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23:05 (토)
 실시간뉴스
양희은과 노사연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인생 그리고 사람’
양희은과 노사연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인생 그리고 사람’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7.24 1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블 인터뷰

‘이 시대의 라디오 스타’
양희은과 노사연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인생 그리고 사람

부엌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차를 타고 길을 나설 때에도 언제나 공기처럼
익숙해진 목소리가 있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의 양희은과 ‘2시 만세’의 노사연.
10년을 하루같이 스튜디오를 지켜온 두 ‘라디오 스타’에게 ‘브론즈 마우스’가 헌정됐다. 방송을 통해 수많은 삶을 만나온 두 사람이 라디오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취재_ 김은희 기자  사진_ 우미진(프리랜서)

 

“이 시대 모든 누이들에게
꽃다발을 건네주고 싶어요”

 ‘브론즈 마우스’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을 10년 이상 진행한 DJ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동일 프로그램을 5년 연속 진행하고, 5년 연속 청취율 20위 이내에 들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갖고 있다. 브론즈 마우스를 수상한 진행자의 입 모양을 본뜬 조형물도 MBC 방송센터에 전시된다. MBC 라디오 역사의 한순간으로 기록되는 셈이다. 절친한 선후배 사이로 나란히 브론즈 마우스를 품에 안은 두 사람의 얼굴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우리의 삶 속에 라디오가 있었네
지난 1999년 ‘여성시대’의 안방마님이 된 후로 늘 그 자리를 지켜온 양희은은 “삶에서 가장 큰 상을 받은 기분”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이는 “우리 세대는 인생의 모든 것을 라디오를 통해 오리엔테이션했다”라고 추억했다. 어린 시절의 그이가 통기타가수의 노래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가수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1971년부터 라디오를 떠난 적이 없는 그이이기에 그 애정은 더욱 깊고도 깊다.
‘주병진·노사연의 100분쇼’와 ‘이무송·노사연의 특급작전’을 거쳐 ‘2시 만세’를 진행하고 있는 노사연 역시 라디오에 대한 애정은 양희은 못지않다. 10년간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여러 남자 파트너들과 호흡을 맞춘 그녀는 라디오를 통해 인생의 파트너까지 만났다. 1993년 ‘이무송·노사연의 특급작전’을 함께 진행하면서 가수 이무송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제 인생을 책임지는 남자까지 만나게 됐으니, 라디오는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가 없어요. ‘특급작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무송 씨와 ‘결혼작전’을 펼쳤죠. 전 굉장히 럭키한 여자예요(웃음).”
이제는 다른 방송사에서 같은 시간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쟁자가 되었지만, 남편 이무송은 언제나 물심양면 힘이 되어주는 존재. 아내의 대기록 달성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다.
“브론즈 마우스 수상을 앞두고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기도하며 감사했어요. 아들 동헌이도 ‘엄마 축하해’ 하면서 멋진 옷을 차려입고 외식하러 가자고 하더라고요(웃음).”

10년이라는 세월,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털털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사랑받는 노사연은 나른한 오후 두 시를 깨우는 유쾌 발랄한 방송에 꼭 맞는 진행자. 하지만 그녀는 장수의 공을 모두 파트너에게 돌렸다.
“라디오에 재미를 붙여준 파트너 지상렬 씨와 함께하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파트너가 마음이 편해서요. 제가 실수한 것도 다들 예쁘게 받아주셨기 때문에 롱런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펑크 한 번 내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게 프로그램에 임한 덕분에 지상렬으로부터 “예쁜 아나운서와 방송할 수 있도록 누나가 좀 아파봤으면 좋겠다”는 볼멘소리도 듣는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상렬 씨는 제가 너무 튼튼한 것이 항상 불만이에요. ‘왜 이렇게 무병장수하냐’고 하던데요(웃음).”
실제로는 열네 살 차이가 나지만, 찰떡호흡을 자랑하는 방송에서는 이런 나이 차이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너무 친하게 지내다 보니 ‘같이 산다’고 동거설까지 나오더라며 호탕하게 웃는 노사연. 누군가와 늘 함께 호흡을 맞추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상대를 온전히 믿고 받아주어야 하는 파트너십이 필요한 일. 스튜디오 안에서 노사연 역시 끊임없이 자신을 확장하는 훈련을 한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때, 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농담은 누나가 싫어하겠지’라고 생각하게 되면, 마음껏 많이 놀 수가 없잖아요. 진행을 하는 동안에는 파트너의 아무 농담도 모두 다 받아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전까지 단어 하나에도 엄격하던 이택림 씨와 진행을 하다가 지상렬 씨로 파트너가 바뀌니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상렬 씨의 농담 속에는 언제나 휴머니티가 있더라고요.”
주병진, 이무송, 이택림, 지상렬… 얼핏 보기에도 완전히 다른 스타일과 색깔을 가진 파트너들과 융합하기 위해 노력했던 10년의 세월, 그녀는 더욱 둥글어지고 더욱 넓어졌다. 그렇게 라디오는 그녀가 자신을 좀 더 열 수 있게 해준 학교였다.  

갱년기의 언덕을 ‘누이’들과 함께 넘다
‘여성시대’를 지켜온 양희은에게 체력 문제보다도 더 힘겨웠던 것은 청취자들의 사연에 담긴 삶의 무게였다. 그이는 “마흔여덟 힘겨운 갱년기의 언덕을 ‘여성시대’와 함께 넘었다”고 고백했다. 갱년기와 더불어서 사연이 너무나 무겁고 징건해서 체기처럼 늘 얹혀 있었다는 그이. 처음 5년 동안은 그 사연들이 너무나도 지워지지 않고, 털어지지 않아 괴로웠다. 양희은은 그중에서도 가장 또렷하게 남은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희제 엄마 추희숙 씨… 암투병을 하던 그분은 전신에 암이 퍼진 상태로 사흘에 걸쳐 쓴 편지를 보내줬어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그분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음성사서함도 만들고 전화 연결도 했어요. 그 후로도 편지 몇 통을 더 보내주다가 세상을 떠났죠.”
2002년, 30주년 기념음반을 만들던 양희은은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음반을 희제 엄마에게 헌정했다. 그 음반은 추희숙 씨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딸들에게 바치는 음반이었다.
“오빠와 남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고, 그러다 보니 결혼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결혼해서 이제 좀 살 만해졌을 때 암 판정을 받았던 거죠. 추희숙 씨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어요. 저는 이 땅의 누이들에게 꼭 한 번 꽃다발을 바치고 싶었어요.”
양희은 역시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그리고 두 동생을 학교에서 졸업시키고 시집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20대를 떠나보냈다. 서른이 되면 뭔가 중심을 잡고 설 것 같아서 그 나이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막상 서른이 된 그이를 기다린 것은 난소암의 3개월 시한부 판정이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때의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했던 그이.
“‘이제 좀 살아보려고 할 때 왜 이런 일이… 나 이제 살아야 하는데, 뭐? 석 달이라고?’ 하늘에 대고 삿대질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눈물이 나거나 처절하지는 않았어요.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슬프지 않고, 그저 멍하니 그 상황에 푹 잠겨 있기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