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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병상에 있던 아내 떠나보내고 애잔한 마음으로 무대 오르는 배우 윤문식
15년간 병상에 있던 아내 떠나보내고 애잔한 마음으로 무대 오르는 배우 윤문식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8.12.16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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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윤문식을 보고 ‘삶의 해학’을 떠올리지만, 그이는 스스로를 ‘독거노인’이라 부른다. 오랫동안 병상에 있던 아내를 돌보느라 웃음 속에 눈물을 묻혀야 했던 그이. 무대에서는 쉴 새 없이 농담을 늘어놓지만 마음 한 켠에는 묵묵한 그리움이 맺힌다.

취재_ 엄지혜 기자 사진_ 양우영 기자

"있을 때는 몰랐던 것 같아요.그래도 살아서 내 옆에 있어준다는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지탱이 되는지를요.
누구라도 살아 있다는 게 낫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또다시 ‘마당놀이 명배우’ 윤문식이다. 아니, 이제 ‘인간문화재’라고 불러도 좋을 성싶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관객의 가려운 곳을 거침없이 긁어주는 그이는 ‘광대’라고 불릴 때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7년 전 한바탕 감동을 주었던 마당놀이극 ‘심청’으로 또 한 번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그이. 타고난 광대인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첫 연습 때부터 눈물을 보였다. 공연의 첫 막을 올리는 날이 아내의 49재였기 때문이다.

‘심봉사’의 마음 어찌 모를까
“아내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심청’이란 작품을 했지요. 그리고 7년 후 또 이 작품을 하게 되네요. 아내가 죽고 나서… 참 묘한 기분입니다.”
윤문식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심봉사 역할을 맡아 효녀 심청이를 떠나보내는 아비의 마음을 표현한다. 더욱이 지난 11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을 시집보냈으니 ‘심봉사’의 심정을 오죽이나 잘 알까. 평소에 “얼른 결혼하라”며 채근했던 아버지이지만, 막상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을 들어선 그이는 눈물을 참느라 어지간히 힘들었다.
“딸한테 신신당부했어요. 아버지에게 인사할 때 절대 내 얼굴 보지 말라고요. 곱게 한 신부화장이 다 지워버릴까 봐, 내 얼굴 보지 말고 넥타이만 보라고 했죠. 그랬더니 딸이 내 시선을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는데, 감정이 욱하는 게 보이는 거예요. 제가 소리질렀죠. 울지 말라고…. 기어코 저는 울지 않았지만 식장은 눈물바다가 됐죠.”
당뇨합병증으로 15년간 병상에 있었던 아내를 눈물로 보살폈던 딸. 그이는 딸의 결혼식을 아내와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식 몇 주 전, 아내는 세상과 끈을 놓았다. 오랜 투병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아내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홀로 결혼식장을 들어가고 나오며, 아내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사실 옛날 같으면 부모가 상을 당하면 그해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아내도 딸의 결혼식 날짜를 알고 있었고…, 자기 때문에 결혼식을 미루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가 결혼식을 강행했어요.”
사위가 결혼을 1년 미루자고 찾아왔지만, 그이는 딸에게 예정대로 식을 올리라고 했다. 하늘에서도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식이 있기 하루 전날, 마지막으로 딸과 한 집에서 잠을 청하는데 좀처럼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아내가 결혼식에 같이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한숨도 잘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아내가 워낙 오랫동안 병상에 있어, 스스로 독거노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동안 이별을 연습했다고 생각했는데 충분하지 않았나 봐요.”
그이는 아내와 함께한 34년을 떠올리며, 오로지 서로를 위한 날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날짜로 계산하면 거의 14만 일이 되는데, 둘만을 위한 시간은 천 일이 되지 않는다며, 아쉬운 마음을 비쳤다.
“딸을 시집보내면서 그랬어요. 효도하라고 안 할 테니까, 열흘에 하루쯤은 너희 둘만 생각하고 하루를 보내라고요. 옛날 성인들이 했던 말이 맞아요.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다고요. 우리같이 바보처럼 살지 말라고 했어요.”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신접살림을 병원 근처로 계획했던 딸과 사위. 그이는 효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잘 살라고, 곁에 있을 때 서로에게 상처주지 말고 위해주라고 말했다.

“당신은 연극만 해”라며 힘을 주었던 아내
윤문식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와 만난 지 90일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 첫눈에 반하지는 않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잘 통했다. 그이는 아내를 ‘연극을 볼 줄 알았던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오랫동안 무대 위 감초 역할을 해온 그이의 진짜 매력을 아는 사람이었다.
“극단 대표 여동생이 아내와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어요. 아내가 결혼할 나이가 찼는데 안 하고 있으니까, 우리 극단 단원들 프로필이 있는 프로그램을 가져다줬대요. 극단에 노총각이 많으니까 찍어보라면서요. 그런데 아내가 저를 찍은 거예요(웃음). 이렇게 겸손하게 생긴 사람을 찍어준 게 고마워서 만났죠. 90일을 매일같이 만났어요.”
학교 교사였던 아내를 따라가면 어떤 식당에서나 잘 대접해줬다고 한다. 더욱이 아내는 그이에게 반가운 말도 자주 했다. “돈은 내가 벌 테니까 당신은 연극만 해”라며, 한창 무대의 맛에 빠져 있던 그이를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어서 돈을 벌어오라”고 해서 국립극단에 들어갔다며, 소탈한 웃음을 짓는다.
“여태껏 배우를 할 수 있는 게 어쩌면 아내의 내조 때문인지도 몰라요. 고생을 안 시켰으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미안한 마음이 많죠.”
아내를 떠나보내던 날, 그이는 둘만의 추억거리가 많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미어졌다. 병간호하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저씨, 그동안 고맙습니다. 신세 많이 지고 갑니다’라는 쪽지를 남겼던 아내. ‘내가 좀 더 잘해줄 걸, 나랑 살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눈시울을 많이 적셨다.
“아내가 아욱국을 참 좋아했어요. 새우 넣고 끓여주면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몰라요. 난 공연이 끝나면 밤늦게 들어오니까 아내 얼굴도 못 봤거든요. 아침 일찍 학교로 출근한 아내를 위해 아욱국을 끓여 가지고 가면, 도시락을 싹싹 비워서 왔어요. 결혼하고 한 2년 정도를 그렇게 했는데, 3년이 되던 날은 내가 아이를 업고 학교에 가니까 창피하다고 그만 오라고 하대요(웃음).”
그이는 요즘 꼭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잠을 청한다. 아직 꿈에서 아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만나게 되면 못다한 마음을 표현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밖에서는 늘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자주 운다고 한다. 실컷 울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고.
“있을 때는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도 살아서 내 옆에 있어준다는 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지탱이 되는지를요. 누구라도 살아 있다는 게 낫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아내가 생전에 내가 TV 나가고 영화 나가고 그러면, 연극만 하라고 했어요. 셰익스피어의 연극 아홉 개 작품에서 모두 광대역을 했는데, 난 그게 어울린다고 말했던 아내예요. 딸도 엄마를 닮았는지 아빠는 마당놀이만 하래요. 그게 가장 빛이 난다고요.”

소탈한 일상이 좋은 요즘
혼자 사먹는 밥이 지겨워 이제 손수 밥도 지어 먹는다. 여동생이 2주에 한 번씩 반찬을 가져다주면, 전기밥솥에 밥을 지어 먹는다. 그래도 가끔은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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