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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진짜 배우’ 이순재의 참 고운 날들
우리 시대의 ‘진짜 배우’ 이순재의 참 고운 날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8.04.1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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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등 푸른 생선처럼 싱싱한 연기만을 보여주고 싶어요”
 
20대에 처음 무대에 섰다. 캄캄한 무대 위에 한 줄기 핀홀 조명이 그에게 떨어지면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신명을 불러들이고 불처럼 사그러들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진하게 흘러내리는 땀방울 속에서 그는 삶의 희열을 느꼈다. 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음에도 관객들의 쏟아지는 박수소리만 들으면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또 다시 몸이 무대를 향했다. 그렇게 50여 년. 어느새 머리에는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눈도 침침해지고 나이만큼 체력도 떨어졌지만, 나이라는 것이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해주는 이가 이순재이기도 하다. 아직도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촬영장에 달려가 리허설을 하고 대본이 다 닳도록 읽고 또 읽는다. 대본의 여백에는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를 정리해놓은 메모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의 강한 기질
그래서일까? 후배들은 키도 작고 소리 한번 안 지르고 까탈도 없는 이 배우를 몹시도 어려워한다. 단지 대선배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50년도 넘은 세월 동안 연기만 했고,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배우인데도 신인보다 더한 열정으로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기에 열정을 다 바치는 삶의 태도는 실상, 생활력 강하고 억척스러운 이북 기질이 그의 내면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순재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이다. 사실 회령은 귀양 간 후예들이 사는 곳이었다. 먼 곳에서 척박한 삶을 꾸리다보니 언제나 남쪽으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제시대에 수탈을 못 이긴 사람들은 연변으로 넘어가 정착하기도 했고, 서울로 내려가 삶을 일구기도 했다. 이순재 집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그는 서울에서 내려와서 보냈던 설날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족 전체가 서울로 내려왔어요. 설이 되면 고향에 가지 못한 친척들이 작은 할아버님 댁에 모입니다. 전 가족이 다 모이니까, 한 20∼30명 되죠. 방이 모자라서 한 집에서 다 잘 수도 없어요. 이렇게 대가족이 모이니까 노는 것도 제각각이었죠. 한쪽에서는 윷놀이를 하고 한쪽에서는 ‘섯다’를 합니다. 또 한쪽에서는 옛날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유년의 기억은 아무리 삶이 척박했어도 행복한 법인가보다. 그의 눈빛도 어느새 사르락 솜사탕처럼 녹아버린다.
“가난했지만 정이 있었어요. 지금과는 많이 다르죠. 지금은 배는 불러도 정을 느끼기 어렵잖아요. 고향이 주는 애틋함도 그렇게 크지 않고. 예전에는 고향에 가려면 작정하고 가야 했어요. 교통편이 좋은 것도 아니니까. 특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명절은 더욱 애틋했죠. 모두 모여서 예전 이북에서 살 때 이야기를 나눴어요. 추억을 공유한 거죠.”
설날 아침이 되면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고 가족 모두가 음식을 장만했다고 한다.
“국수를 말고 떡을 쳤죠. 함경도식 국수를 즐겨 먹었습니다. 함경도식은 매밀이 아니라 당면으로 만들어요. 양념을 해서 고기와 오이무침을 같이 말아 먹는데 상당히 쫄깃쫄깃합니다. 냉면이 아니라 온면으로 만들어 먹었어요. 서울시내에서 그런 국수를 파는 데는 없죠. 떡도 그렇습니다. 찰떡도 함경도 식으로 먹었죠. 보통 콩가루에 묻혀 먹잖아요. 우리는 팥가루에 묻혀 먹었습니다. 모양도 형태도 제각각이지만 그 맛을 무엇에 비교하겠습니까.”
 

아직도 기억나는 서울중학교의 추억

당시 서울에는 유명한 사립 중학교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서울중학교는 웬만한 실력을 가지고는 꿈도 못 꿀 정도의 명문 학교였다. 수학실력이 떨어지는 그는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도 그해 수학이 쉽게 나오는 바람에 어렵지 않게 입학할 수 있었다.
“당시 서울중학교가 명문이기는 했지만 일본 학생들이 주로 다니던 학교여서 해방 이후 거의 텅 비다시피 했습니다. 해방 이후 월남한 사람들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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