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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애틋해진 나한일·유혜영 부부의‘마지막 열정’
더욱 애틋해진 나한일·유혜영 부부의‘마지막 열정’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1.2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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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행복

재결합 이후 8년, 편안함이 아름답다
더욱 애틋해진 나한일·유혜영 부부의‘마지막 열정’

흔히 부부를 두고 ‘볼 것 안 볼 것 다 본 사이’라고도 한다. 살아오며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 부부 사이. 무수히 많은 갈등과 시련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련을 이겨낸 부부는 마치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더욱 확고한 부부애를 과시한다.  바로 나한일·유혜영 부부가 그렇다. 지난 1998년 충격의 이혼 이후 2년 만에 재결합한 두 사람. 그후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찾은 행복은 더없이 소중하다.
취재_ 황정호 기자  사진_ 이선우(프리랜서)


“아내는 가장 소중한 산소 같은 사람,
처녀 총각으로 만났을 때보다
지금이 더 예뻐”

한때 최고의 스타커플 탄생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나한일·유혜영 부부. 평생 행복하게 살자며 한 결혼이었지만, 10년 전 닥쳐왔던 큰 파도는 결국 이혼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대로 끝날 인연은 아니었던 모양. 이혼 2년 만에 보란 듯이 재결합을 이룬 부부는 이후 더욱 각별해진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의 재결합에 가장 큰 일등 공신은 바로 딸 혜진 양. 재결합 이후 8년, 어느새 장성해 올 2월 대학 입학을 앞둔 딸을 보는 두 부부의 마음은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혜진 양의 미모는 최근 몇 차례 방송에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게다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끼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현재 아빠, 엄마의 뒤를 이어 연기자가 되기 위한 준비에 열심이라고.
이제 50대, 인생의 후반기를 시작하는 두 사람의 얼굴은 한없이 편안해 보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것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이기 때문이다.

바쁜 와중에도 함께하는 시간은 꼭 가지는 부부
본업인 연기자 외에도 나한일은 한국해동검도 총재로, 사업가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아내인 유혜영 역시 최근 시작한 피부관리클럽 일로 바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시간은 꼭 가지려고 노력한다.
“바쁘긴 하지만 요즘은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주로 주일에 교회에 함께 가면서 시간을 보내죠. 그날 하루만큼은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예배가 끝나면 딸하고 셋이서 저녁도 먹고 그러죠(나한일).”
“교회를 다니기 전에는 주일도 바빴어요. 젊었을 때부터 워낙 바쁜 사람이라 같이 저녁 먹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요즘은 좀 낫죠(유혜영).”
나이를 먹어갈수록 서로에게 더욱 편안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두 사람. 그간에 겪었던 힘든 시간을 통해 얻은 교훈은 ‘배려’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상대방의 성격과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이제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혼생활이란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라고 해서 유별나게 사는 것도 아니죠. 결혼생활은 다 똑같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다가 부부가 돼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각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기 힘든 것처럼, 결혼생활도 서로 다른 가정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결혼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서로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고 때론 갈등이 생기기도 하죠(나한일).”
젊은 시절, 나한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혼을 했음에도 총각 시절과 생활패턴은 변함이 없었다. 아내에게는 무조건 맞출 것을 요구했던 것. 특히 해동검도 총재로 일하며 가정보다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던 그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가정적이지 못했죠. 아내가 말을 해도 안 듣고… 제 입장만 내세우면서 무조건 이해하라고만 했어요. 어찌 보면 제 고집만 내세운 거죠.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아내는 그걸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맞았어요.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죠. 그 당시 이혼을 하게 된 것은 제 잘못이 컸어요. 얼마나 미웠겠어요(웃음). 웬수였지.”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나한일의 말과 행동은 좀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그제야 “아직도 완벽하게 고치지는 못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 그러나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예전의 방식이 일방통행이었다면 지금은 신호를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라고.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섭섭한 마음이 슬며시 피어오르는 듯한 아내.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의 남편은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듣는 ‘벽’처럼 느껴졌단다.
“미워 죽는 줄 알았어요. 결혼을 했다는 인식이 없는 거예요. 환경이 바뀌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죠. 체육관 위주로 살면서 결혼을 했는데도 가족은 가족이고 나는 나, 그런 식이었어요. 아이도 키워야 하고, 저라고 결혼생활이 안 부담스러웠겠어요. 저는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당시에 남편은 그런 의식이 별로 없었어요. 너무 답답했죠.”

끝나버린 인연을 다시 이어준 딸, 고맙고도 미안해
한창 사춘기 시절 엄마, 아빠의 이혼을 경험해야 했던 딸 혜진이. 서로에 대한 서운함은 둘째치고라도 소중한 딸을 두고 이혼을 선택한 것은 지금도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이혼에 이른 것도 자신의 잘못이 99.9가지였다고 말하는 나한일. 그런 남편을 보며 유혜영은 독불장군 기질을 빼면 좋은 사람이었다고 감싼다.
“미워도 아주 미워한 것은 아니었어요. 남편으로서 못하는 게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한일이란 개인을 놓고 봤을 때 인격과 성품은 참 좋거든요. 크게 남한테 나쁜 일 하지도 않았고…. 단지 저와 가정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혼을 했더라도 아이 아빠로는 남겨둬야지 싶었어요.”
이혼 후 다시 한 가정을 이루기까지 2년은 나한일에게 기억도 하기 싫은 시간이었다. 매일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일상이 너무도 소중했다고. 젊은 시절과 달리 가족이 없는 삶은 무언가가 모자란 듯 항상 허전함이 느껴졌다.
“총각 때는 정말 갈 곳이 많았어요(웃음). 그런데 이혼을 하고 혼자가 되니까 정말 갈 곳이 없더군요. 그때 혼자 한강 둔치를 참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지금도 한강에 가면 강남 강변 쪽 둔치 진입로는 다 꿰고 있죠. 그렇다고 친구한테 이혼했다는 이야기도 못하겠고 갑갑하더군요. 집에 들어갈 때면 공허하고 냉기가 감도는 것이 싫었어요.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이상하게도 혼자가 되니까 일찍 들어가지더라고요. 제일 힘들었던 건 이상하리 만치 주말이 되면 할 일이 안 생긴다는 거죠. 제가 그때 많이 늙은 것 같아요(웃음).”
재결합의 이유가 100% 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역시도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여전함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딸아이가 무심코 한 말은 재결합을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아이가 속이 참 깊어요. 엄마, 아빠가 이혼한 뒤로도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었죠. 양쪽에서 항상 중립이었어요. 주말에 저한테 오면 설거지도 해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한테 엄마, 아빠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대요. 그런데 하루는 애들이 놀린다더군요. 결손가정 아이를 놀리는 말이 있나 봐요. 그것도 심각하게 이야기한 게 아니고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그때 아차 싶었어요. 그후로 항상 그 말이 안 떠나더군요(나한일).”
“당시에는 어렸는데도 저한테 매일 아빠가 불쌍하다고 그랬어요(유혜영).”
“그랬어(나한일)?”
아빠로서 그리고 아내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 더 이상 망설일 수는 없었다. 영원히 남남이 되어버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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