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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외수ㆍ‘호우시절’ 시나리오 쓴 아들 이한얼 감성 父子 인터뷰
작가 이외수ㆍ‘호우시절’ 시나리오 쓴 아들 이한얼 감성 父子 인터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11.0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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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막히거나 영감이 필요할 때면 항상 아버지의 책을 펼쳐요. 그 안에서 새로운 느낌을 찾곤 하죠”

서울에서 3시간 남짓 걸리는 곳, 작가 이외수의 자택이자 집필의 장소인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로 들어서는 이차선 도로는 어느새 짙은 붉음으로 물든 단풍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초행길에 길잡이를 자청한 이는 바로 이외수의 큰아들 한얼 씨였다. 그는 이미 몇 편의 주목할 만한 단편 영화를 통해 가능성 있는 연출력을 선보이는 한편, 한국 영화계에 쟁쟁한 감독들 밑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며 내공을 키우고 있는 감독 지망생. 최근에는 허진호 감독과 함께 영화 ‘호우시절’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까지 겸한 그지만, “아버지에 비하면 아직 한 없이 모자라다”며 웃음 짓는다.

늦가을 햇살이 온기를 머금은 오후, 한참을 차로 달려 도착한 이외수의 자택은 깊어가는 가을 속에 더없이 한가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집필 작업은 주로 밤에 이뤄지는 탓에 낮밤이 뒤바뀐 일상이 보통이지만, 작가에게 아들의 방문은 그런 습관을 한 번쯤 무시해도 좋을 터였다. 긴 하품을 하면서도 아들이 왔다는 소리에 차 한 잔으로 잠을 쫓은 작가는 어느새 특유의 유쾌한 미소를 얼굴에 머금고 있었다.

때로는 믿음으로, 때로는 냉혹한 평가로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

“원체 바쁘니까 얼굴 보기는 힘들지만, 연락은 자주하는 효자에요. 할 수 없지, 일이 없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웃음). 보고 싶은데, 일이 있을 때는 통 못 봐요. 전화로 안부 묻고 건강 물어보고… 나는 아들이 하는 일에 대해 별다른 말은 않해요. 알아서 열심히 하겠거니 생각하죠.”

4년 전 결혼을 한 뒤 곁을 떠나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대견한 아들이기에 칭찬이 앞서는 아버지. 큰 아들로서 아버지의 곁을 지키지 못하는 점이 늘 마음에 걸리는 한얼 씨 역시 그런 아버지와의 전화통화는 큰 위안이 된다. 분야는 다르지만, 무언가를 새로이 창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작업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말로는 “별다른 조언을 안한다”지만, 아들에게 아버지는 한편으로 더 없이 좋은 스승이 되기도 한다.

“사실 단편 영화를 작업할 때부터 시나리오를 쓰면 항상 아버지께 먼저 보여드렸어요. 그럴 때면 솔직히 정말 냉정하세요. 아버지는 모르시겠지만, 한번은 눈물이 날 때도 있을 정도였죠(웃음). 그 당시에는 ‘그래도 아들인데 왜 그리 냉혹한 평가를 하실까’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힘이 됐던 것 같아요. 늘 그 순간 잘 했다는 칭찬보다는 앞으로 잘하라는 매를 드시곤 하셨죠.”

얼마 전 생일날 아들에게 용돈을 받은 것을 자랑하는 아버지. 작년에 이어 두 번 째지만, 배로 두툼해진 봉투에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돈 먹는 하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계의 험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아들이 자립해 주는 용돈은 사실 금액을 떠나 그 자체로 이외수에게 감동인 듯 했다.

“영화라는 것이 사실 혼자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조감독 생활이 처음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경험을 계속 쌓아야죠. ‘호우시절’은 아직 못 봤지만, 아들이 만든 단편 영화들을 보니 어느 정도 기본이 튼튼해져가고 있다고 생각되더군요. 영화 공부를 하면서 평가도 잘 받았으니, 충분히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해요.”

아버지로서 누구나 그러하지만 아들에 대한 이외수의 믿음이 남다른 이유가 있다.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털어 놓은 오래 전의 일화 속에서 아들은 독특하고 의뭉스러운 아버지의 작가적 기질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얘가 고등하교 시절에 성적이 좋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처음으로 우연히 본 성적표가 공교롭게도 꼴찌에서 두 번째더라고요. 처음에는 잘못본줄 알았어.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맞더라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잘했던 아이인데… 결국은 저녁때 물어봤어요. ‘이건 너무 말이 안되는 것 아니냐. 아무리 못해도 끝에서 두 번째는 이해가 안된다’고 했더니, ‘꼴찌를 하면 기분이 어떨까 궁금해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처음에는 안 믿었죠. 하지만 다음 달에 나오는 성적을 기다려 보고 판단하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그 다음달에는 2등을 하더군요(웃음). 그 후로는 전적으로 아들을 믿고 맡기는 편이죠.”

암울했던 시절인 1970년대 등단 이후, 이루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통해 이 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한명으로 손꼽히고 있는 그의 젊은 시절은 꽤나 치열했다. 시대적인 제약과 편견이 팽배했던 당시, 학연과 지연으로 결속돼 있던 기존 문단은 그와 상극이었다. 그러나 한때 이단아로 치부되며 외면 받았던 그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와 같이 개성 있는 작가들이 살아남아 주류를 이루는 ‘독립군의 시대’가 도래한 것. 젊은 시절 자신과 마찬가지로, 꿈을 향해 매진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그는 ‘닮음’을 발견하곤 한다.

“아들이 만든 단편 영화 중에서 ‘봄이요!’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것을 보면서 ‘아 얘가 되겠구나’ 싶었죠. 둔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감각이 좋더라고요. 그런 결과는 일종의 장인 정신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죠. 영화는 하루하루가 돈이라지만, 아들은 조금이라도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완벽해 질 때까지 고집을 부려요. 사실 그런 고집은 대개 손해 보는 짓이니 현실감은 떨어지죠. 그럼에도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밀고 나가는 면은 저하고 닮아있어요. 아버지로서 그 점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그러나 아들이 생각하기에 스스로의 모습은 아직 아버지의 삶과 비교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움에서 유연함을 두루 선보이고 있는 아버지의 작품을 접할 때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아들을 비롯한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이외수는 특별한 교훈을 전했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과 싸운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세상을 끌어안아야 할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이들에게도 ‘세상이 그대를 끌어안지 못한다면 그대가 세상을 끌어안으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등 뒤에 사람을 못 껴안는 것은 아니에요. 내 한 몸 돌아서면 되는 거죠. 지금은 스스로 자기 몸을 돌려 뒷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여유와 유연성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니, 예전 치열했던 시대에 내 작품의 마니아들은 어쩌면 배신감을 많이 느낄 거예요(웃음).”

감독이 되어 만들고 싶은 영화, 아버지의 이야기

이외수는 ‘라이터테이너’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작가라는 본업 외에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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