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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말 많은 청와대 터 무엇이 문제인가 풍수 전문가 3인의 공통된 생각 & 이전하면 좋은 최고의 터 대공개
최근 말 많은 청와대 터 무엇이 문제인가 풍수 전문가 3인의 공통된 생각 & 이전하면 좋은 최고의 터 대공개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8.0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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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전문가 3인의 공통된 생각 & 이전하면 좋은 최고의 터 대공개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함이 감돌고 있는 요즘, 청와대의 자리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들이 풍수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이미 조선왕조 시대 5백 년의 도읍이었던 서울, 경복궁과 청와대를 둘러싼 풍수의 비밀은 무엇일까. 풍수지리학계의 최고 대가로 손꼽히는 3인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놀라웠다.

취재_ 황정호 기자 사진_ 김도형 기자·서울신문 DB

“혼란을 수습하고 국가의 도약을 위해서는

청와대 이전이 꼭 필요하다”

북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청와대와 경복궁 터는 각각 건축 당시부터 풍수지리학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조선이 개국을 하고 수도를 서울로 이전한 후 첫 왕궁으로 지어진 건물이 바로 경복궁. 그러나 이 터로 인해 조선왕조 5백 년의 역사는 물론 일제 강점 시대와 광복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이 숱하게 많은 비극과 고난을 겪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실이 바로 경복궁과 청와대 터에 기거했던 지도자들 중 상당수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거나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

이에 본지는 풍수지리학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 3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들의 의견 중 특징적인 것은 현 청와대 터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어서 빨리 청와대 터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목풍수지리연구소 김성수 소장

청와대는 흉가에 가까워, 창경궁 자리가 최고의 명당

영목풍수지리연구소 김성수 소장은 오래전 공직에 머물다 뜻한 바가 있어 풍수지리 연구를 시작해 오랜 수행 끝에 지기감응(地氣感應)의 도를 깨달은 대표적인 풍수지리 연구가이다. 얼마 전 미국 오바마 정부에 보건부 차관보와 국무부 법률고문으로 참여한 고경주·고흥주 씨 형제의 조상 묘 자리를 명당으로 지목한 바 있다.

풍수지리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본 청와대는 흉가에 가깝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서울을 수도로 삼았을 때, 왕사인 무학대사와 개국공신인 정도전 사이에서도 궁궐터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정도전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해 경복궁을 지어야 한다고 했고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해야 한다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결국 경복궁은 정도전의 주장대로 지어졌다. 무학대사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면 2백 년 후에 국가의 안위에 위험이 닥친다고 예언했고 그것은 2백 년 후 현실로 나타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수난이 닥쳤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불탄 경복궁은 이후 2백70년간 터만 남은 채 버려졌고, 창경궁이 조선왕조의 정궁으로 쓰였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은 외면당한 채 조선 말엽에 이르러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에 의해 복원됐다. 복원 당시에도 큰 불이 나고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잇따랐지만, 끝내 강행해 복원이 이뤄졌다. 이후 조선은 각종 변고가 다시 이어지다가, 결국 국모가 일본 깡패에게 시해되는 비극이 일어나며 종래에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정궁으로 쓰였던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버리고 동물의 박제를 진열해 땅의 좋은 기운을 망가뜨리려고 했다. 또한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우고 현재 청와대 자리에 총독 관저를 신축했다. 총독부 자리는 위에서 보면 북악산이 대(大)자 모양을 하고, 총독부가 일(日), 서울시청 건물이 본(本)자 모양을 하고 있어 대일본(大日本)을 의미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경복궁을 비롯해 북악산을 등지고 있는 청와대는 그 터 자체가 좋지 않다. 일단 북악산 뒤쪽 삼각산에서 보면 골이 파여 있어 골육상잔이 나게끔 되어 있다. 그런 데는 묘도 쓰면 안 된다. 그리고 뒤에서 엿보는 규봉(도둑봉우리)이 있는데, 그런 곳은 살기가 있고 나쁜 일이 많이 생긴다. 또 안산인 남산이 너무 높게 보여 늘 고개를 숙여야 하는 형국이었다.

근래에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터를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더 큰 혼란이 이어졌다. 이전 대통령들의 경우 말년이 좋지 않았어도 경제발전이나 국가기강 확립 등을 이룩했고 국가가 한 단계 성장을 한 측면이 있는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새로운 청와대에서 일을 하면서부터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어이 IMF 사태를 맞이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에 많이 팔렸고 급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해야 했다.

실제 청와대를 이전하면 좋을 명당은 다름 아닌 창경궁 자리다. 북악에서 흘러온 용맥은 창덕궁으로 들어와 세 갈래로 나뉘는데, 한 줄기는 규장각으로 또 한 줄기는 영화당으로 흘러 십자맥을 이루었다. 영화당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던 자리다. 그 용맥의 주맥이 바로 창경궁에 생기처를 이루고 있다. 정남향의 이 자리는 일본이 과거 동물원으로 만들면서 박제표본을 전시했던 곳이다. 이 부근에는 문화재를 전혀 훼손하지 않고 대통령 관저를 짓기에 모자람이 없는 터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남산조차 한 마리의 예쁜 소처럼 보인다. 바로 군왕의 자리이고 우리나라가 영구 창생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대한풍수지리연구원 김승기 원장

청와대 터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대한풍수지리연구원 김승기 원장은 1백18세로 좌탈한 탄공선사로부터 불가에 비전된 풍수지리를 수학, 벽사개운풍수지리를 계승했으며, 야은거사라는 당호로 활동하며 국태민안과 국운 융성을 위해 청와대 터 이전을 주장하는 풍수지리 연구가이다.

청와대 터는 풍수지리적으로 절대로 좋지 않은 터다. 풍수지리상 기본인 용혈사수가 배합이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지기가 너무 나쁘다. 예로부터 그 일대는 사냥터와 활터로 사용될 정도로 사기가 충만하여 사람이 살 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향으로 조선시대를 살펴보면 왕들이 적자 계승된 경우가 적다. 1, 2차 왕자의 난으로 개국 10년 만에 골육상잔의 비극이 일어났고, 그 뒤 정종 양위, 단종의 죽음, 7년간의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탔으며, 정묘·병자호란과 연산군·광해군의 폭정으로 군왕이 폐출되는 등 국란이 어지러웠다.

옛 청와대 터는 일제시대 경복궁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지어져 남쪽에 있는 총독부 건물과 함께 조선왕조의 경복궁을 풍수지리상 용맥을 끊어 조선의 정기를 눌러버리겠다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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