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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자 박재희 “이 시대 ‘흥(興)’ 교육이 필요하다”
동양철학자 박재희 “이 시대 ‘흥(興)’ 교육이 필요하다”
  • 송혜란
  • 승인 2017.11.3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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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배운다-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 인터뷰
 

“고전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삶, 살아가는 매 순간 함께해야 할 진리입니다.” 오랫동안 고전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동양철학자 박재희. 어릴 적 조부에게 한학을 배운 그는 자연스럽게 고전의 지혜를 체득해갔다. <TV 명심보감>을 비롯해 <KBS 제1라디오 시사고전>, <손자병법과 21세기> 등 방송에서 고전 강사로 활약하며 동양철학 신드롬을 일으킨 그다. 그런 그의 밑에서 자란 자녀는 또 어떠한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책 좀 봐라’,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특히 고전을 주로 탐독해라.’ 어린 시절 선생님, 엄마, 아빠, 어른들이 우리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들이다. 그런데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저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그 이유를 체감하며 답을 찾아갔을 뿐이다. 이에 대해 그는 아주 간단명료한 답을 풀어놓았다.
 

왜 고전인가?

일단 고전(古典)과 대비되는 것은 베스트셀러다. 베스트셀러는 요즘 많이 팔리는 책을 말한다. 즉 이 시대에 인기가 있다는 것인데, 한편으로 그것은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유행이 지나면 더 이상 팔리지 않는 것. 그게 베스트셀러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라고 박 원장은 설명했다. 반면 고전이 가진 제일 큰 장점은 이러한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는 데 있다. 베이직이 굉장히 좋다는 의미다. 고전은 늘 우리에게 한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어 마지막으로 자기 삶을 살 때까지 인간이란 존재의 기본, 또 어떤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준다. 이는 베스트셀러로 잠깐의 트렌드는 읽을 수 있어도 고전이 가진 인생 저 바닥 깊이 깔린 아주 중요한 깨달음은 얻기 어려운 까닭이다.

“인간도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혹해 보이진 않더라도 늘 정직하고 성실해서 나중엔 참 좋은 친구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지요. 자기 아이를 베스트셀러형 인간보다 스테디셀러형 인간으로 키우고 싶다면 고전이라는 콘텐츠로 자양분을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영원히 떨리는 삶이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박재희 원장은 휴식 차 뉴욕과 런던에 머무른 적이 있다. 당시 버지니아주립대 출신 증권사 애널리스트 라저라는 사람을 만났다는 박 원장. 라저는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지만 대학 때 빌린 학자금과 엄청난 월세를 갚고 나면 남는 게 그리 많지 않았다. 스타벅스 커피와 베이글을 손에 들고 거의 24시간 근무를 버티는 라저의 꿈은 회사에서 얻은 정보로 투자해 한몫 잡은 후 업계를 뜨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꿈을 이루는 월스트리트의 젊은이들은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세상에서 가장 번화하고 발전했다는 도시 어디에도 흥(興)이 넘치지 않았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흥을 영어로는 ‘펀(Fun)’이라고 해요. 세상을 살다 보면 재미가 상당히 중요하잖아요. 항상 재미가 있어야 사람도 만나고, 공부도 하며, 직장도 다니지요. 흥은 영원히 떨리는 겁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흥 교육을 해야 해요. 무슨 일을 하든 재밌고 흥이 나면 영원히 떨리는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흥은 전혀 없이 그냥 편하게 살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삶은 전혀 떨리지 않을 터. 자녀를 이런 아이로 성장시키고 싶은 부모가 있을까? 그는 앞으로 이 흥이 한 개인이 가진 아주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느날 누군가 ‘너 자산이 얼마야?’라고 물었을 때 ‘나 10억 원 있어’가 아니라 ‘난 정말 흥이 이만큼 있어!’라고 답하는 날들이 분명 올 겁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흥을 끌어내는 게 현 가정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전의 대문을 여는 법

특히 고전 공부에 있어 이러한 흥의 중요성은 두 번 강조해도 부족하다. 이에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고전을 읽는 독서법이 필요하다. 흔히 고전이라고 일컫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은 제각기 난이도, 수준이 다르다. 옛날 옛적 한 아이가 태어나면 고전을 가르치기 전에 사자성어나 천자문을 익히도록 했으며, 더 잘하면 이율곡 선생의 <격몽요결> 등 기본서를 공부시켰다. 이후 소학교에 들어가서야 <소학>을,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대학>을 배울 수 있었다. 옛날부터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글자부터 사자성어, 예절, 인간관계, 더 나아가 형이상학적인 가치관까지 연령, 수준별로 고전 교육을 매우 체계적으로 시켰던 것이다. 마치 고전이라는 학문의 큰 대문을 열고 조금씩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말이다. 과거 소학교라는 이름도 <소학>을 읽는 시기라는 데서, 대학교도 <대학>을 읽는 시기라는 데서 비롯됐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만약 부모라면 두껍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전 원서보다 축약본, 혹은 박재희 원장의 저서 <고전의 대문>처럼 어떠한 사람의 가치관으로 재해설한 교양 서적을 읽는 것도 고전 읽기의 첫 흥을 돋우기 제격이다.
 
“저는 사실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히는 것보다 어머니들이 먼저 이러한 책들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책을 읽은 느낌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스토리텔링으로 전해 주는 거지요.”

고전을 읽은 후 ‘아, 이렇게 좋은 삶의 가치가 있구나!’라고 깨달은 엄마가 아이에게도 ‘옛날에 장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참 흥이 많은 사람이었대. 근데 그 사람에 큰 벼슬이 내려졌는데도 흥이 안 나서 안 갔대. 대신 자기 흥을 쫓아서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대’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안의 우주를 깨워라

우리가 고전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는 어마어마하다. 특히 내 안의 우주를 깨우는 데는 <대학>이 딱이다. <대학>은 자존감 회복이 큰 화두로 떠오른 현대인에게 큰 귀감을 주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 우리는 그것을 자존감이라고 표현한다. 참된 나가 의미 있을수록 자존감은 더 높아진다. 내가 경쟁에서 이겨서 혹은 누구와 비교해 더 잘나서가 아니라 지금 나는 이 상태 이대로 의미 있을 때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고전이란 게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해요. ‘너는 참 의미 있게 태어났어’, ‘하늘과 땅 사이의 귀한 존재야’, ‘너 안에는 하늘이라는 의미 있는 존재가 있어’, ‘그래서 이걸 천성이라고 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장 하늘다운 본질인 천성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게 인간에게 들어와 인성으로 변해요. 이 인성을 잘 발휘하고 활용하는 순간 누구든 저 하늘처럼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내 안의 용을 깨워라’, ‘내 안의 우주를 깨워라!’ <대학>의 제일 앞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른 말로는 ‘내 안의 흥을 깨워라!’인데요. 그랬을 때 자존감은 올라간답니다.”
 

어떻게 화낼 것인가

모든 답이 다 고전 안에 들어 있다는 박재희 원장.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분노조절장애에 대한 해결책은 <중용>에서 살펴볼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는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지 않아 쌓이고 쌓여 터지는 현상을 가르킨다. 이에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의 감정을 그때그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풀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용이 무조건 감정을 억누르라는 게 아닙니다. 공자든 맹자든 화가 나면 화를 냈고, 슬프면 울었고, 토라지면 말도 안 했던 사람들이에요. 그게 인간이지요. 다만 중용에서는 그 뒤에 단서를 붙여요. ‘슬픔이 지나쳐서 상처가 될 때까지 슬퍼하지는 말아라’, ‘즐거울 땐 웃어라. 웃음이 지나쳐서 음란해지면 안 된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내라. 그게 지나쳐서 폭력이 되면 안 된다.’ 어떻게 지혜롭게 인간의 감정을 풀어내느냐, 그 방법론에서도 분명 고전은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가정교육이 중요한 이유

더 나아가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도 고전이 지닌 아주 중요한 논리인데…. 우선 고전은 나라는 사람이 위대하면 상대방 역시 하늘의 천성을 가진 위대한 존재라고 인정케 해 준다. 설사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절대 소유하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역시 하늘이 낳은 위대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인간관계는 서로 인정하고 관용하며 공감했을 때 아름다워진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러한 연습을 아이들이 가정에서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우선 도와야 해요. 가정 내 부모와 자식 간의 이 훈련은 아이가 학교에 가 친구들 사이에서, 또 나중에 직장에 들어가 상사와 부하 간에서도 똑같이 효과를 드러냅니다.”

이는 가정교육이 사회교육의 시작인 이유이기도 하다. 일찍이 아이의 자존감을 드높여 주는 교육도, 분노를 조절케 해 주는 교육도 다 가정 내에서 첫발을 떼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는 박재희 원장. 누군가 ‘어떻게?’라고 묻는다면 그는 옛날 밥상머리 교육법을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조언했다.

“하나같이 바쁜 요즘,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아침 식사 시간에 부모가 아이에게 주야장천 이야기하는 겁니다. 요즘은 엄마들이 아이가 싫어한다고, 상처받는다며, 또 자기를 멀리할까 봐 잔소리도 안 하는 것 같아요. 제아무리 좋은 말을 아이가 잔소리라고 여기더라도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해요.”

그렇다 보면 훗날 아이도 그때 엄마가 해 준 말이 잔소리가 아닌 참소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도 다 그렇지 않았나요? 저는 지나 보니 그렇던데요. 옛말에 어른 말 다 틀린 것 없다는 것처럼 어릴 때 어머니는 잔소리꾼이 아니라 참소리꾼이었더라고요.”
 

재미있니? 의미 있니?

자녀라고 딸 한 명이 전부인 박재희 원장도 고전에서 터득한 대로 아이를 키우려고 부단히 애썼다고 한다. “저는 무조건 아이를 인정해 줬어요.” 물론 부녀지간에 싸울 일이 전혀 없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정말 자신한다는 박 원장.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거 보면 속 터지고, 내가 쟤를 왜 낳았나 싶기도 했지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는 아이 자체로 인정하고자 했어요.”

굳이 어떠한 사람이 되라고, 공부하라는 말도 해 본 적 없다는 그는 이제 스물세 살인 딸이 재수 후 결국 자기 길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으로 유학을 가 커뮤니케이션 브랜드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뛰어나지 않았던 그녀가 영국에서는 한국의 천재라는 평을 듣고 있다고 그는 매우 기뻐했다. 우리나라같이 정답을 맞히기보다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끌어냈을 때 박수 쳐 주는 영국 교육의 힘이 무척 컸단다. 그가 딸에게 물었던 것은 딱 두 가지다.

“재미있니? 의미 있니? 무슨 일이든 둘 다 없으면 하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 어린아이들은 참 중요한 때잖아요. 저는 엄마들도 아이들에게 항상 이 두 가지를 물어야 한다고 봐요. 결국 그게 너 흥이 있니? 자존감 있니? 이 말입니다.”

고전 <논어>에 나오는 군자, <도덕경>에 나오는 성인, 일명 성인군자. 또 <손자병법>에 나오는 장군, <장자>에 나오는 진인, <맹자>에 나오는 대장부까지. 이들 모두 ‘재미있니?’, ‘의미 있니?’에서 둘 다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도 항상 두 가지였어요. 남들은 바보처럼 산다고 해도 나는 재밌는 걸 어떡해? 남들은 대충대충 살지 왜 힘들게 사느냐고 해도 의미 있는데 어떡해? 안중근 의사도 그랬고, 이순신 장군도 다 그렇게 살았어요. 앞으로는 대한민국 어머니들이 호연지기의 에너지를 가지고 이렇게 좀 당당한 대장부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는 뭘 해도 할 겁니다.”

※바로잡습니다
2017년 11월호 인터뷰이 동양철학자 박재희는 성균관대 ‘교수’가 아닌 ‘박사’이며, 현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으로 있습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촬영 협조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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