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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로 생사 넘나들었던 테너엄정행
뇌출혈로 생사 넘나들었던 테너엄정행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8.06.1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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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음악과 대중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지금,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한국 가곡을 쉽게 접할 수 있던 시절은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렸다. 한국 가곡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스타 성악가’ 엄정행. 1968년 첫 독창회를 치른 이후 4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의 목소리는 맑고 힘이 넘쳤다.

갑작스런 뇌출혈로 투병하며 느낀 음악의 소중함
지난가을 엄정행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2주간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들에게서 “그동안 좋은 일 참 많이 하며 사셨나봅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그는 운이 좋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생명이 위태로웠다고. 석 달의 통원 치료 끝에 지금은 건강한 모습이다. 지난 15년간 그는 매스컴을 기피한 채 대학에서 강의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올봄, ‘정년 퇴임’을 맞아 35년간 제자를 길러온 경희대 강단을 내려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당 20시간이 넘는 강의를 해오던 생활에서 벗어나자 한결 여유가 생겼다는 그. ‘교수’로서는 은퇴했지만 ‘성악가’로서는 아직 은퇴하고 싶지 않은 ‘영원한 현역’ 엄정행은 이제 다시 활동을 시작하려 한다.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독창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 그는 한국의 가곡을 위주로 레퍼토리를 짜서 오는 6월 8일 독창회를 갖는다. 가곡을 살리고 싶은 사명감과 노래를 계속하고 싶은 욕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마음이다. 1968년 명동 국립예술극장에서 제1회 엄정행 독창회를 연 지도 어느덧 40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는 1백90회의 독창회를 포함해 1천5백여 회의 연주 무대를 가졌다. 문화예술회관, 구민회관… 회관이 없는 시골에서는 예식장에 서서 노래했다. 그동안 취입한 레코드만 22장이니 대기록을 세운 셈이다.
“독창회를 여는 것은 15년 만이에요. 그동안은 강의 준비 등으로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독창회를 준비할 엄두를 못 냈죠. 하지만 정년을 맞고 시간이 생기니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사실 이 나이에 노래하는 사람이 없죠. 다들 은퇴했어요. 하지만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건강을 되찾으면서 ‘(독창회를)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됐습니다.”

열심히 해라, 너는 악기가 좋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성악가이지만, 그는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 부친이 음악을 공부하셨고, 시골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하신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슈베르트, 베토벤의 곡을 듣고 자라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의 꿈은 사실 배구 선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역시 배구 선수로 스카우트되어 진학했다. 그렇게 5년을 배구 선수로 뛰었는데, 그가 졸업하던 해, 갑자기 배구의 룰이 바뀌었다. 배구가 9인제에서 6인제로 바뀐 것이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키가 작은 그로서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목소리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그는 부친의 적극적인 권유로 음대 성악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타고난 목소리 덕분인지 준비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대학 입시에 합격했다. 그의 인생의 항로가 ‘배구의 룰’ 때문에 방향을 튼 순간이었다.
“원래 경희대 체대를 가려고 준비를 하던 녀석이 음대를 들어가게 되었으니…(웃음). 불어, 독일어, 이태리어를 다 알아야 하는데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포기하려 했던 적도 많고, 일 년 동안 진짜 방황했지요. 대학교 학부 대항 배구 시합이나 쫓아다니고… 노래는 거의 안 했어요. 그때 홍진표 교수님이 저를 잡아주셨죠. ‘너는 운동을 해서 체격도 좋고 목소리도 좋으니 열심히 해라. 악기인 목소리가 좋다’고 격려해주셨어요. 그때 한국에서 스타였던 홍 교수님이 칭찬을 해주시니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목소리라는 ‘악기’가 좋다는 것은 성악가에게는 축복이죠. 바이올리니스트나 첼리스트들이 아주 비싼 명기를 찾는 이유는 그만큼 나오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인 것처럼, 저는 부모님께 좋은 목소리를 받았기 때문에 더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같아요.”
운동과 음악, 서로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루에 5∼6시간씩 배구 훈련을 하면서 ‘인내’를 배운 것이 음악 공부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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