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5:00 (금)
 실시간뉴스
시대의 아이콘이 된 아이돌 그룹 ‘빅뱅’
시대의 아이콘이 된 아이돌 그룹 ‘빅뱅’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3.22 1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극심한 부모의 반대 그리고 응원 속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된 아이돌 그룹 ‘빅뱅’
처음으로 공개하는 솔직 담백한 우리 이야기

빅뱅의 성공담을 다룬 자기계발서가 출간됐다. 조금은 빠르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기다. 하지만 빅뱅은 ‘아직은 미완성’
이라는 말과 함께 꿈을 향해 달려온 시간들을 끄집어냈다. 화려한 아이돌 그룹이 아닌 청년으로 돌아가 털어놓은 무한한 꿈과 열정 그리고 가족 이야기.


취재_ 엄지혜 기자 사진_ 우미진(프리랜서), 쌤앤파커스 제공

빅뱅의 차별화 전략은 시작부터 달랐다. 2006년 7월 한 인터넷TV를 통해 자신들의 데뷔 과정을 공개한 빅뱅은 가수 지망생으로서 치열한 고군분투를 보여줬다. 데뷔 이후 예사롭지 않은 춤실력에 랩, 패션까지 선보인 빅뱅은 단순히 아이돌 그룹이라고 불리기에 아쉬운 존재가 됐다.
빅뱅의 성장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는 “빅뱅은 그저 어리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뜨거운 존재”라고 말한다. 가수 데뷔라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땀방울과 눈물을 흘리고 끝내 하나의 팀으로 탄생한 빅뱅. 이들을 볼 때면 “마치 주변의 에너지를 모두 흡수하며 자라나는 괴기한 생물처럼 느껴진다”며, 역동적인 팀워크를 자랑했다.
“빅뱅 데뷔 초기에는 이들을 ‘아이돌 그룹’이라고 소개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던 적이 있었어요. 아이돌 그룹이라 소개하기엔 제가 생각해도 뭔가 부족한 외모였고,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빅뱅의 활동 방향은 분명 아이돌 그룹이었으니까요.”
양현석 대표는 필요하다면 성형으로 더 그럴듯한 모습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꾸미고 속여도 감출 수 없는 것은 내면에 숨겨진 재능과 노력으로 빚어낸 결과”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빅뱅은 대중스타이기 이전에 신세대가 풍기는 ‘메시지’, 누구보다 솔직한 세대이자 꿈을 꾸기보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뛰어들어 경험하는 ‘촉각의 세대’이기 때문이다.
빅뱅의 막내 멤버 승리는 책 출간에 대한 소감으로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와 실수들을 통해 함께 꿈꾸고 있는 십대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다. 결코 여러분이 별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수라는 꿈을 이룬 대성과 태양은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도 곧 자신이다.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다면 부모님의 반대도 이겨낼 수 있다”며, 가수의 꿈을 가진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미 시대의 아이콘이 됐지만 여전히 ‘도전’이라는 단어에 두근거림을 갖는 빅뱅. 이들에게는 다가오는 봄의 푸른 냄새가 짙게 풍겨져 나왔다.

대성, 목사를 꿈꾸던 소년이 가수가 되다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친근한 캐릭터가 된 대성은 빅뱅에 들기까지 부모의 반대가 가장 심했던 멤버다. 그의 부모는 목사가 되길 바랐다고 한다. ‘대성’이라는 이름의 한자는 ‘큰 목소리로 말씀을 전파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멀쩡하던 아들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가수가 되겠다고 설쳐대니 아버지도 많이 황당하셨을 거예요. 무엇을 하든 언제나 제 편이던 누나조차도 ‘도대체 왜 갑자기 가수냐’며 물어왔을 정도로 가수 선언은 파격적이었죠.”
중학교 2학년 때 담임교사가 무심코 던진 “노래 잘하네”라는 칭찬에 가수라는 꿈을 갖게 된 대성은 부모의 반대가 심할수록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 불타올랐다. 지금까지 부모의 말을 한 번도 거역한 적이 없었지만, 기필코 기획사까지 들어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완고한 아버지의 고집을 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도 모르게 ‘제대로 보여드리겠다, 꼭 보란 듯이 가수가 돼서 아버지 콧대를 꺾어드리겠다’ 하는 결심이 생겨버린 거예요. 말로만 ‘음악을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뭔가 증명이 될 만한 것을 보여드리면서 설득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방송사 아카데미 오디션이었다. 물론 합격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는 그치지 않았다. 결국 외출과도 같은 가출을 했고, 아버지는 끝내 허락을 했다.
“승낙이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꿈에 그리던 YG엔터테인먼트에서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듯이 급하게 팝송 한 곡을 준비했는데, 운이 좋은 건지 운명의 장난인지 연습생이 됐어요. 아버지와는 두 가지 약속을 했고요. 학교에 결석하지 않는 것과 무슨 일이 있어도 열한 시까지는 귀가하기였어요.”
대성은 YG에서 유일하게 매일 등교하는 연습생이 됐다. 태어나 처음으로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고 하루 열두 시간씩 각종 트레이닝을 받았다. 다른 멤버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핸디캡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했다. 그렇게 연습하다가는 목이 망가진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결코 꿈을 놓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 줄기차게 들었던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었어요. 성적이 떨어지거나 친구들과 다투거나, 심지어 아버지가 가수의 길을 반대하셔서 기분이 처져 있을 때에도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괴로울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해주셨어요.”
대성은 인생의 가장 큰 달란트로 ‘긍정’을 꼽는다. 디지털 싱글 ‘날 봐, 귀순’을 발표할 무렵, 이 긍정의 힘은 다시 한 번 발휘됐다. 빅뱅 멤버가 트로트를 한다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이 있을 때도 머릿속에 깊숙이 입력된 ‘긍정 방정식’을 떠올렸다.
“긍정이라는 습관이 없었다면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그냥 꿈으로만 묻어두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빅뱅 활동부터 트로트, 버라이어티, 뮤지컬, 음악 프로그램 MC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는 대성은 “희망을 품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을 품고 꿈을 향한 믿음을 키우고 있다.

 
 
 
 

승리, 한 번의 실패를 기회로 만들다
팀의 막내로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하는 승리는 빅뱅 멤버가 되기 위해 가장 고군분투했다. 2006년 여름, 1년 남짓 진행된 오디션에서 끝내 불합격한 것이다. 오직 가수가 되겠다는 꿈 하나에 의지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에 왔던 승리. 냉정하고 아픈 평가를 받고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불합격을 받고 마음을 접으려는 순간, 양현석 대표님께서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멤버들의 연습이 끝난 다음에 새벽에 나와 연습하는 것은 괜찮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붙을 가능성은 10% 미만이라며 눈곱만큼의 가능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