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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을 이어 온 두 중년의 ‘우정일기’
오십 년을 이어 온 두 중년의 ‘우정일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8.05.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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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인생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 함께 그려지는 우리’

‘공포의 외인구단’. 아마도 만화가 이현세를 표현하는 수식은 이 하나의 작품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 만화계에 가장 굵은 한 줄기 획을 그었던, 대중만화의 전성시대를 이끈 이 남자다. 공전의 흥행을 기록했던 드라마 ‘야인시대’에 시라소니 역으로 출연, 지울 수 없는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 배우 조상구는 ‘타이타닉’ 등 내로라 하는 대작들을 우리말로 옮긴 최고의 번역가이기도 하다.
이 두 남자의 인연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현세 만화 속 초창기 까치의 캐릭터가 조상구였다고 하면,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며 놀랄 정도. 물론 까치의 모델이 조상구 하나만은 아니다. 작가라면 누구나 작품의 주인공 속에 자신을 담게 되는 것이 응당 자연스런 일. 어쩌면 까치는 두 남자의 잔상을 모두 간직한, ‘함께했던 세월의 공집합’이 아닐까 싶다.

리허설, 그땐 그랬지
둘의 인연은 그냥 ‘운명’이라 표현하는 것이 빠르다. 경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거의 매일을 함께 형제처럼 지내다시피 했다. 매 학년 같은 반이었고, 키도 비슷해 언제나 짝꿍이 되었던 그들이었다.
가난에 익숙했던 이현세와 달리, 부모가 장사를 했던 조상구의 집은 꽤나 넉넉한 편이었다. 둘은 학교가 파하면 조상구의 부모가 업으로 삼던 가게로 달려가 국수로 굶주렸던 배를 채우고는, 그맘때의 여느 아이들처럼 산으로 들로 쏘다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서야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친구의 부모들도 제 자식처럼 반겨주고, 소년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예쁜 막내 누이까지 있었던 조상구의 집은 이현세에게는 또 다른 안식처이기로 남는 것이었다.
집안은 화목했지만 언제나 지긋지긋한 가난을 달고 살았던 이현세의 어린 시절 소원은 고깃집 딸하고 결혼해 만화방 주인을 하는 것이었다. 고기는 명절이나 제사 때가 아니고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그것도 국거리에만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 삼겹살을 먹었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웃음). ‘국거리가 아닌 구워 먹는 고기도 있구나’싶었죠. 소주와 삼겹살의 앙상블을 벗어날 수가 없어, 결국 전당포로 달려가 차고 있던 시계를 잡혀야 했죠(웃음).”
이제는 그렇게 지나가는 웃음으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과거지만, 스스로가 어렸을 때는 ‘핸디캡 덩어리’였다고 말하는 이현세다. 단지 ‘가난’만으로 점철되지는 않는 기구한 사연도 자리한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이현세는 헌병대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 살게 되었고, 스무 살이 되던 해까지 진짜 아버지를 ‘작은아버지’로만 알고 살아야 했었다. 아버지가 없는 삶은 가난이 더해지며 종종 가슴을 걷잡을 수 없도록 휑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이현세에게 아버지와 함께 거의 매일 저녁 극장을 찾을 수 있었던 조상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영화는 나에게 모태신앙이었다”고 말하는 조상구, 그는 아버지가 키워낸 것이었다. 언제나 조상구에게 영화 볼 돈을 쥐어주던 아버지는, 영화를 보다 아들이 정학을 맞아도 개의치 않을 정도였다. 나이가 어려 극장에 갈 수 없는 아들에게 자신의 코트를 입혀 데리고 다니는 일은 예사였다. 조상구는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된 날이면, 으레 이현세에게 달려가, 그 경험을 나누고는 했다.
“가깝게는 부산, 멀게는 서울까지 가서 영화를 보고 오면 현세에게 제일 먼저 달려가 얘기를 해주고는 했어요. 그러면 현세는 이내 옆 반으로 달려가 다른 친구들에게 마치 자신이 영화를 보고 온 것처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는 했죠.”
영화 속 여주인공의 벗은 뒤태를 보기 위해 둘이 몰래 영화관 담을 넘기도 했던 당시는, 이제 두 중년의 추억으로 가는 길목이 되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와서 한동안은 서로를 볼 수 없었다. 이현세가 습작을 위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상구는 만화방 창문에 전시용으로 걸려 있는 친구의 만화책을 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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