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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가 말하는 한국 사랑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가 말하는 한국 사랑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3.2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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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가 말하는 한국 사랑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2008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르 클레지오는 ‘살아 있는 신화’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대작가다. 지난 2007년 한국에 머물며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맺은 그가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 선정한 한국이미지 징검다리 상을 수상하며 한국에 따뜻한 애정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취재_ 김은희 기자 자료제공_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제가 한국을 처음 찾은 것은 2001년 한·불 작가 교류 모임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자리를 통해 황석영 씨 등 한국 작가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지요. 그동안 잘 몰랐던 한국에 대해 눈을 뜬 것도 이때였습니다. 한국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저는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한국의 해학도 알게 됐고 한국인이 느끼는 삶의 즐거움도 알게 됐습니다. 음식 또한 한국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삼계탕도 훌륭하고, 미역국도 좋아합니다. 정말 맛있어요. 김치도 제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입니다. 서울은 정말이지 살아 숨쉬는 도시입니다. 거리 풍경은 6개월만 지나면 어디가 어딘지 모를 만큼 완전히 바뀝니다. 이 정신 없는 변화에 서울 사람들은 잘도 적응을 하더군요. 한강을 낀 서울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한강은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변화무쌍한 서울을 감싸안아주지요. 그런 한강의 넉넉함 속에서 서울은 변화하고 발전해왔습니다.

한국은 분단과 함께 전쟁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북이나 남이나 이데올로기에 갇혀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제 이 같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의 통일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염원이며, 한반도 통일 문제는 세계가 나서서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에서 제게 주신 상의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징검다리라는 발상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풍경을 떠올리게 하지요. 한국과 프랑스의 중간에서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되어 정말 흐뭇하고, 징검다리라는 별칭을 얻게 돼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雲住寺, 가을비 - 르 클레지오 作, 배영란 譯
부슬부슬 내려오는 는개 맞으며
꿈꾸는 두 시선은 하늘 위로 향한 채
명상하듯 누워 있는 돌부처들
원래 셋이었던 이들 가운데 하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절벽 끝까지 걸어갔다 한다
바위에 등을 붙이고 있는 두 臥佛도
언젠가는 자리에서 일어날 테고
그러면 새 세상이 열린단다.

서울 시내 거리에선
젊은이들, 아가씨들이
시간을 재촉하고 촌각을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팔며
만들고 꾸며내고 뒤적거린다.
붉게 물든 가을단풍 한가운데
구름에 기대어 선
운주사에서
산허리 위 몽상 중인 두 부처를
그 누가 아직 생각하고 있을런가?

뒤적거리고 쏘다니며
낚아채고 가져간다
로아* 신령 얼굴에
주술 혼령 눈빛을 한
돌부처들은
잠 못 드는 밤 이따금씩,
동대문 시장 대형 상점과
숲속 나뭇가지만큼이나 많은
네온사인을
상상하고 있을런가?

또 다른 세상의 저 끝에
또 다른 바다의 저 끝에
두 동강 난 나라 하나
겁에 질려 생채기 난
두 눈이 먼 나라 하나

무언가를 사고팔며
보고
꿰뚫어보고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한 척의 배마냥 불 밝혀진
서울의 밤이다

예술의 거리 광주와
인사동에서
아침은 너무도 고즈넉하다
청소부는 상자를 주워 담고
아직 문을 연 카페에서는
두 연인이 손을 맞잡는다.

살며, 움직이며
맛보고 지나치고 슬며시 감각이
끼어든다
번데기 굽는 냄새
김치
김 가루 얹은 국수
고사리
톡 쏘는 해파리
바다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이 땅에는
에테르 맛이 감돈다

바라고 꿈꾸고 살아가고
글을 쓴다

또 다른 세상의 저 극단에
사막의 저 끝에
반짝이는 불빛 조각들이
이제 막 시작된 밤을 수놓는다.

갈망하고 일탈하며
도를 넘어선다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오고
숲속 부러진 나뭇가지를 볼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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