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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택배작가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02 '한 밤의 앵콜'
풍경택배작가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02 '한 밤의 앵콜'
  • 김도형
  • 승인 2018.06.18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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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강화도 가는 길에 구형 프라이드를 목격했는데 그 차가 아직도 운행중인 것이 신기했고 금세 30년 저 편의 기억 한토막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회사에 입사해서 배속받은 부서는 10여 명의 선배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나이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몇 명의 선배들과는 아주 친해서 어느 겨울 그 당시 한 선배가 타고 다니던 프라이드 DM 승용차로 강원도 인제 백담사 계곡을 트레킹 하기로 계획하고 강원도를 향해서 출발했다.

그 작은 차는 장정 다섯 명이 타고 달려도 힘이 달리지 않아서 좀 과속을 했는데 어느 시점인가에서 그만 교통경찰에 과속으로 딱지를 끊게 되었는데 그 때 한 선배가 봐달라는 의미로 "세상 좀 둥글둥글 삽시다" 라고 한 한마디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최종 목적지인 인제 용대리를 코앞에 두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로 하고 이미 어두워진
소양호 빙어마을의 한 횟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은 나이 오십이 가까운 총각과 그의 홀어머니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아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장마철 물에 빠져죽은 사람의 시신을 건져내는 등 동네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해 '고달퍼' 라는 별명이 붙었고 밥보다는 술로 살아서 큰일이라는 것이었다.

빙어회에 곁들인 소주에 얼큰히 취할 무렵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는 고달퍼 형님과 술잔을 주고 받고 있었다. 과연 그 형님의 주량은 우리가 당할바가 아니어서 만취할 단계에 이르렀는데 노래방에서 한가락 뽑던 내 노래실력을 기억한 한 선배가 내게 노래를 한 곡 하라고 했다.

못할게 뭐있나. 나는 애창곡 몇 십곡 정도는 가사도 안보고 노래를 하던 터라 젓가락 반주로 구성지게 노래를 시작했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자 마자 밖에서 '앵콜' '앵콜'하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와서 우리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알고보니 그 횟집은 호수의 수위가 높아지면 낚시하는 낚시꾼들에게 경고 방송을 하는 마이크 시설이 있어서 고달퍼 형님이 장난으로 노래 도중에 그 마이크를 켜놓아서 내 노래가 그만 그 넗은 호수에서 밤낚시를 하던 낚시꾼들에게 생중계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당연히 앵콜곡 몇곡을 부르고 우리는 노모와 아들에게 조만간 또 찾아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용대리로 떠났다.

다음날 아침 간밤에 내린 눈으로 순백으로 변한 백담사 계곡길 트레킹을 마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한 일년이 지난 시점의 술자리에서 고달퍼 형님의 얘기가 나와서 우리는 또 한번 트레킹을 하기로 하고 역시 그 프라이드를 타고 인제의 그 횟집으로 갔는데 어쩐지 고달퍼 형님이 보이지 않아서 물어보니 노모는 눈물을 글썽이며 얼마 전 그놈의 술때문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고달퍼 형님은 잠시 만난 인연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었다.
일년 전의 흥겨웠던 술판은 숙연한 추모의 자리로 변했다.

또 한번 한밤중의 앵콜을 기대하고 새 노래 여러개를 준비해 갔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길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아들을 잊지않고 찾아줘서 고맙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배웅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우리 모두는 아직도 기억한다.

글 사진 풍경택배작가 김도형 (instagram : photol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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