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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소설가’ 박범신을 말하다
‘이 시대의 소설가’ 박범신을 말하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3.22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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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소설 연극무대 올리는 아들 박병수
‘이 시대의 소설가’ 박범신을 말하다

박범신의 소설 ‘촐라체’가 연출가 아들에 의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연출가가 된 박병수는
아버지의 문학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소설가 아버지를 둔 고충(?)도 있었다고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작품을 각색한 그에게 ‘아버지 박범신’에 대해 물었다.


취재_ 엄지혜 기자 사진_ 우미진(프리랜서), 매거진플러스 DB

"굉장한 완벽주의자고 성실하세요. 무섭고도 존경스러운 점이 벌써 연세가 예순셋인데도 하루에 강의를 세 개나 하세요. 펜도 놓지 않으시고요. 스스로도 일중독이라고 말씀하시죠. 항상 노동을 멈추지 않는 분이세요.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벌써 30대 후반을 향해 가고 있는 박병수는 ‘청년 작가’ 박범신의 아들임을 증언이라도 하듯 상당한 동안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대로 빼닮지는 않았지만 눈썹만큼은 똑 닮았다. 학창시절 문예창작학과와 연극영화과에서 고민하다가 연영과를 선택, 지금은 ‘지구연극연구소’ 부대표로 명지대학교 뮤지컬학과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그는 문단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작품 ‘촐라체’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많은 부담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작품’이라는 이유보다는 ‘꼭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기에 선택을 했지만, 다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던 것. “이걸 어떻게 연극으로 만드냐”고 했던 아버지 박범신은 이제 묵묵히 연출가 아들의 첫 데뷔작을 기대하고 있다. 아들과 함께 더블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젊은 연출가로 첫 발걸음을 옮기는 아들이 더 단단해지길 바랐는지, 부담스럽다며 조용히 지켜보겠다는 뜻을 전했다.
‘촐라체’는 연출가로서 꼭 올려보고 싶은 작품
박병수는 대학 입학 면접시험에서 연극영화과를 지원하는 이유에 대해, “아버지 소설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꼭 16년 만에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사실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정말 유명한 아버지를 두고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제게 좋은 점이 별로 없어요. 군대 취사병이랑 똑같은 거예요(웃음). ‘잘하면 아버지가 도와줬겠지, 못하면 빈 껍데기였네’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촐라체’는 연출가로서 꼭 올려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산악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라 성공하기가 쉽지 않지만 연극에서는 가능하다고 봐요. 무대 뒤는 상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관객들과 약속만 돼 있으면 연극적 상상력이 가능하거든요.”
‘촐라체’는 히말라야산맥에서 죽음의 봉우리로 불리는 촐라체를 정복하고, 하산하다 실족한 형제가 극적으로 돌아오는 생환기를 다룬 작품이다. 박병수는 촐라체 여정을 통해 “습관적으로 꿈을 잃고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도전과 위안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원작‘촐라체’는 국내 작가로는 최초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발표한 블로그 연재소설로, 중견작가의 시도로 보기에는 자못 파격적인 일이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좋았어요. 언제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아버지답다는 생각을 했죠. 사실 인터넷은 잘해도 못해도 몰매 맞는 곳이잖아요(웃음). 사회적으로 이미 인정받은 작가가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데, 아버지는 작가들도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현실에 부딪쳐 젊은이들의 시선과 마주해야 한다고요.”
사실 그는 1백2회에 달하는 연재소설을 꼬박꼬박 읽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 번, 네 번에 걸쳐 작품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독자로서의 시선을 가졌다. 그리고 연재가 마무리될 무렵, ‘촐라체를 나의 첫 번째 연출 작품으로 올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원작자인 아버지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허락해줬다고 한다. 현재 영화화에 대한 이야기도 오가고 있지만, 산악을 주제로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염려에서였다.
“가족도 모두 몰랐어요. 요즘 기사가 조금 나가면서 ‘아버지 작품 하냐’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원작료를 얼마 드릴지는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아마 흥행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확실히 드리긴 할 거예요. 저희 아버지에게는 공짜가 없습니다(웃음). 노동의 대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에요.”
박범신은 아들이 각색한 ‘촐라체’ 희곡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시절에 아들이 연출한 작품들은 거의 다 읽어보고 조언도 했지만, 이번 작품은 “원작자가 자꾸 이야기를 하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무대 위에 올려진 작품만 볼 생각이라고 한다.
 
 
 
 
 

가정적으로도 완벽한 아버지, 때론 이겨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몰랐던 어린 시절, 박병수는 때때로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몇 달씩 아프리카, 중국, 히말라야 등으로 여행을 했던 아버지는 부재중인 적이 많았다. 때문에 그의 졸업식에서 아버지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던 기억도 있다.
“어릴 때는 왜 우리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랑 다르지? 출근도 안 하시고… 그런 생각이 많았어요. 철들고 나서는 ‘우리 아버지는 하는 일이 다르구나’를 깨달았죠. 그런데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일과 가정, 모두를 동시에 잘하시는 거예요. 보통 잘나가는 예술가들을 보면 작품이 좋으면 가정적으로 안 좋거나, 또 거꾸로인 경우가 많잖아요. 아버지는 둘 다 굉장히 베스트예요. 굉장한 완벽주의자고 성실하세요. 무섭고도 존경스러운 점이 벌써 연세가 예순셋인데도 하루에 강의를 세 개나 하세요. 펜도 놓지 않으시고요. 스스로도 일중독이라고 말씀하시죠. 항상 노동을 멈추지 않는 분이세요.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27세의 젊은 나이로 등단해 활발하게 문학활동을 해온 아버지는 지금껏 가족에게 생계에 대한 걱정을 준 적이 없었다. 치열하게 글을 쓰면서도 항상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했던 아버지다. 박병수는 아버지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을 꼽자면 하룻밤을 새워야 할 정도라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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