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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의 두 번째 커밍아웃 아버지, 누나, 자신의 아이들로 입양한 조카들과 ‘온 가족’ 인터뷰
홍석천의 두 번째 커밍아웃 아버지, 누나, 자신의 아이들로 입양한 조카들과 ‘온 가족’ 인터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1.2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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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의 두 번째 커밍아웃 아버지, 누나, 자신의 아이들로   
 입양한 조카들과 ‘온 가족’ 인터뷰

“성 정체성 고백 후 꼭 10년,
                  온전히 누려보는 사랑 그리고 행복”


2000년 연예인 신분으로는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밝혀 대한민국 전체를 놀라게 한 홍석천. 어느새 당당한 고백을 한 지도 햇수로 꼭 10년이다. 10년이 되면 그간에 누렸던 많은 일들을 책으로 내보이겠다고 생각을 해온 그가 최근 그 책을 발간하면서 또 한 번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다. 누나의 두 조카까지 자신의 아이로 입양해 일거수일투족 관심을 받고 있는 그가 처음으로 온 가족을 본지에 공개했다.  취재_ 김재우 기자  사진_ 양우영 기자


# turning point
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아 ‘무조건’ 열심히 살았어요
최근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침체에 따라 ‘생계형’ 창업과 취직이 안 되어 자영업에 눈을 돌리는 ‘취업형’ 창업이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창업의 길을 걷는 행복은 열 명 중 고작 한두 명에게만 허락된다. 나만의 ‘무언가’를 꿈꾸기는 쉽지만, 그만큼 꿈을 실현시키기에 세상은 험난하기만 하다. 책을 준비하면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성공 창업의 키워드는 성실성과 진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를 입증한 우리 시대 성공 창업의 대표 아이콘으로 비치는 그는 커밍아웃으로 겪은 수많은 시련을 딛고, 2002년 ‘아워플레이스’를 창업했다. 이후 8년째를 맞고 있는 지금 그의 자산가치는 무려 40억원대에 이른다.
커밍아웃 이후 방송 퇴출이란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 그는 ‘대한민국의 절반이 손가락질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물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스스로 참고 견디며 눈물을 흘렸던 그간의 감춰둔 시간은 그 누구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그의 몫이다. 때로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항변을 하고도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가족을 생각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욕을 해도 가족만 절 지지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 가족도 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지만, 제가 고백한 사실은 인정하려 들지 않더군요. 세상 사람들에게 다친 마음을 가족에게라도 치유받고 싶었던 것이 제 욕심이었을까요. 그럴 때마다 죽음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절망에서 가족의 슬픔을 미리 내다보게 되더군요. 아들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느낀 나머지 늘 술을 드시고 흐느끼는 아버지, 그리고 제가 잘못되면 바로 따라 죽을 것 같은 어머니….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살아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절망의 시간을 견디면서 그는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대중 속에서도 변함없이 자신을 응원하고 아껴주는 이들의 고마움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소박하나마 그런 소중한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태원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워플레이스(Our Place)’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그만의 콘셉트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자, 처음 몇 년의 적자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매출이 나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타이 레스토랑인 ‘마이타이’, 퓨전 중국요리를 접목시킨 ‘마이차이나’, 노래와 와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마이쏭(Song) 빠’를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레스토랑 CEO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됐다.
그의 레스토랑들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메뉴 업그레이드, 세련된 인테리어 감각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었다는 고객들의 평가 속에 지금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현재 네 번째 레스토랑이자 다섯 번째 가게를 준비 중에 있다. 이러한 연이은 성공에는 꼼꼼한 상권 분석, 독창적인 아이템 선정,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개성 있는 인테리어, 매장 관리와 종업원 교육까지 사소해 보이는 부분들을 세심하게 챙기는 CEO로서의 성실함이 깔려 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노하우를 이번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연기 말고 처음으로 하는 일에서 다시 실패를 맛보고 싶지 않았어요. 전 살아야 했고, 이겨내야 했으니까요. 그동안 여러 인터뷰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성공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어요.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딱히 많은, 그리고 여러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닐 수 있어요. 그저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게 곧 성공이었으니까요.”

# return a person’s love
미안함을 대신하려 가족 모두를 끌어안고 사랑하고 있어요
이번 책은 비단 홍석천의 창업 성공 비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간에 털어놓지 못했던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충남 청양에서 보낸 유년기, 그리고 청소년기의 아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똑똑하고 바른 아들이었다. 자신의 혼란과 아픔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그는 단 한 번도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에게 첫 번째 혼란을 준 것은 고3 대학 진학을 앞둔 시기였다. 여러 장사를 하던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안정된 공무원이 되기를 늘 바라왔다. 공부도 곧잘 하던 아들은 그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 그러나 그 예상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 빗나갔다. 연극영화과를 가고자 하는 아들의 고집에 아버지는 적지 않은 배신(?)을 느껴야 했다.
어렵게 얻은 늦둥이 외동아들이 조금은 불확실할 것만 같은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의 아버지 마음이란 세상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쉽게 승낙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새벽까지 부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끝내는 아버지가 “너를 믿는다. 네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허락하마” 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을 하면서부터 그는 늘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나갔다. 되도록 등록금도 자신의 힘으로 충당(?)하면서 부모가 원치 않는 길을 가는 아들의 미안함을 대신하려 노력했다. 그 버릇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뜻하지 않게 자신의 성 정체성 고백이 온 세상을 도배했을 때도 애써 부모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고, 덜 힘들어할 것이라는 다짐을 몇 번씩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부모님 앞에 서면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특히 저 하나로 고향 분들에게 받아야 했던 따가운 시선을 생각하면 애써 의연한 척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매일 밤 번갈아 가며 저를 설득하셨죠. 남자를 사랑하는 아들을 인정할 수 없으니, 제발 제자리로 돌아오라는 주문인 셈이죠. 그런 전화를 받다 보면 가장 힘이 되어야 할 가족에게마저 외면을 당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맞선 자리를 일부러라도 만들어놓고 아들을 설득하기 위해 전화하거나 서울로 상경하는 부모의 절박한 모습. 그런 상황을 이어가기 싫어서라도 자신의 꿈과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고백을 한 것이었는데, 부모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힘든 부분이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성 정체성을 되찾아 손자 손녀를 안길 것 같은 기대를 수시로 하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로서 그 생각만 하면 답답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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