응대하고 작품 설명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그다.

그는 진심을 담은 그림을 절실히 원한다고 했다. “시류나 대중추수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 철학을 숨김없이 던져 넣은 화폭을 완성하는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화백과 부인 장수명 작가

제주의 생명과, 동반자 장수명 동화작가

김품창 화백의 제주 생활에서의 든든한 동반자는 부인 장수명 씨와 두 딸이었다. 그의 제주도행은 한국전쟁 시 가족들을 데리고 피란 온 이중섭 화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거장 이중섭 화백은 제주에 정착해 서귀포에 1년 머무르며 가족 그림을 많이 그렸다. 현재 서귀포에는 그의 자취를 알려주는 이중섭미술관이 남아 있다. 이중섭 화백을 스승처럼 존경하는 김 화백은 서울에 갈 때면 종종 망우리 이 화백의 묘소를 찾아가 인사하고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기원한다고 했다.

이중섭 화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족은 김 화백이 제주에 적응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부인 장수명 씨는 제주 정착 초창기 동화작가로 등단, 수십 편의 동화를 생산하며 생활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김 화백은 부인이 집필한 동화에 삽화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마주보기’란 출판사를 설립한 동화작가 장수명 씨는 지난 2012년 그림동화책 ‘똥돼지’를 출간해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도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노리의 여행’ ‘고래나라’ ‘세한도’ 등으로 이어지는 ‘제주이야기’ 시리즈로 제주의 가치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작가로서 부부가 지향하는 점이 비슷한 만큼 부인 장수명 씨도 남편 김 화백의 생명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삶의 구심점이 남편은 그림이고 저는 동화일 뿐 제주에 대한 느낌과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남편의 그림 작업들을 접하면서 살아있는 것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고 작은 생물 하나라도 소중히 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어요. 일종의 작가적 양심이라고 할까요? 남편의 작업을 적극 지지하고 돕는 일이 즐겁습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써내려가며 일상에서도 생명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려는 부부의 모습이 제주의 숲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Queen 백준상기자]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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