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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들 살해하고 일본에서 내연녀와 도피생활 사건 9년 만에 구속된 서울 S대 교수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아내와 아들 살해하고 일본에서 내연녀와 도피생활 사건 9년 만에 구속된 서울 S대 교수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8.12.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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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이 낳은 결과는 참혹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아내와 자식을 살해하고 심지어 시신마저 불태운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의 범인이 대학교수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불륜으로 시작된 잘못된 선택이 결국
‘가족 살인범’이라는 비극적인 종말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취재_ 박천국 기자 사진_ 매거진플러스 DB

“내연녀의 압박으로 아내와 다툼이 잦았던 전 대학교수
배 모 씨가 낳은 끔찍한 참변”

배 모 씨는 서울 S대 환경조경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98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모교의 교수로 임용됐다. 지인들은 배씨를 ‘뭐든지 다 잘하는 사람’인 데다 외모도 서구형 미남이어서 대인관계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교수로 임용된 지 2년 만에 배씨를 돕는 연구실 대학원생이 6∼7명에 달할 정도였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배씨의 삶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조교와 대학원생 사이로 박씨(39)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결혼 전에는 단순히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결혼 후 배씨가 일본 유학에서 박씨와 함께 연구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결국 박씨는 내연녀로 발전하게 됐고, 이 사실을 배씨의 아내가 알게 되면서 부부간의 불화는 극에 달했다.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시신마저 불태워 은폐
배씨는 네 살 연하인 아내 박 모 씨와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나 1991년 4월 결혼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아들을 낳아 키워왔다.
부부간에 불화가 생긴 것은 배씨와 내연녀와의 관계를 아내가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서로 아는 사이에만 그쳤던 내연녀 박씨와 배씨가 ‘잘못된 사랑’을 시작하게 된 것은 결혼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1994년 배씨가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갔을 때 박씨 역시 일본 쓰쿠바의 한 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60km나 떨어진 두 도시를 오가며 급격하게 친밀감을 쌓아갔다. 특히 서로 같은 분야를 연구하면서 급속도로 관계가 진전됐던 것. 1997년부터 2년 동안 배씨가 쓴 논문 및 학회 발표 중 3분의 2 정도에 박씨의 이름이 공동 저자로 올라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결국 이러한 관계는 불륜으로 이어졌다. 아내 박씨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1999년 초에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사건이 일어나기 7개월 전부터 사실상 이혼 직전 상태에 있었다. 법원에 관련 서류만 내면 바로 이혼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던 것.
그러다 2000년을 하루 앞둔 1999년 12월 31일, 배씨는 서울 중계동 자택에서 아내를 목 졸라 살해했다. 경찰에서 그는 “술에 취해 있었고 전날부터 계속 싸워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진술에 따르면 배씨는 전날 저녁 술에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와 자정까지 아내와 다투고 난 후, 아내가 잠든 뒤 혼자 술을 마셨다. 그러나 아침에 아내가 깨어나 다시 싸움이 시작되자 분을 참지 못하고 아내의 목을 조르고 만 것이다. 이후 아내의 시신을 방에 옮겨놓은 채 아들을 깨워 놀이터로 향했다. 아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나서 오후 세 시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하려 했으나, 아들에게 비닐봉지를 씌워 숨지게 한 뒤 본인은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당시 아들의 나이는 여섯 살에 불과했다.
아내와 아들을 죽인 한 가장의 만행은 그때부터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들의 시신을 은폐하기 위해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후, 다음날 유유히 일본으로 떠났다. 배씨는 일본 쓰쿠바의 한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내연녀 박씨를 사건 이후 처음으로 만나 범행 내용을 고백했다. 하지만 내연녀는 자수를 종용하지 않았고, 결국 함께 도피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도피자금 마련을 위한 입국… 그리고 9년간 은신

두 사람은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 배씨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총 6천만원을 마련했고 내연녀 박씨는 할머니로부터 받은 유산 1억원 중 7천만원을 도피성 자금으로 출금한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배씨는 제자 여섯 명에게 마련한 돈을 여행자 수표로 바꿔오게 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그 돈을 가지고 배씨와 박씨는 일본으로 재출국했고, 도쿄에서 여행자 수표를 현금화한 후 행방을 감췄다. 두 사람은 도피생활 초 도쿄 인근에서 지내다 규슈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들은 주로 후쿠오카와 고쿠라를 오가며 생활했으며, 규슈에 온 후 브로커로부터 위조한 신분증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피자금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했던 두 사람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돈을 모았다. 그러다 올초에는 고쿠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식당을 운영하던 어느 날 일본 경찰이 신분증과 지문을 요구하면서 이들의 도피생활은 막을 내리게 됐다. 결국 배씨와 내연녀 박 모 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10월 24일 국내로 강제 소환됐다. 경찰 조사에서 배씨는 “(우리를 아는 한국인이) 제보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발적인 범행 아닌 계획적인 독살 가능성 제기
그러나 경찰은 배씨의 계획적인 독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배씨는 환경오염과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해온 데다 지난 1997∼98년까지 아황산가스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문 세 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연구 이력을 바탕으로 계획적인 독살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두 사람의 목에서 황산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만약 황산으로 인해 사망했다면 배씨의 계획적인 범죄에 무게가 실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배씨는 현재 계획적인 범죄는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찰조사에서 배씨는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아들을 질식사하도록 했다”며 범행 사실 일체를 시인하면서도 독살은 부인했다. 배씨와 연구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 역시 “그가 연구한 것은 대기오염과 식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실험실에는 독극물이 없었다”고 진술한 바 있으며, 노원경찰서 관계자도 “부검 때 시신에서 소량의 황산이 발견된 것일 뿐, 사인은 질식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에 출두한 배씨는 아들을 죽인 이유에 관해 묻자, “죄송합니다”로만 짤막하게 답변했다. 한 가장의 불륜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결국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으며, 지인들의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배씨에게는 쓰디쓴 후회만을 남긴 채 비극적 결말을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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