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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 & 부인 최선주 여사 가족 인터뷰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 & 부인 최선주 여사 가족 인터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10.17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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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밸런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쟁을 존중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생각이 대통령과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차기 총리로 적극 검토했던 ‘심대평 카드’가 무산되자, 의외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차기 총리로 지명한 것. 정 내정자가 평소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온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인 점을 감안할 때 이 대통령이 왜 그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는지, 또 정 내정자는 어떤 경위로 이를 수락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정 내정자는 한때 범여권(지금의 야당)의 대권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 일은 더욱 흥미롭다.
이 대통령의 총리 지명으로 여야는 치열한 공방전을 하고 있다. 야당은 정 내정자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했고, 여당은 이를 막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취재진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정 내정자를 둘러싼 의혹, 그리고 총리직을 수락하게 된 배경 등을 듣기 위해 정 내정자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매우 예민한 때인 탓에 인터뷰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취재진은 정 내정자 부부가 다닌다는 교회를 찾았다. 

교인들에게 신망 두터운 신사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남포교회. 이른 시간임에도 예배를 위해 교회를 찾는 교인들이 많았다. 요 며칠간 기자들이 많이 찾아와서인지, 교인들은 취재진의 방문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두세 시간쯤 교회 주변을 둘러보며 정 내정자 부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전 11시 경, 정 내정자 부부가 모습을 보였다. 이들 부부는 지인들과 방문객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정 내정자에 대한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된 후였지만 부부의 표정은 밝았다.
그러나 잠시 말을 붙여볼 틈도 없이 사람들에 휩싸여 예배당 안으로 들어간 정 내정자 부부. 취재진은 예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때가 때이니만큼 긴 인터뷰는 어렵겠지만, 짧은 몇 마디라도 듣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예배를 마치고 정 내정자 부부가 교회를 나섰다. 이들은 취재진의 계속되는 인터뷰 요구에 “다음에 하겠습니다”라며 웃음만 지을 뿐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짧게 인사만을 나누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부부와는 많은 말을 나누지 못했지만, 몇몇 교인들에게서 정 내정자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세간의 평가는 어떨지 모르지만 교회에서 바라본 교수님(정운찬 내정자)은 교회 일에도 항상 적극적이시고 성실한 분이세요. 나름의 소신도 강한 분이시고요. 국무총리 자리에서도 맡은 바 역할을 다하실 것이라고 믿어요.”
정치권에서는 정 내정자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교회에서만큼은 신망이 두터웠다. 이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신앙심이 깊고 친절한 분”이라는 것. 부부간의 금실도 매우 좋다고 했다. 실제로 이들 부부는 연애시절 정 내정자가 5백 통의 러브레터를 보냈다는 순애보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취재진은 그밖에도 교인들로부터 정 내정자가 교회에서 안수집사를 맡고 있다는 이야기와 청소년 시절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선교사와의 인연으로 기독교인이 됐다는 이야기 등을 전해들었다.

정치권 러브콜 10년간 뿌리치다 ‘깜짝 수용’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경기고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이다. 더불어 정치권의 끈질긴 구애를 10여 년간 거절하며 강단을 지켰던 소신파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지난 1978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30년 넘게 상아탑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연구 활동과 함께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과 대안 대시, 다양한 저술 활동을 병행하면서 지명도를 쌓아왔다.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1998년 한국은행 총재직을 맡아달라는 청와대 요청을 고사한 이래 그는 개각 때마다 경제 관련 부처 수장이나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하마평에 올랐다. 러브콜을 받을 때마다 “정년까지 학교에 남고 싶다”고 거절했던 정 내정자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인지도를 넓힌 것은 지난 2002년, 교수 직선을 통해 서울대 총장에 임명되면서부터다. 정 내정자가 추진한 각종 서울대 개혁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다양한 인재 선발을 기치로 내걸고 도입한 ‘지역균형선발제’는 국민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대학자율화를 지키기 위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긴장관계를 유지한 것도 인지도 상승의 요인이 됐다는 평가다.
교육행정가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정 내정자에 대해 자연스럽게 정치권의 관심이 배가됐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여야 정당 모두가 정 내정자의 영입에 뛰어들 정도였다. 특히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정 내정자를 만나 서울시장 선거에 나와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그렇듯 정치권의 잇따른 러브콜에도 “4년 임기를 채운 최초의 서울대 직선총장이 되고 싶다”며 초연한 태도를 보인 정 내정자. 그러나 총장직에서 물러난 2006년 말부터 그의 정치적 움직임은 시작됐다. 그러면서 2007년 초에는 범여권(지금의 야당)의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카드를 꺼내든 것은 몇 가지 고려사항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출렁이는 충청 민심을 다독여야 했다. 특히 세종특별시 문제가 4대강 사업과 예산문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은 가급적 충청 출신 인사를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정무적인 판단도 작용했던 것 같다. 화합과 통합, 중도실용과 친서민 국정기조 등을 고려할 때 충청 출신으로 한때 대선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지명도가 있는 데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경제학자 출신인 정 내정자는 꽤 매력 있는 카드였던 것이다. 또 대학 총장 출신으로 현 정부의 역점과제인 사교육대책 추진에 적임자라는 점도 고려됐다. 
그렇다면 정 내정자가 이명박 정부의 총리직 제안을 어떤 이유로 받아들였을까. 그는 얼마 전 ‘호랑이 스코필드 동우회’ 창립총회에서 “한마디로 나라에 밸런스(균형)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보수층에 기반을 둔 현 정부에서 개혁 성향인 자신이 총리가 되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서 중도정책을 적극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 내정자는 또 이명박 대통령과 “경쟁을 존중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생각이 같다”고 말했다.
정 내정자는 이 대통령처럼 어린 시절을 매우 어렵게 보냈다. 사석에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평일에 밥을 먹은 적이 없다. 거의 매일 죽과 수제비,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옥수수가루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말하곤 했다. 충남 공주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원에서 침대시트 세탁을 하며 5남매를 키웠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입주과외를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했다. 미국 유학 도중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이 그에게 비행기 삯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알리지 않아 그는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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