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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아픔을 여행으로 치유한 손미나
이혼의 아픔을 여행으로 치유한 손미나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12.14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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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원래 수많은 굴곡으로 이뤄져 있어요. 실컷 울고 나서는 다시 일어나 달릴 수 있는 힘을 얻죠

2007년 5월 대기업을 다니는 평범한 남편을 만나 결혼에 골인했던 손미나. 이후 여행작가의 길을 선택한 그녀는 KBS를 퇴사하고 제2의 인생 길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결혼생활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던 걸까. 그녀는 지난해 8월 결혼 1년 만에 합의이혼을 했다. 손미나가 아르헨티나 여행을 떠난 것은 어쩌면 예정된 아픔을 달래기 위한 방어가 아니었을까.

# 외로움과 상처를 치유받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오랜 시간 유럽과 남미를 돌며 여행한 탓인지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었다. 이혼이라는 인생의 큰 어려움을 만난 손미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며 그간의 아픔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번 여행을 이야기하며 “힘든 기억을 뜨거운 아르헨티나로 던져버렸다”고 했다.
“많이 힘들어할 때,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아프고 힘든 일들, 기억들은 숨겨두려 하지 말고 찬란히 빛나는 태양 아래로 던져라. 그렇게 되면 그늘조차 없을 것이다’라고요. 이혼이란 저에게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기억입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상처받은 제 영혼을 치유하면서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만 해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경제부국이었다. 지금도 국내 자원만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다. 그러나 온 국민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았던 엄청난 경제위기를 수차례 겪으면서 아르헨티나는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연명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절망과 포기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고 음악과 춤을 즐기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보면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픔과 상처를 떠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배워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잃었는가를 생각하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남은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삶을 빚어나갈 것인가 하는 거죠. 때로는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한번 크게 넘어졌다고 해서 그대로 영영 주저앉아버리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니까요.”
손미나는 아르헨티나 역사의 풍파 속에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희망을 선물 받았다. 빛을 잃은 것만 같았던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당시에 전 인생의 커다란 도전과 고비를 동시에 맞고서 힘겨워하고 있었어요. 무너진 사랑으로 인해 모든 진실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렸고, 끔찍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어요. 누구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절망감, 어떻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아무도 나를 이해해줄 수 없을 것 같은 고독감까지, 이 모든 것들이 짓누르며 무너뜨리려 하고 있을 때 함께 울어주겠다고, 그 슬픔을 이해할 수 있다고, 그 정도 일쯤으로 쓰러져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안아주겠다고 아르헨티나가 이야기해주었어요.”

# 탱고를 추며 사랑을 배우다

“탱고는 사랑과 닮은 면이 있어요. 자신의 인생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온 마음을 주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이면서도 사랑하기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일이죠. 사랑을 이유로 제 모든 걸 던지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 완전히 몰입하지 않는 사랑은 있을 수 없으니까요.”
아르헨티나를 이야기하면서 ‘탱고’를 빼놓을 수 있을까. 뇌쇄적인 여인들이 가슴에 불을 지르듯 정열적으로 추는 탱고. 손미나 역시 그곳에서 탱고를 배웠다. 여행자가 무엇을 또 얼마나 제대로 배웠을까 싶지만, 그녀는 “온몸이 뻐근해질 정도로 수업을 받았다”고 했다.
“탱고를 출 때 여자에게는 다리가 하나뿐인 거나 마찬가지야. 다른 하나는 남자의 것이지. 꼿꼿하게 서야 하면서도 그에게 다리 하나를 완전히 맡겨야 해. 사랑할 때도 그렇잖아. 정말로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는 완전한 사랑이란 불가능하지.”
그녀의 탱고 선생 노라의 말처럼 손미나는 “탱고에서 인생과 사랑을 배웠다”고 했다.
“노라와의 탱고 수업을 통해 사랑과 인생에 대한 그녀만의 철학을 함께 배웠어요. 마치 심리치료를 받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죠. 탱고를 배우고 또 추면서 외로움을 가진 영혼과 그것을 받아주는 상대, 음악에 맞춰 자유와 행복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탱고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나 봐요(웃음).”

#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손미나는 지난해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10년 동안 1년에 한 권씩 여행 에세이를 출간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녀는 첫 번째 여행 에세이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통해 30대 초반의 직장, 싱글 여성이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딜레마를 용기 있게 헤쳐나간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를 통해서는 사연과 굴곡이 많으면서도 문화·예술적으로 꽃을 피우는 아르헨티나를 소개하며 희망 없는 시대에 용기를 주고 있다. 그녀는 에세이를 통해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아르헨티나 여행을 하는 동안 쓸데없는 고민과 마음의 짐들을 과감히 던져버릴 수 있었어요. 이번 여행은 잘못 들어선 내 인생의 길을 바로잡는 선택을 하는 데 용기를 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죠.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에너지를 느끼며 제 앞에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멋진 도전들을 기대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아무런 고비 없이 이어질 때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값진 경험을 했을 때 진정 그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세요.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칠전팔기 정신으로 끈질기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이 도시를 특별하게 하는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에 사랑과 미움을 함께 품게 되는 것일까. 그 안에 감추어진 비밀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리고 나는, ‘여행자의 영혼과도 같이 끝없이 떠도는 도시’라는 이곳의 비밀을 얼마나 발견하고 또다시 바람처럼 떠나게 될 것인지.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공포와 아픔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한 보르헤스처럼 이 나라의, 또 이 도시의 숨겨진 고통과 상처까지도 온 마음으로 사랑하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스며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를 나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중에서

* 부에노스아이레스_ 남미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아르헨티나의 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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