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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해설가 박문성이 세상에 던지는 열정과 도전의 메시지
축구해설가 박문성이 세상에 던지는 열정과 도전의 메시지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6.1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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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아직 미완성이에요. 그래서 완성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체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축구전문기자이자 축구해설가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박문성. 그의 호칭을 두고 잠시 고민을 했다. ‘기자님’, ‘위원님’,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처음부터 넉살좋게 ‘선배님’이라고 부를까? 그러다 ‘위원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자신의 직업에 ‘님’을 붙이기에는 낯 뜨거웠고, 처음 만나는 취재원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를 만큼 넉살도 좋지 못하다. 조금이라도 축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 그러나 축구이야기는 잠시 미뤄두자. 그는 축구보다 더 재미있는 자신의 성장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글 쓰는 것이 제 직업이지만, 글을 쓰는 것은 항상 어려워요. 막상 책이란 녀석으로 엮어 나오니 좀 부끄럽네요. ‘40대가 넘어가면 책을 한번 써봐야지’라고 생각은 했는데, 의외로 빨리 쓰게 됐네요(웃음).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기자는 어떻게 되나요’, ‘해설자는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어오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솔직히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고, 뭐라고 하기도 애매해 답변을 못해드렸는데, 이런 기회에 정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는 최근 자전적인 에세이이자 꿈에 대한 자기계발서 ‘사랑한다 내 꿈아’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에서는 일상에 대한 소소한 감상에서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좌충우돌했던 에피소드 등이 담겨 있다. 
“어렵고 어두운 시기에 꿈의 위대한 힘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나는 무엇 때문에 안 돼’ 이렇게 생각하기보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노력하면서 커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편견 없이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이런 꿈들이 사회를 바꿔나갔잖아요.”
그가 쓴 칼럼을 보면서 또 그가 하는 중계를 보면서 ‘참 다정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단판승부로 결정되는 냉정한 승부를 다루는 스포츠라는 세계 속에서도 늘 휴머니즘을 구현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책을 읽은 느낌도 비슷했다. 그의 글에는 서정의 미학이 서려 있었다. 시골길을 걸을 때마다 만나는 그런 따뜻한 느낌. 그래서인지 박문성이란 사람에게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가수를 꿈꾸던 소년, 축구전문가가 되다
박문성에 대해 더욱 흥미를 느낀 건 그의 뜻밖의 고백(?) 때문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가수가 꿈이었다고 했다. 
“보컬활동도 했어요. 음악을 하는 데 대학 진학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죠. 그러다가 대학을 가면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에 나가 가수가 될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보니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웃음). 일종의 절망이었죠. 그렇게 2년 만에 꿈을 접었어요.”
그는 당시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단순한 ‘허기’였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기 좋아하는 학생의 궁색한 변명이었던 것 같아요. 담임선생님이 ‘어떻게 가수가 될래’라고 물으면 ‘좋아하니까 어떻게 되겠죠’라고 막연하게 대답했어요. 진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직접 나서야 하잖아요. 구체적인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죠.”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그 역시 ‘하고 싶은 것’과 ‘꿈’이란 것은 막연한 대상이기도 했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없어지고 나면 허탈감이 들기 마련이다.    
“큰형님이 돈 벌려면 경상계열을 가는 것이 좋다고 해서 회계학과에 들어갔는데, 적성에 썩 맞지 않았어요. 숫자가 싫어서 문과에 갔는데 전공책을 펼쳐보니 절반 이상이 숫자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냥 졸업할 정도만 하고 놀았어요.”
대학을 졸업할 무렵 그는 다시 진로에 대해 고민을 했다. 보통 직업을 선택할 때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세 가지 잣대를 놓고 한다는데, 그에게는 기자가 가장 근접했다고 했다. 
“기자를 해보자고 생각했고 인연이 돼서 1999년에 ‘베스트일레븐’에 입사했어요. 기자스쿨을 다녔는데 마지막 과정을 밟고 있던 중에 운 좋게 그 시기가 맞았죠.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에 대한 의미, 묘미 등 여러 가지를 알게 되고 여기까지 왔어요. 당시 김덕기 대기자가 편집장으로 계셨는데 그분에게 혼나면서 많이 배웠죠.”

잘하고 싶고, 부족하기 때문에 노력한다 
그는 해설자가 된 것은 우연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이라기보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그의 노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00년 당시 모 방송국 관계자가 유로 2000 해설 중계를 제의하셨어요. 제가 쓴 기사를 봤는데 해설을 잘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시 전 겨우 2년 차 기자였고 해설을 할 수 있는 위치나 나이가 아니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분 말씀이 ‘우리 방송국은 젊은 방송입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 방송은 결국 거절했어요. 그러다 다음해 라디오 방송으로 처음 해설을 하게 됐죠. 당시에는 너무 떨려서 보고 읽지도 못했어요.”
그는 기자일과 해설을 병행하는 요즘 스스로 ‘참 행복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으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힘들 때도 있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 그 일이 짜증나고 싫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그는 아직도 꿈을 꾼다. 지금은 그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스케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저도 미완성이잖아요.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10년 후 20년 후 제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축구를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예요. 그리고 나중에는 제 고향의 연고지 팀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한 번 떨어졌는데 축구심판도 다시 도전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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