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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이야기로 돌아온 작가 김정현을 만나다
‘아들’의 이야기로 돌아온 작가 김정현을 만나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4.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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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만남

소설 ‘아버지’ 신드롬 이후 10여 년
‘아들’의 이야기로 돌아온
작가 김정현을 만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떠올린다. 작가 김정현 역시 마찬가지. 가족 구성원 사이에 일어나는 갖가지 사연은 그에게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모티브다. 힘겨웠던 지난 IMF 시절, 그의 소설 ‘아버지’는 각박한 세상을 향해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운 바 있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아버지는 동시에 누군가의 ‘아들’이다. 작가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과 함께 ‘아버지’인 그가 털어놓은 ‘아들’의 이야기.

취재_ 황정호 기자 사진_ 양우영 기자 장소협찬_ acof(02-722-2088)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봐요.
아들놈은 제가 책임져야 할 그런 존재죠"

김정현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소설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그가 몇 년 전부터 중국에 살고 있다는 것. 봄기운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어느 날, 잠시 귀국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996년 발표한 소설 ‘아버지’는 이후 시작된 IMF 사태로 인해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따뜻한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제 1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세상살이가 힘겹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어려운 상황 속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 역시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다. 작가는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실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따뜻한 사람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다. 아버지 이후 10여 년, 구성진 경상도 사투리로 중국에서 사는 요즘 삶과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푸근함이 느껴졌다.

고향사진관, 꼭 써야만 했던 친구의 이야기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소설 ‘아버지’는 당시 출간 6개월 만에 1백만 부 이상이 팔려나가며 단번에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는 ‘아버지 신드롬’이라는 현상까지 불러왔다. 이후 10여 년, 신작 ‘고향사진관’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출세작인 ‘아버지’가 세상에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위기로 인해 각박해져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발간됐다.
“한참 어렵다가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또 그러네요. 마치 주기적으로 그런 것 같은데… 우리의 기반이 단단하지 못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이번 ‘고향사진관’은 17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보살핀 제 친구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친구 역시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초등학생 때 만난 친구. 이후 40여 년 동안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친구의 삶을 지켜본 그이기에 이 이야기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비범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남다른 싹을 보였던 친구는 자신의 청춘을 고스란히 식물인간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과 맞바꿨다.
“같이 여행이라도 하면서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해도 아버지의 임종을 놓칠 수도 있다며 거절하던 친구였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결국 운명하시고 이제 좀 편해지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불쑥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죠. 간암이었어요. 손도 쓰지 못하고 그렇게 됐죠. 친구도 그렇지만 친구의 아내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요. 제 세대는 물론이고 아마 다음 세대부터는 친구 부부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는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꼭 사람들의 기억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새것이 눈 깜짝할 새 구닥다리가 되어버리는 요즘, 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느끼는 것은 ‘세대 간의 단절’이다. 한 사내가 식물인간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접는다는 것은 요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집필 작업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사람의 따뜻한 감정을 글로나마 남기고 싶은 안타까움의 발로였다.
“저는 부정하는 것을 싫어해요. 긍정적으로 살고 싶거든요. ‘아버지’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당시에 역사 바로잡기 움직임과 맞물려 지나간 아버지 세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이 쏟아졌죠. 역사적 사실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분들 역시 나름의 아픔이 있고 사정이 있었을 텐데, 왜 세상은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지나간 역사는 부정할 것이 아니라 긍정을 하고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실패를 하고 이루지 못한다 해도 끝없이 긍정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세상 이치가 그렇듯이 새로운 세대 역시 언젠가는 부모가 되고 자식을 낳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때때로 더 나은 변화와 진보를 모색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절대로 변해서도, 잊어서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다름 아닌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깊어지는 그의 눈가 주름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잊어가는 세상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람을 관찰했던 10년 형사 생활

‘아버지’를 집필하기 훨씬 이전, 작가 김정현의 탄생 배경에는 의외의 삶이 숨어 있다. 바로 10여 년 동안 서울시경 강력계 형사라는 전직이다. 돌이켜 보면 그가 처음 펜을 들었던 이유도 경찰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형사를 하기 싫어서 그만뒀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리던 그가 기억 깊숙이 간직해두었던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경찰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이 많은데, 사실 그들 역시 나름의 애환이 있거든요. 그보다 더 추한 권력도 많은데, 너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책을 쓰기 시작했죠. 결국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로 할 수 없으니까 글로 쓴 것이죠. 사실은 작가보다는 기자를 더 하고 싶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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