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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 87 (깡통의 위력)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 87 (깡통의 위력)
  • 김도형
  • 승인 2018.02.03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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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디를 가더라도 눈에 띄는 장면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얼마전에 보니 보관된 사진이 천 장이 훌쩍 넘어서 정리를 좀 했다. 정리를 하던 중 한 장의 사진에 눈이 머물렀다.

그 사진은 지난해 여름에 운전을 하고 가다 음료수를 사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을 찍은 것인데 그 장면에서 오래전의 두 어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났던 것이다.

내가 어릴때 우리집은 백가구 남짓의 시골마을에서 가게를 운영했는데 어머니는 선물용 캔과 종이팩 음료를 통틀어 깡통이라 부르셨다. 그 깡통은 친지를 방문하거나 병문안 갈때 선물용으로 아주 잘 팔렸다. 가끔 가게를 보던 나도 참 많은 깡통을 팔았다.

세월이 흘러 신문사 사진부에서 근무하게 된 나는 어느 날 그 당시 큰 이슈가 되었지만 인터뷰를 거절하던 고령의 미전향장기수 취재를 하러 후배기자와 함께 가게 되었다. 인터뷰 성사가 안되더라도 주변 취재라도 하고 돌아올 참이었다.

어릴때 부터 누구를 방문하러 가는 길에는 깡통을 들고 가는 모습을 하도 많이 봐서 습관적으로 깡통을 한 박스 사 들고 건물로 들어가서 안내인을 만나 전달을 부탁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한참 뒤에 안내인이 혼자 나오는걸 보고 역시 인터뷰는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놀랍게도 그 분이 잠시 뒤에 나오신다는 통보를 했다. 안내인의 말로는 멀리서 노인을 찾아 오면서 깡통을 사오는 성의가 고마워서 만나겠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오랜 시간 인터뷰를 하고 깊이있는 기사를 써서 회사에서 칭찬을 받았음은 물론이었다.

깡통과 얽힌 에피소드가 또 하나 있다.
지금은 작고하신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이 오래전 소설 '토지'를 완간했을때 당시 신문사에서 발행하던 인물전문 주간지에 박선생님 특집기사를 내려는데 선생님의 마땅한 인물사진이 없어 나 혼자 원주에 계신 선생님 댁을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물어 물어 집을 찾아 초인종을 눌렀다. 내 오른손에는 당연히 깡통 한 박스가 들려있었음은 물론이었다.

언론 노출을 꺼려하고, 기자들 쫓아 버리기에 명수셨던 선생님은 문 너머로 나를 보시더니 어쩐일이냐고 물으셨다. 용건을 설명드린 뒤에 내 고향이 선생님 고향인 통영 이라고 덧붙였다.

잠시 뒤 역시 놀랍게도 선생님이 직접 문을 열고 들어오라 하셨다.
집에는 선생님 혼자 계셨고 잠시지만 요모 조모 열심히 사진을 찍은 뒤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기대를 하지 않고 약속도 없이 갔지만 그 날의 취재 성공은 행운 이었는데 선생님과 내 고향이 동향이라는 사실에 선생님이 문을 열어 주셨는지, 아니면 내가 들고간 깡통의 성의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깡통의 영향이 더 컸으리라고 믿는다.

사족이지만 나는 그 때 선생님을 뵌 후에 많은 후회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21권으로 만들어진 소설 토지를 단숨에 읽었는데 소설을 다 읽고난 다음에 생각하니 내가 소설을 읽고 선생님을 뵈었더라면 정말이지 선생님께 큰절이라도 올렸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소설 토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는지 알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시골 가게집이 문을 닫고 방치된지 이십 수 년이 넘었다.
깡통이라는 이름의 정을 팔던 그 시절이 그립다.


[Queen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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