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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선영의 영국 통신
방송인 이선영의 영국 통신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3.09.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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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마주친 쇼윈도에는 엄마 모습을 한 내가 언뜻 비쳐집니다”
이선영 씨가 올 여름을 한국에서 보내려고 가족들과 함께 귀국했다. 가족과 친구, 음식이 그리웠지만 무엇보다
옛날 앨범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 빛바랜 앨범을 펼치는 순간 그녀는 펑펑 울어버렸다.
친정에서 다홍빛 앨범을 찾아냈습니다. 올 여름 한국에 가면 꼭 찾아보리라고 영국에서부터 벼르던 앨범입니다. 오래 접어 두었던 친정집 사진첩이건만 언제부턴가 내 가슴속에 터를 잡고 나를 툭툭 건드리는 묘한 앨범입니다. 정확히 1959년에서 시작되는 그 사진들 속에는 친정 부모님의 신혼생활이며 생김만으로는 사내인지 계집아이인지 가늠하기 힘든, 강보에 싸인 나와 잘생긴 언니의 모습도 들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책벌레이던 형제들이 매일같이 등이 꼬부라져 줄기차게 책을 읽던 때에도 나는 딴 짓을 하며 놀았습니다. 아랫동네가 내다뵈는 우리 집 담에 턱을 괴고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바로 이 앨범을 보며 기억해낼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상상을 보태곤 하던 게 나의 은밀한 즐거움이었습니다. 두 동생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시간들이 담긴 앨범, 틈나면 혼자 펼쳐보던 그 앨범을 왜 유독 어린 내가 좋아했었는지는 여태 잘 모르겠습니다.
영국에 살면서 바로 그 사진첩이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그리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한국에 나와 친정집에 들렀던 날, 나는 오로지 그 오랜 앨범을 찾아 지구를 돌아온 사람처럼 모든 식구들이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려 혼자 다홍빛 사진첩을 열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고 놀래고 감격하다 나는 끝내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모두 다 크고 늙어버렸다는 세월에 대한 허망함이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서글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정작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사진첩이 아니라 바로 그 앨범과 함께 간직했던 엄마의 모습이었고 엄마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던 겁니다. 내가 자꾸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 더 많이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나의 엄마였습니다. 사진 속 엄마보다 더 많이 나이 먹은 이 딸은 먼 외국 땅에 살면서 저도 모르게 엄마가 무시로 보고 싶었던 겁니다.

빛바랜 사진 속에 담긴 빛나는 나의 엄마
엄마는 펄쩍 뛰실 테지만 일흔이 낼모레인 친정엄마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뒤늦은 고백이지만 나는 엄마가 그렇게 고운 사람이란 것을 미련하리만큼 오래도록 모른 채 살았습니다. 너희 엄마가 하도 예뻐서 고등학교 때는 학생들이 엄마 교실로 구경 올 정도였다는 옛 동창 분들의 얘기도 우리 형제들은 무슨 거짓말 보탠 농담인 양 듣는 둥 마는 둥 했었습니다. 선영 선배는 아버지만 닮았나 봐, 하던 후배의 얘기도 노상 들어온 엄마에 대한 그 나물에 그 국밥 같은 소리려니 하며 신경도 쓰지 않았더랬습니다. 과연 몇십 년 만에 다시 본 앨범 속 우리 엄마는 참으로 고왔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에 담긴 빛나는 나의 엄마. 하긴 이토록 뻔히 보이는 엄마 모습도 제대로 못 알아본 내가 엄마의 속내며 그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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