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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맞아 추사 김정희 일화 화제, 당대 재상 채제공을 사로잡은 입춘대길
입춘 맞아 추사 김정희 일화 화제, 당대 재상 채제공을 사로잡은 입춘대길
  • 김선우
  • 승인 2018.02.04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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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입춘을 맞아 조선 후기 학자 추사 김정희의 일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김정희는 18세기 말에 태어나서 19세기 외척 세도 정치기에 활동한 조선 예원의 마지막 불꽃 같은 존재이다. 조선이 고유 문화를 꽃피운 진경시대의 세계화에 성공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진경시대의 학문 조류인 북학 사상을 본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조선 사회의 변화 논리에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다.

김정희는 갓 젖을 떼자마자 붓을 가지고 놀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부친 김노경이 붓을 빼앗으려 하자 사력을 다해 붓을 쥐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릴 정도로 붓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때문에 주변에서는 김정희에게 훗날 명필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김정희가 7살에 입춘대길(入春大吉)이라는 글을 붙여놓았는데 이를 지나가던 채제공이 칭찬했다. 당시 채제공은 김정희의 집안과 상대편에 있던 남인의 영수였다. 채제공은 "이 아이는 글씨로서 대성하겠으나 그 길로 가면 인생 행로가 몹시 험할 것이니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하시오"라고 말한 것이다.

이후 김정희는 박제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정조 시대에 집안 친척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정순왕후 김씨에 의해 아버지가 종3품까지 이르게 됐다. 하지만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풍파 속에서 평생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추사 김정희의 입춘대길 일화는 그의 천재성을 잘 알려주는 일화다. 아쉽게도 김정희를 아직까지 유명하게 만든 입춘대길 글씨는 남아있지 않다.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당대 최고의 학자와 정치인들에게 천재성을 인정받은 김정희는 입춘 때마다 떠오르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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