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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의 추억이 담긴 요리 이야기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의 추억이 담긴 요리 이야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8.04.16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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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프라이를 올린
도시락(벤또)
어린 시절에 나는 도시락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걸 아셨는지 어머니는 도시락을 쌀 때 금방 지은 따끈한 밥에 노른자를 터트리지 않고 만든 달걀프라이를 올려주셨다. 여기에 신김치나 장아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귀한 비닐봉투를 아끼기 위해 반찬통의 김치를 덮었던 비닐을 빨아 다시 사용하셨고 작은 물건 하나도 아끼셨다. 물건을 절약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물질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쑥떡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면 출출할 줄 아셨는지 어머니는 쑥떡을 주셨다. 천천히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뒤로한 채 빨리 한입 집어먹으면 쑥떡에 묻힌 콩가루에 목이 막혀 캑캑대곤 했다. 고소한 콩고물을 묻힌 쑥떡은 주로 음력 4월 초파일 무렵에 먹었다. 쑥을 깨러 나가실 때마다 열여덟 살 소녀라도 된 듯 들뜨셨던 어머니는 막 뜯은 쑥을 데치고 불려놓은 쌀을 빻아 찜통에 찌어냈다. 그래서 4월 초파일 즈음이면 아련한 기억 속의 쑥떡은 봄과 함께 떠오른다.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
지금은 칼로리가 높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라면국물이 남는 것이 아까워 국수를 넣어 양을 늘려 먹었다. 그랬던 라면이 언젠가부터 가장 저렴한 음식으로 그 위신이 하락해버렸다. 나의 기억 속 라면은 하숙집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가 정성스레 양은냄비에 끓여낸 귀한 음식이다. 없는 살림이지만 친구에게 손님 대접을 한다며 라면을 얹어 먹을 수 있는 냄비뚜껑을 선뜻 주었던 기억…. 역시 라면은 양은냄비에 끓여야 제맛이다.

고구마콩나물국밥
겨우내 먹던 고구마가 봄이 되어 비실비실 말라버리면 고구마는 속까지 단맛이 돈다. 이맘때가 되면 어머니는 방 한구석 찬 곳에 보관했던 단맛 나는 끝물고구마에 콩나물, 왕멸치, 그리고 찬밥 한 숟가락을 넣고 고구마콩나물국밥을 만들어주셨다. 국밥 끓이는 냄새가 담장을 넘어가면 동네 이웃들은 부르지 않아도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식사를 함께 즐겼다. 찬밥을 넣어 끓이지만 따끈했던 고구마콩나물국밥은 우리 엄마의 봄철 별미 중 하나였다.

김치묵밥
어렸을 때 잠시나마 충청도에 살았던 경험이 있다. 충청도 사람들이 야식으로 즐겨 먹었던 묵밥을 먹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가늘게 썬 묵 위에 물기를 꼭 짠 김치, 참기름, 깨를 넣고 버무린 묵밥은 어머니가 즐겨 해주셨던 야식 중 하나이다. 예쁜 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외출을 할 때마다 고급스런 일제 양산에 성글게 짜인 시장바구니를 드셨다. 예쁜 양산이 흔치 않았던 시절, 양산을 챙기고 외출준비를 하는 모습과 김치묵밥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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