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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돕기 대통령 표창 받은 방송인 김미화가 꿈꾸는 세상
이웃돕기 대통령 표창 받은 방송인 김미화가 꿈꾸는 세상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10.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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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목적도 결국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찾아주는 것. 
나는 지금 인생이라는 큰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 1983년 KBS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한 김미화는 이제껏 연예 활동을 하면서 서민에게 가장 친근한 연예인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이의 재담에는 성격과 생활이 그대로 녹아 있다. 1986년 ‘쓰리랑 부부’에서 일자 눈썹의 순악질 여사로 스타덤에 오른 그이는 달동네 셋방살이 새댁, 청소부 아줌마 등 서민의 생활을 그대로 개그에 녹여냈다. “내 자신이 살아온 터전을 개그에 수용하니까 실감나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이의 말이다.
어려운 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던 김미화는 개그우먼이 되기 전 어린 나이에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을 책임지는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그이는 늦은 나이에 대학을 들어가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절 도움을 준 대중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왕성한 봉사와 기부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김미화는 지금까지 70여 개 단체의 홍보대사를 역임하며, 바쁜 활동 중에도 재능 기부와 각종 자원봉사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렇기에 그이가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초가을 날씨가 유독 쾌청한 어느 오후, 방송 준비를 하고 있던 그이를 만났다.

홍보대사만 70여 개, 나눔은 삶의 목적
“예전부터 좋은 일을 하겠다고 작심하고 살았지만, 어떤 때에는 흔들리기도 했어요. 간혹 주위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이런 큰 상을 받으니 이제까지 제가 해온 일들이 정말 좋은 일이었다는 보람을 느껴요. 반면에 어깨도 좀 무거워지네요.” 
대통령 표창을 받은 김미화는 놀라움과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그이는 이런 기쁨을 또 다른 선행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사실 그이에게 봉사와 나눔이란 어릴 적부터 자신과 해온 약속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꾸었던 두 가지 꿈이 있어요. 하나는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코미디언이 돼서 불우한 이웃을 돕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 워낙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가난의 설움과 배고픈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이는 아직도 정부에서 빈민 구제 차원에서 나눠준 밀가루와 라면을 받아 머리에 이고 오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눈빛은 늘 소외된 이들에게 향한다. 지난 2005년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 위촉된 이후 5년 동안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각종 캠페인과 홍보활동에 적극 참여해왔고, 2006년 10월에는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 모임인 ‘굿 프렌즈’를 창단해 회장으로 방송인 후배들을 독려하는 등 주도적으로 모임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에는 복권위원회 광고 출연료로 받은 1천만원을 아이들이 아침밥을 굶고 있다는 이야기에 선뜻 기부했다.
이렇듯 김미화가 이제껏 해온 선행을 하나하나 열거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이의 봉사는 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치매노인들의 식사를 돕거나 노래를 부르고 함께 부딪쳤다. 연예인에게 시간은 돈이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가는 그이다.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참 귀한 경험을 많이 하게 돼요. 오히려 제가 그분들에게 얻는 것이 더 많죠. 언젠가 알게 돼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지체장애자분들이 있어요. 몸이 불편해 걸으려면 발등으로 걸어야 하죠. 어느 날 그분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가 공연하고 있는 무대를 찾아왔어요.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그 불편한 몸으로 한 명씩 돌면서 카드섹션을 하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글씨가 보이더니 ‘미화 언니 사랑해요’라는 말이 되더라고요. 그걸 보고 무대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이들에게 실천하는 부모이고 싶다    
방송과 봉사활동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다 보니, 정작 가족은 많은 것을 못 챙겨주고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생각뿐이다. 아이들 생각만 하면 명치끝이 아려온다는 그이다.
“오죽하면 아이들 소원이 엄마가 학교에 와서 급식시간에 밥 퍼주는 거였겠어요. 그런데 그 소원은 끝내 못 들어줬어요. ‘언젠가는 해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시간이 참 빠르게 가더라고요. 어느덧 아이들이 훌쩍 커서 이제는 기회를 놓쳤어요.”
그래도 자신의 이런 활동이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봉사하는 사람이 돼라’고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제가 직접 몸으로 보여주면 아이들에게 더 크게 각인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남편도 저하고 같은 생각이에요. 아이들이 부모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또 우리 큰아이 역시 발달장애가 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해가 갈수록 그이의 눈빛은 깊어만 간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워서라도 돕겠다는 것이 그이의 삶의 방식이다. 뒤늦게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제가 인기가 없어지더라도 누구를 도울 수 있을 만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었어요. 돈으로 도와줘야 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어떤 시스템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자리를 맡아 진두지휘하기보다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것이 체질에 맞다는 그이.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뛰고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인생이란 큰 무대에서 웃음을 주고 싶은 천생 코미디언
잠시 코미디 무대에서 내려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이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미화와 코미디 무대에 있는 김미화, 또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미화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다.
“제가 개그를 안 한다고 해서 개그우먼이 아닌 것이 아니고,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서 개그우먼이 아닌 것이 아니잖아요. 언젠가는 다시 제가 있었던 곳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이에게 코미디 무대는 내 집 같은 곳이자, 고향이다. 그렇기에 개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개그맨의 인기 주기가 점차 짧아지면서 동료들이 텔레비전에서 사라질 때 그이는 공개 개그 프로그램 기획안을 들고 방송사를 뛰어다녔다. 그때 방송사마다 성공 가능성이 낮다며 거절했지만, 그이가 KBS 간부진을 설득해 시작한 것이 10년이 넘게 대박 행진을 이어오며 한국 코미디사를 바꿔놓은 ‘개그 콘서트’이다. 그이는 얼마 전 개그콘서트 10주년 특별방송에서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후배들을 위해서 만든 무대였어요. 후배들이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서 그걸 보면 아주 흐뭇해요. 지금은 한 발 떨어져 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주책없는 할머니든 그보다 더 망가지는 모습이든 어떤 역할이라도 맡아서 제대로 연기해보고 싶어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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