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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허영호의 끝나지 않은 도전
탐험가 허영호의 끝나지 않은 도전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4.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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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인류 최초 세계 3극점, 7대륙 최고봉에 오른 사나이
탐험가 허영호의 끝나지 않은 도전

“나는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탐험가 허영호의 말이다. 에베레스트 세 차례 등정을 비롯해 북극점, 남극점 탐험에 성공한 그는 지금도 새로운 탐험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초경량 비행기로 제주도와 독도를 비행했고,
올해는 평양에 가는 것이 목표다.

취재_ 엄지혜 기자 사진_ 김승환(프리랜서)

“도전, 목표가 없는 인생은 재미없다.
끝까지 자기 꿈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어릴 적 조종사가 꿈이었던 탐험가 허영호는 지난해 초경량 비행기로 국토 종단에 성공했다. 2007년 같은 기종의 비행기로 국토 종단에 나섰지만 실패, 1년 4개월여 만의 재도전 끝에 성공을 맛보았다. 그 이름 앞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무수히 붙여나간 허영호는 아직도 ‘도전’이라는 말에 설렘을 품는다.

 
 

탐험은 춥지만 도전은 따뜻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뭐할까’ 하는 생각이 있어야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시간은 참 소중합니다. 도전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니까요. 도전이라는 것은 새로운 세계, 미지의 세계와 함께하는 겁니다. 새로운 가치가 있어야 하죠. 인간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다치기도 하죠. 하지만 정상을 향한 도전은 계속됩니다. 탐험은 춥지만 도전은 따뜻합니다.”
허영호는 산악인들에게 ‘도전’의 상징이다. 1982년 네팔 히말라야 마칼루 등정을 시작으로 1995년 세계 최초로 어드벤처 그랜드슬램(지극 3극점, 세계 7대륙 완등)을 달성했다. 1991년 북극점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 남극점, 북극점, 에베레스트 등 3대 극지를 생각했다. 두께 2,500m가 넘는 얼음 위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남극점에 태극기를 꽂았고, 2007년에는 에베레스트 세 번째 등반을 성공했다.
“사람들이 간혹 묻습니다. 목숨을 바꿔야 할 만큼 위험한 곳을 왜 이토록 많이 가냐고요. 도전 끝에 성취의 기쁨을 맛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래서 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나라는 산이 70%잖아요. 눈만 뜨면 산이고 또 삼면이 바다라 물도 많아요. 5천 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너무나 정적인 역사였어요. 이게 동적인 역사로 바뀌어야 하는데 요즘 부모들은 ‘산에 가지 마라, 물에 가지 마라’고 가르치니 안타까워요. 요즘 청소년들은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면이 많지 않아요. 목숨 걸고 도전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더 보람 있는 인생을 살 수가 있지요.”
그는 사람들이 도전해보지 않은 영역을 목표로 세운다. 탐험가로서 한계에 도전하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다. 고산 등반에서 비행기 조종으로 눈을 돌려, 초경량 비행기를 이용해 제주도와 독도를 비행한 일도 허영호가 최초였다. 한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 ‘국토 종단 왕복’에 성공했다.
“7개 대륙 최고봉과 남극, 북극점을 밟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봤어요. 그러고 나서 ‘또 어떤 도전을 해볼까’ 생각하다가 어릴 때 꿈을 실천하기로 한 거예요. 1998년 초경량 항공기 조종 면허증을 땄고 1,000㎞ 단독비행을 꿈꿔왔죠. 비행기 조종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자동차 운전과 거의 비슷합니다. 다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과 평양을 왕복하고 싶어요.”
허영호는 한계에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보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크다고 말한다. 성공 후에 맛보는 기쁨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이 더 값지다고 한다. “도전하지 않은 것은 고여 있는 물과 같다”며, 뜨거운 심장을 갖길 조언한다.
“우리나라 등반이 폭으로 보면 넓어졌습니다. 많은 팀들이 히말라야도 가고 알프스도 다녀왔죠. 하지만 영국, 노르웨이, 프랑스, 미국과 같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아직 약합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정복했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게 아니에요. 정복했던 것을 다른 방법으로 더 힘들고 빠르게 도전하는 게 중요합니다. 쉽게 정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요.”
그는 가장 힘들었던 원정으로 1995년 북극점을 횡단했을 때를 떠올린다. 러시아 최북단 섬에서 북극점을 찍고 캐나다로 넘어오는데, 그때 기온이 영하 50℃였다.
“바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죠. 사람들이 가끔 물어요. 용변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고요. 우스갯소리로 소변을 보다가 고드름이 달리지는 않냐고 하는데, 그렇진 않아요(웃음). 신속하게 보는 게 중요하죠.”
감사하게도 등반을 하다가 동료를 잃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동상에 걸린 사람도 없었다. 그 스스로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하지만, 잔소리를 많이 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열두 시간씩 북극 탐험을 하고 숙소 안에 들어오면 꼼짝도 하기 싫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요. 그래도 발은 꼭 씻고 자라고 합니다. 발에는 노폐물도 많고 잘못 방치하면 혈액순환도 안 되니까요.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확인해야 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탐험을 하다 생기는 에피소드를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며칠 밤을 꼬박 새워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 5일에 한 번씩 하는 양치질부터 몰래 먹는 술 한잔 이야기까지, 정상에 올라가 대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나면 수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탐험가 아빠 덕에 아들은 13개국 여행
산악인 허영호의 어린 시절 별명이 ‘허깨비’였다면 믿을까. 그는 초등학교 시절 밤에 가위눌리는 일은 예삿일이었다고 말한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체중이 54㎏을 넘은 적이 없다. 허약한 체질 때문에 열심히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높은 산을 올라보고 싶어 암벽, 빙벽 등반 기술을 배우다가 지금에 이르게 됐다. 그는 주위에 몸이 약한 아이들이 있으면 꼭 등산을 권한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하는 가벼운 산행도 추천한다.
지금도 수많은 강연을 통해 ‘산과 도전’을 이야기하고 있는 허영호. 두 아이의 아빠로서는 어떨까. 그는 2003년 아들 재석 군과 몽블랑에 올랐던 기억을 꺼내 보였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기념으로 몽블랑을 가자고 해서 같이 정상을 올랐어요. 그리고 아들은 곧바로 유럽여행을 떠나서 저 혼자 돌아왔는데, 어느새 배낭여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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