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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불면증으로 두 번 자살 시도 이우재 부장판사의 희망 메시지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두 번 자살 시도 이우재 부장판사의 희망 메시지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6.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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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희망 



이우재 판사의 전화와 이메일은 쉴 새가 없다. 그의 우울증 극복기가 공개되자, 만나보고 싶다는 사람부터 치료를 받은 병원을 알려달라는 사람들까지 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 현직 부장판사가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자살 시도를 한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 하지만 이우재 판사는 “우울증은 병일 뿐이고 누구나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사연을 접하고 마음을 고쳐먹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뿌듯하죠. 그것 때문에 인터뷰도 하는 거고요.”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우재 판사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이야기를 꺼내놓는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고부갈등, 주식투자 실패, 업무 부담과 건강 악화
한꺼번에 쏟아진 스트레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우재 판사가?’. 이우재 판사를 익히 알던 사람들은 그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 연수원 졸업 성적도 좋아 서울중앙지법에 배치됐다. 평소 쾌활한 성격에다 입담 좋기로도 유명한 그였다. 그러나 남들 눈에는 완벽해 보였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쉽게 풀지 못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많았어요. 중간에 낀 저로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고 속병이 쌓였죠. 당시 내색은 안 하셨지만 판사 아들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고 또 며느리에 대한 기대도 있으셨겠죠. 아내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어요. 결국 어머니가 암에 걸려 돌아가시게 되면서 부부싸움도 잦아졌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이에 더해 주식투자로 큰돈을 잃으면서 스트레스는 더 쌓여갔다. 쏟아지는 업무에 대한 부담감은 허리디스크로 이어졌고, 위에도 문제가 생겼다. 위세포가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 건강에 대한 불안감까지 밀려와 도저히 살아갈 힘이 없었다. 매일 재판을 해야 하는 상황도 그에게 답답하기만 했다. 판결 후 사건을 잊지 못하고 자꾸 되돌아보는 습관이 생겨 정신적인 부담감도 커져갔다. 겉으로는 그저 태연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틈만 나면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했다.

“불면증이 너무 심했어요. 저녁때만 되면 잠을 못 잘 것 같다는 생각에 해가 지는 것 자체가 두려웠어요. 운동도 해보고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보고, 수면제도 먹고 갖가지 방법을 다 썼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때 관사에서 혼자 살았었는데 며칠을 못 자니까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베란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내 인생이 편해지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다가 순간적으로 뛰어내릴 것 같아 창문을 다 막아놓고 잤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수면센터에도 갔는데 예약 후 한 달 있다 오라는 거예요. 저는 지금 죽겠는데…. 그때가 봄이라서 막 철쭉이 필 때였는데, 그 꽃이 다 조화같이 보였어요. ‘내가 죽으면 저 꽃이 내 묘지 앞에 있겠구나’ 상상했죠.”
결국 그는 2006년 4월 부부싸움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욕실 샤워호스로 목을 감아 자살을 시도했다. 숨구멍이 막히는 순간, 호스가 벽에서 떨어지면서 그는 욕실 바닥에 쓰러졌다. 찬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을 보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스스로의 처지가 한없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치밀하게 자살 방법을 생각했다. 차를 탄 채 강에 뛰어들 생각도 해보고, 일부러 사흘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운전을 하기도 했다. 자신이 자살을 하게 되면 가족이 받을 고통을 생각해 순직할 수 있는 방법도 떠올렸다.  

“적어도 ‘얘네 아빠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들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생명보험이나 제가 가진 재산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예금으로 바꿔놓고, 수면제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자살을 생각하면서도 시체가 참혹한 건 싫었나 봐요. 수면제를 60알, 70알까지 모으면서 준비를 했어요. 수면제를 이틀 치나 먹었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다음 날 모아둔 수면제를 다 먹었어요. 유서까지 써놓고요. 그렇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2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난 거예요. 그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들과 이별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제 수의를 벗기시는 거예요. 아마 어머니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죽을 준비를 다 한 사람 같지만 사실 속으로는 살고 싶었던 거죠. 생존본능이 어머니를 통해 나타났던 것 같아요.”
잠에서 깨어난 다음날, 그는 생각했다. 어머니가 비록 자식들과의 일로 힘들어하면서 세상을 떠났지만, 저 세상에서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다시금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법원에는 병가를 내고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고 결심했다.

나를 죽이고 마음을 열기 시작 
“그때 제가 아픈 걸 아는 사람이 조금 있었는데 다 말렸어요. 판사가 정신병원에 입원한다는데, 그게 알려지면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제 발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별 차도가 오지는 않았어요. 독방에서 20일 정도 있는데 미치겠는 거예요. 수면제를 먹으면 잠은 오는데 자살충동이 한번에 없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느 날인가는 옆방에서 남자애 우는 소리가 그렇게 들리는 거예요. 간호사를 불러 물어봤더니 그 아이 아버지가 암으로 죽었대요. 저도 힘들어서 이러고 있는 마당에 그 구슬픈 울음소리까지 들으니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결국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산으로 가든지 마음수련원을 가든지 여기엔 못 있겠다고 하고 나갔죠.”

담당 의사한테 수면제 30일 치를 타 가지고 그는 충남 계룡산의 한 수련원에 들어갔다. 산사에서도 쉽게 마음을 잡을 수는 없었다.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드는 건 여전했다. 법원 사람들은 그의 행방을 찾아 수련원에 온다고 했지만, 한사코 말렸다. 혼자 있는 것도 두려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그렇게 3주쯤 지난 어느 날, 아내가 두 아이와 함께 산사를 찾아왔다. 태연한 척 함께 식사를 하고 배웅을 해주고 숙소로 돌아와 쉬려고 하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창밖을 그냥 멍하게 쳐다보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차 안에서 비를 맞고 있는 거예요. 순간 가슴이 뭉클했지만 못 본 척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어요. 그때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빗물처럼 억제할 수 없을 만큼 흘러내렸어요. 제 울음소리를 듣고 한 수련원생이 와서 그러더군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보라고, 그래야 당신 응어리가 풀린다고요’. 아니, 내 마음도 내가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고 생각했지만, 따라해보기로 했어요. 나를 죽이고 마음을 열기로 했죠.”
그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이 원망했던 사람,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턴가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말을 걸자, 대답이 오기 시작했다. 무의식 속에서 오는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관계가 나빴던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실제로 표현하지 못했던 내 속마음을 털어놓자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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