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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왕기춘, 클럽 폭행사건에 대한 복잡한 심경 5시간 단독 인터뷰
유도 왕기춘, 클럽 폭행사건에 대한 복잡한 심경 5시간 단독 인터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12.1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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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 그만둔다고 마음먹었지만,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왕기춘을 만나러 나설 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운이 좋으면 인사 정도는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만 있었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꼬박 두 시간을 달리고 나서야 그가 무료강습을 하기로 한 청주유도회관에 닿을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도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학생들에게 동작 하나하나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유도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한참 강습을 하던 왕기춘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예감이 적중했던 것일까. 잠시 시간을 내달라는 요청에 그가 먼저 “서울까지 같이 가자”며 기자의 차에 올랐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서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왕기춘은 최근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 폭행사건 후 잠적, 은퇴까지 생각했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경계 때문이었을까. 그는 말수가 적었다. 물어보는 몇 가지 질문에 쑥스러운 듯 단답형으로 대답할 뿐 긴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어색함은 유도회관을 출발한 지 10여 분 지속되다가 고속도로 입구에 도착할 무렵에서야 조금씩 사라졌다. 그와 한결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날 사건에 대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 일에 대해서 조금도 변명하고 싶지 않아요. 공인을 떠나서 너무나 잘못한 일이죠. 여러 가지로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당분간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훈련에만 전념할 생각이에요.”
그는 담담한 어조로 그렇게 대답했다. 왕기춘은 얼마 전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놀러 갔다가 동석한 20대 여성의 뺨을 때린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그는 “한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해 때렸다”고만 할 뿐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 사건은 서로 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단순 폭행사건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왕기춘에게는 적지 않은 상처로 남았다. 그는 당시 본인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에게 손을 댔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티즌들의 악성 댓글이 이어지자 그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마저 생겼다고 했다.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었고, 급기야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유도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그는 팬 카페에 은퇴를 시사하는 글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전화번호를 바꾼 뒤 지방 곳곳을 혼자 다녔어요. 혹시나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모자를 쓰고 변장을 하고 다녔죠.”
그 무렵 왕기춘은 전국체전 출전이 예정돼 있었다. 경기 당일 새벽까지 가족과 소속팀 감독이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경기에 불참했다. 전국체전까지 불참하자 정말 은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어려운 집안사정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온 그였기에 주변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너무 두려웠던 나머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저 자신한테 화가 많이 났어요. 그 일이 있고서 세상에 나서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는 매트 위에 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이 잡히지 않았어요.”
그의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은 이번에도 어머니였다. 그렇지 않아도 만성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는 아들이 잠적했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아 병원으로 실려갔고, 대동맥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평소 “병상의 어머니를 위해 운동한다”고 말해온 그였기에 이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후회감이 밀려왔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잠적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고, 어머니 병상에서 잘못을 빌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눈물만 흘렸어요. 더 이상 불효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추슬러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팬들의 격려도 힘이 됐다. 변함없이 응원을 해주는 팬들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지 못한다

전국체전이 열리던 날, 사실 왕기춘은 경기장 부근에 있었다. 은퇴를 생각하면서 다시는 매트 위에 서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발걸음은 여전히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 그만둔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경기장으로 향하더라고요. 그래도 경기장 안까지는 못 갔어요. 밖에서 몇 번을 서성이다가 돌아갔죠.”
유도복을 입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그는 경기장 주변을 서성일 때 가슴 깊은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아마도 후회, 설움 그리고 아쉬움 등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왔던 것 같아요. 일순간의 실수로 15년 동안 쌓아온 것을 모래성처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용기를 내보자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 하면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도 유도였으니까요.”
소속팀에 복귀한 후 왕기춘은 대한유도회로부터 2개월간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그는 주말이면 전국을 돌며 무료강습을 하고 있다. 그와 만난 날은 사회봉사를 시작한 지 2주째 되는 날이었다. 사회봉사를 하면서 그의 표정은 몰라보게 밝아졌다.
“징계를 받아 시작한 일이지만, 정말 보람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요. 보다 열심히 하라고 배려를 해주신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죠.” 

# 은퇴할 때까지는 ‘은퇴’ 입에 담지 않겠다


매트로 다시 돌아온 왕기춘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사건 뒤 처음 출전한 대통령배 전국유도대회 남자 대학부 단체전 결승에서 상대 선수에게 한판승을 거뒀다. 비록 경기 전날까지 체중조절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이날 월등한 실력차로 승리를 거두면서 마음고생을 덜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2연승을 거둬 현재까지 46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이원희가 보유하고 있는 국내 유도 최다 연승(48연승) 경신을 바로 눈앞에 두게 됐다.
“지기 싫어서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앞으로도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지는 날이 오겠지만 기록을 깨고 싶어요. 국내 경기든 국제 경기든 매 경기가 결승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모든 운동선수가 그렇겠지만, 그의 승부욕은 남다르다. 특히 유도에 있어서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 못하는 완벽주의자다.
“훈련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해요. 열심히 하는 만큼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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