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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문인’ 소설가 최옥정의 삶과 작품 세계
‘여성 문인’ 소설가 최옥정의 삶과 작품 세계
  • 송혜란
  • 승인 2018.03.30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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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기에 빠진 이들을 위한 글쓰기 처방전까지
 

작가 인터뷰는 늘 흥미롭다. 마치 깊은 우물을 파고 들어가듯 대화의 물꼬를 트면 목마른 호기심에 촉촉한 단비가 내린다. 위대한 소설가를 여느 평범한 사람 대하듯 바라보다가도 이내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선 지대한 존경심이 샘솟는다. 특히 자기만의 올곧은 작품 세계에서 무서운 병과 싸우며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작가 최옥정. 이번 달에는 한 여성 작가의 삶과 사유의 지평이 일상에 무한한 영감을 수놓았다. 다양한 무늬가 점철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우리 인생일 것이다.
 

최옥정 작가는...

1964년생인 최 작가는 건국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한참 영어 교사로 일했다. 카피라이터, 통역, 번역 등의 일을 하며 감히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지금 글을 쓰지 않고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결혼 후 한창 가사와 육아에 시달리던 때였다. 자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사는 삶을 견딜 수 없었어요.”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이라 여긴 그녀는 이토록 루틴한 일로 제 삶을 다 소진해 버리면 과연 행복해질까, 끊임없이 자문했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게 무엇일까? 그녀는 자신에게 무엇인가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한다.

“답이 예술밖에 없었지요. 작가라고 하면 흔히 허용되는 게 있잖아요. 제 일이 있어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방식이요. 가령 긴 여행을 가는 등 남과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가져도 저는 작가이므로 다 이해해 줄 것 같았어요. ‘그냥’ 주부는 엄청 소외되어 있으니까요. 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녀의 나이 서른 중반. 다소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2001년 <한국소설>에 소설 <기억의 집>을 내며 작가 인생에 첫발을 디뎠다. 지금은 <매창>, <늙은 여자를 만났다> 등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한국 여성 문인이다. 허균문학상과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그녀다. 50대에게 자기 생각을 글에 담아내는 방법을 알려 주는 <2라운드 인생을 위한 글쓰기 수업>을 펴내기도 했다.
 

마음 상처에 탁월한 처방전

실제 그녀 역시 몇 해 전 쉰 살을 넘겼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에 인생 이모작을 고민하며 오춘기에 빠진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제 갓 인생 2라운드에 접어든 그녀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제 생각과 매우 다르더군요. 일단 더 이상 건강하지 않아요. 특히 여성은 폐경기가 오면서 아름다움을 잃지요. 아름다움은 여자들의 본능인데 주위에 충격받은 사람도 꽤 많아요. 회사 일과 양육 등 육체적 강도가 높은 일도 하기 어려워지므로 삶의 근거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갑자기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이때도 그녀는 오로지 글쓰기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기존의 집필과 사뭇 달랐다. 글쓰기 목표가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 데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다만 생각은 휘발유같이 금방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글로 옮겨 적어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생각은 실체가 없을 뿐 아니라 과장되기 마련이에요. 우선 글로 쓰면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니까 과장된 부분은 다소 수정할 수 있어요. 글쓰기가 어떻게 보면 가장 안전한 방법인 셈이에요. 자신의 계획을 적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하고요. 머릿속에 있는 것과 종이 위에 존재하는 것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답니다.”

이는 그녀뿐 아니라 슬슬 다니던 직장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 은퇴 세대들에게도 꽤 유익한 방법이다. 글쓰기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아주 탁월한 처방전이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3년간 전국 각지의 도서관과 인문학 아카데미에서 ‘2라운드 인생을 위한 글쓰기’ 수업을 열어 50대에게 글 쓰는 방법을 전수한 바 있다. 저서 <2라운드 인생을 위한 글쓰기 수업>은 당시 강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

수업에서 그녀는 먼저 무엇이든 써 보라고 주문한다. 그럼 수강생들이 굉장히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한다. 이후 ‘자기소개’, ‘화가 났던 일’, ‘앞으로 3년 안에 하고 싶은 일’, ‘내 친구’, ‘최악의 여행’ 등의 주제를 던져 준다는 최 작가. 이처럼 스스로를 찾아가는 자서전 같은 글쓰기를 하다 보면 자기 삶의 단편들이 드러나게 돼 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첫날에는 다들 무지 힘들어하는데 일이 주, 삼 주쯤 지나면서 봇물이 터져요. 저도 너무 신기해요. 매번 확인하면서도 계속 놀래요. 그만큼 모두 안에 쌓인 게 많은 거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지적이에요. 누구든,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어요. 저는 단지 ‘나는 글을 못 쓴다’는 생각을 바꿔 줬을 뿐이에요. 억압을 풀어 준 거지요.”

지금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절박감. 그 힘이 그들의 손을 절로 움직이게 했을 것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투철한 글쓰기 철학

반면 한 수업 시간에 ‘꼭 솔직하게 써야 하나요?’라고 묻는 어떤 여성도 있었다는 최옥정 작가. 그럼 자신은 절대 글을 쓸 수 없다며 펜을 탁 놓더니 다음 수업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작가도 글을 쓸 때 꼭 정직해야 하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최 작가는 소설과 인생은 등을 맞댄 한 몸이라는 생각으로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거기서 창작의 모티브를 찾는다고 알려져 있다.

‘소설은 진짜여야 한다.’ 그녀는 얼핏 터무니없는 것 같은 이 말을 바라보며 소설을 써 왔다고 고백했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한 줄도 삶과 동떨어진 가짜여선 안 된다고 가슴속에 아로새겼다는데…. 자신이 발견한 인물을 끝까지 자기 분신이라 여기며 책임지는 게 작가의 일이라고 그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물론 작가라고 반드시 솔직할 필요는 없어요. 동시에 삶의 정면에 육박해 들어가지 않고선 소설도 쓸 수 없지요. ‘나’와 ‘너’, ‘그녀’라는 이름을 빌려 바닥 깊은 곳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소설이에요. 작가는 소설 속에서 살인범도 될 수 있어요. 거짓말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 작가가 된 사람도 많은걸요. 그러면서 언어가 발달해 왔지요.”

문제는 거짓이란 게 자신이 말하고 싶은 진실을 상대방에게 맞닿게 하기 위한 일종의 트릭이자 방법이어야지 내용 자체가 거짓이어선 안 된다고 그녀는 단단히 되짚었다. 그래서 소설가는 자신이 확실히 아는 것을 쓸 수밖에 없단다.

“누군가 홍상수 감독에게 물었어요. ‘당신 영화에는 왜 영화감독만 나오느냐?’, ‘왜 다른 직업인은 없느냐?’ 홍 감독은 이렇게 답했지요. ‘나는 영화감독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게 영화감독의 삶이다. 내가 어떻게 파일럿에 대해 쓸 수 있겠는가? 나는 파일럿을 잘 모른다.’ 예컨대 자신이 무능한 남자를 만나서 누구보다 그 부류에 대해 잘 안다면 그 이야기를 쓰라는 거지요. 한번 내 몸을 통과한 진실을 글로 써야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어요.”

숱한 작품을 내놓은 김훈 작가 하면 왜 여태 <칼의 노래>가 가장 먼저 거론될까? 은희경 작가의 경우 <새의 선물>이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자기가 세포 하나하나를 오롯이 느낀 것을 썼을 거예요. 그런 작품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결코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소설이 곧 작가의 역사

결국 작가에겐 경험과 관찰, 상상력이 전부라는 최옥정 작가. 그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문학평론가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방민호 교수는 그녀를 가리켜 ‘존재 자체가 하나의 경이다’고 예찬한 적 있다. 이어 방 교수는 ‘삶과 문학이 어떻게 아름답게 맞물릴 수 있는지 그녀에게서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고 이야기했다.

“제 기질이 그래요. 제스처 같은 게 비교적 없는 편이에요.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도 하지 않아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지요. 아무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면서 느낀 것, 제가 사는 것 이상은 못쓴다는 것을 전 너무 잘 알아요.”

소설이 삶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까? 삶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까? 가장 최근 작 <늙은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 그녀가 오랫동안 조용히 암을 이겨 내 온 싸움의 기록이라는 평이 자자하다.

<늙은 여자를 만났다>를 한마디로 정의하긴 벅차지만 어쨌든 살아서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던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동유럽 체코로 떠나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권위와 의미의 입법자인 아버지로 인한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 작품답게 풍부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이 작품이 나오는 데 장장 10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뜨문뜨문 발표했던 작품 여러 개를 묶은 이 소설이 그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소설을 보며 이 파트를 언제 썼고,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어요. 돌이켜 보면 왠지 많은 힘이 돼요. 한 편, 한 편이 제 인생의 표지석처럼 다가와요. 여러 작품을 모아 두고 보니 웅숭깊어지는 점도 있고요. 제 글의 공통점도 보이더라고요.(웃음)”

그녀가 만든 인물은 대개 목소리가 높지 않다. 자신이 아프다고 크게 울부짖는 사람보다 아픈데 잘 못 우는 사람에게 더욱 마음이 가는 게 바로 그녀인 듯싶다.

“누가 보아도 힘든 상황임에도 혼자 쩔쩔매면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 있죠? 속수무책인 사람들요. 자기가 아픈지조차 모르고, 차마 아프다고도 말 못 하지요. 저는 그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이번 소설에도 무능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는 딸이 등장한다. 가족 모두 아버지를 버리고 싶어 하지만 딸은 견뎌 낸다.

“원망과 반감도 말로 다 하지 않아요. 상대나 주변 상황에 대한 고려가 커서 그렇지요.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넘기긴 싫은 거예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이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통증이 더해질까 봐 겉으로는 절대 티 안 내는 누군가와 똑 닮았다.

“저는 그래요. 암도 제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전면에 내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호흡하듯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제 몸 어느 한구석에서 아프고 있구나, 이렇게 대하고 싶어요. 환자가 되기는 싫어요.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

오직 오늘,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살고 싶다는 최옥정 작가. 일이 좋아 마라톤 선수처럼 20년을 쉴 새 없이 질주해 온 그녀는 올해 안식년을 가질 예정이다. 벌써 지리산 피아골에 한옥집을 하나 지어 놨다고 한다. 조용하고 정결한 문화가 매력적인 일본으로 느릿느릿 여행도 다니고, 관련 소설을 구상할 계획도 슬그머니 내놓았다.

그래도 소설을 쓰는 ‘인간학자’로서 사람을 입체적인 캐릭터로 바라보게 되어 좋다는 최 작가. 그녀는 그동안 소홀했던 소중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음에 그리듯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했다.

“다들 많이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작품집을 비롯해 작가로서의 삶, 문학을 대하는 태도가 많은 여운을 남기는 만남이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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