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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나에게 연애감정을 선물한다 ..작가 은희경
글쓰기는 나에게 연애감정을 선물한다 ..작가 은희경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6.1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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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 Essay


“문학은 제게 많은 위로를 줘요.
 소설가는 비밀도 가질 수 있고 
 거짓말도 할 수 있어 행복해요”


이 세상에는 읽어야 할 것 투성이다. 세상의 소리를 들으려면 신문도 읽어야 하고 감성을 찾아내려면 시도 읽어야 한다. 작가는 읽을거리를 써내는 동시에 새로운 읽을거리를 찾는다. 책상에 붙어 앉아 머릿속의 단어들을 나열하기도 하고, 공원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또 독자들을 만나 소통의 즐거움을 갖기도 한다. 그렇게 삶의 순간순간이 소설 속 한 페이지가 된다.
“소설도 시처럼 언젠가 쏘다니는 생각들이 포착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을 위해 온갖 문을 다 두드리고 다녀요.”
예민함만이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 터,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리해주는 여유로운 시선이 때로는 필요하다. 작가는 독자들을 향한 일종의 배려를 잊지 않는다. 스스로의 고통과 견딤을 차분하게 내려놓으며 위안의 말들을 건넨다. 언젠가 ‘타인에게 말을 걸었듯’, 위로의 한 방식으로 소설을 쓴다.

35세 늦깎이 등단,
‘내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겠구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글짓기로 칭찬을 받았다. 계속 칭찬을 받고 싶어 열심히 글을 썼다. 혼자서 책을 읽고 무언가 쓰는 걸 좋아한,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였다. 신문반, 문예반에 들어가서 글을 쓰고, 백일장 대회에서 호명되는 일이 잦았다. 대학에서도 국문학을 전공했다.
“어릴 때는 친구가 별로 없었어요(웃음). 20대 초반까지는 성격이 좀 까칠했던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문학을 무겁게 생각했죠.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독특한 가족사도 없고, 전쟁을 겪어본 것도 아니고, 우주나 미래에 대한 기발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나 같은 사람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작가들을 무시무시하게 존경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많은 일상, 생활적 좌절을 겪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한 사람이 삶에 대해 느끼는 것도 소설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른다섯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눈이 부시게 하찮은 일상도 작가의 시선을 거치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우연히 재기 발랄한 소재라도 맞닥뜨리는 날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작가는 등단을 하고 한동안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초고를 보여주지 않았다. 너무 상투적이라서, 고치고 또 고치느라 한참을 헤매기도 했다. 지금은 남편과 가족, 가까운 지인들에게 슬쩍 초고를 건네본다.
“많은 소설가들이 초고를 누군가에게 보여줘요. 심지어 박완서 선생님도 여쭈어본다고 해요. 하물며 저 같은 사람은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누군가 읽어주면 소독이 되는 것 같아서 안심이 돼요. 초고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점점 술값이 많이 들어요(웃음).”
작가는 위로를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을 선물할 수도 있고, 또 아주 지독하게 나쁜 것들이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소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고통을 건드려 그 고통 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이런 거면 나 혼자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이런 걸 알게 하는 것도 위로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죠. 제 소설이 차갑고 유약적이라는 말을 듣는데, 그건 제게 사랑의 한 방법이에요.”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잘 풀리는 일이 없었다. 직장운도 없었고, 결혼생활도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 조금은 외로웠다. 하지만 무작정 현실에 화풀이하지 않았다. 걱정과 불안을 안고 가되 조금 가볍게 여기려고, 펜을 들어 소설을 썼다. 지금도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어떻게 써야 할까 항상 긴장한다. 이것은 작가들 대부분의 반응이라고 한다.
“어젯밤에 작가들 모임이 있었어요. 다들 자기의 창작 패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거의 비슷해요. 뭐 하나 써보고 싶다는 흥분, 자기 착각 속에 ‘이거 발표하기만 하면 세상이 뒤집어진다’는 생각들. 하지만 아침에 다시 눈을 떠보면 세상은 썰렁한 거죠(웃음). 여러 가지 자기비하나 좌절,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지막에 다 털고 일어났을 때 엑스터시 같은 게 딱 와요. 그 맛 때문에 소설 쓰는 게 힘들지만 견디는 것 같아요.”
은희경. 작가는 이제 한국 문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의 관심을 모으고 여러 작품이 스테디셀러가 됐다. 등단 3년 만에 ‘아내의 상자’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새의 선물’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알렸다. 첫 창작집 ‘타인에게 말 걸기’는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비주류 인생을 그린 ‘마이너리그’로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었다. 2000년에 펴낸 단편소설집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고.

이제 ‘늙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랑한다
작가의 최근 작품은 연애소설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뚜렷하게 정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모호하고 아련한 형식을 취했다. 10년 전 연재했던 소설을 새로 다듬으면서 이제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늙음의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소설 제목은 ‘그것은 꿈이었을까’.
“저는 감상적인 사람이기도 하지만 논리적인 훈련이 많이 됐어요. 뭐든지 이유가 있고 그것에 따라 결과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인간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려는 버릇이 있어요. 간혹 내가 어릴 적 상처를 받아서 그 부분에 예민하구나 하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자기모순에 빠지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인생은 모호하고,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는 과정 속에서 긴장도 느끼고 슬픔도 느끼는 건데… 모든 게 수학적으로 정해진다는 내 사고에 대해 ‘인생은 풀이될 수 없는 거야’ 이렇게 말하곤 해요.”
소설을 쓰면서는 어떤 감정과 사람에 대해 해석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삶이 애매하고 흐리터분하다는 것을 이미지를 통해 말하고 싶다. 작품 속에는 유독 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작가는 평소 꿈을 많이 꾼다.
“우리가 현실에서 납득할 수 없는 게 꿈에서 등장하잖아요. 현실에서는 낯선 것들이지만 꿈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죠. 꿈은 어떤 ‘깜찍한 휴식’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작품에서 꿈이랑 현실 이야기를 섞어서 썼어요. 명백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싶어서요.”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이 작가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세상에는 뚜렷한 정답이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십 년 전에 썼던 소설을 다시 읽어 고친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삼 킬로그램 가벼웠고 검은색과 빨강 옷을 잘 입었고 나를 숨기는 게 멋진 태도라고 여겼고 싱글 몰트 위스키 맛을 몰랐고 자주 오해받는다고 상심했고 마흔이랑 어떤 나이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사랑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고 갈망이 그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 기억은 잊히지 않고 간직된다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는 채로 간절히 믿고 싶어했다. 그때에 이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내가 쓴 유일한 연애소설이다. 아직까지는. 그때의 나는 가끔씩 내 인생이 누군가가 꾸는 나쁜 꿈 같다고 느꼈는데, 이 소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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