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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KCM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가수 KCM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3.0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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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근육질 몸매를 부러워하지만 이 안에는 슬픔과 아픔이 있습니다”

대중은 스타들의 화려한 면만을 바라보곤 한다. 스스로 사람들이 주목하는 별이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아픔이 있었는지는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가수 KCM을 보면 언젠가 광화문 사거리에 걸려 있던 장석주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 없듯 그 역시 그 안에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를 안고 가요계 정상 언저리까지 올랐다. 그의 목소리가 유난히 깊었던 이유는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며 속으로 삭였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데뷔 8년 차가 됐다는 그는 한층 깊어진 음악만큼이나 더욱 성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소년가장,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밤샘 작업 탓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그. 피곤함에 입술까지 부르텄지만, 표정만큼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곧잘 볼 수 있었던 그 환한 웃음을 이내 지어 보인다. 꿈에 그리던 가수가 돼서인지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항상 행복하다는 그는 그 고됨마저도 즐거움이라고 했다.
방송에서 보여주던 그의 유쾌한 모습은 천성인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밝은 사람이라도 가슴속에 슬픔 하나씩은 묻어두고 사는 법. 그 역시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가슴 시린 추억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어머니께서 혼자 저희 삼 남매를 키우셨죠. 식당일과 부업 등 온갖 일을 하시며 정말 고생이 많으셨어요.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강창모,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만든 KCM, 그리고 늘 따르는 수식어가 ‘몸짱 가수’다. 180cm를 훌쩍 넘는 큰 키에 단단한 근육질 몸매는 그가 대중에게 더욱 빨리 어필하는 힘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실 브라운관을 통해 보던 그의 모습은 여느 스타들처럼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몸을 키웠으리라는 생각을 해보게 했다. 같은 남자가 봐도 너무나 멋진 모습, 게다가 환하게 웃는 치열마저 비담 김남길 못지않게 눈부실 정도였으니 시샘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그는 자신의 근육 안에는 남다른 아픔과 슬픔이 서려 있다며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에 남자가 저 하나뿐이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남다른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어머니와 누나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강해질 필요가 있었죠. 그때부터 육상, 헬스 등 운동을 참 열심히 했어요. 일종의 생존수단이었던 거죠(웃음).”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쓰기 미안해서 시작한 아르바이트 역시 그의 몸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초등학교 때는 어려서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는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은 기본으로, 그 나이에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였다. 늘 움직여야 했고, 제대로 쉴 틈 없이 뛰다 보니 남다른 체력과 근육이 절로 붙더라는 것.
“어린 나이였지만 집안일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습니다. 일과 운동에 몰두했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추억은 별로 없는 게 조금은 안타까워요. 큰누나하고는 여섯 살, 작은누나하고는 네 살 터울이에요. 우습지만 어렸을 때부터 제가 누나들의 보호자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은 놀다가 늦게 들어오면 누나들에게 혼났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누나들이 늦게 들어오면 잔소리를 했어요. 그러다가 누나들에게 맞기도 했지만요(웃음).”
말을 마칠 때마다 버릇처럼 미소를 지어 보인다. 더욱이 자신의 지난 시간이 쑥스럽고 자랑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하얀 치열을 내보이며 호탕하게 웃기까지 한다. 자신의 어려웠던 시간을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람… 아픔을 극복한 이들만이 지을 수 있는 여유로 다가온다. 

어머니에게 협박하지 않았으면 가수 KCM은 없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은 짧지만 기억은 뚜렷하다. 어린 아들에게 항상 친구처럼 대해주던 아버지. “내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다”라고 한 아버지의 말은 어린 가슴속에도 선명하게 새겨졌다.
“아직도 아버지와 함께 놀러 다니던 기억이 생생해요. 저한테는 친구 같은 분이셨어요. 아들이라고 각별한 애정을 주셨거든요. 원망스런 마음보다는 그리움이 커요. 만약 지금 아버지께서 제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을 하실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두 누나들이 결혼한 이후 그는 줄곧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오고 있다. 그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어머니의 말은 무조건 지키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아버지께서 술을 너무 좋아하셨어요. 술 때문에 건강도 잃으셨고요. 그래서 어머니는 제게 술, 담배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하세요. 저도 굳이 하고 싶지 않았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된 것 같아요. 주변에서 ‘착한 아들에 대한 부담이 있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그저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이런 그가 어머니의 말을 딱 한 번 어긴 적이 있다. 바로 가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수로서 어느 정도 알려지고 입지를 다져나가는 아들의 모습에서 어머니는 대견스러움에 마냥 흐뭇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제가 안정된 직업을 얻어서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셨어요. 처음에는 괜히 헛바람 들었다고 생각하셨죠. 어머니 말을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었지만, 가수가 되겠다는 꿈만큼은 접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못하게 하면 죽는다’고 협박(?)까지 해 어머니가 충격을 받으시기도 했어요. 최근 어머니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정말 잘못될까 봐 겁나서 못 말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렵게 이룬 꿈인 만큼 어머니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 힘이 들어도 쉽게 내색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 보니 소년가장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체력이 지금은 서서히 그 바닥을 드러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어제 밤새도록 곡 작업을 하다가 아침 9시가 돼서야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어요. 물론 많이 피곤하죠. 그래도 제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너무 행복해요. 그러니 몸이 힘든 것마저도 즐거워요.”
사실 그는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콘서트를 하던 도중 쓰러졌다. 5집 앨범 ‘Part1-Alone’을 발표하고 바쁜 스케줄과 밤샘 곡 작업으로 피로가 누적된 탓이었다. 병원에서 성대 결절 진단을 받고 두 달 정도를 쉬어야만 했다.
“몸이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한번 탈이 나니 컨디션이 계속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에요. 요즘에도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일이 잦기도 해요. 덩치는 큰데 몸이 이러니 남 보기 창피하기도 해요(웃음). 그래도 많이 호전되고 있으니까 큰 걱정은 안 해요.”

실제 첫사랑 속죄하며 만든 노래 ‘하루가’ 뉴 버전
두 달 동안이나 노래를 부르지 못해서인지 그는 무대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컸다. 최근 5집의 타이틀곡 ‘하루가’를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그. 디지털음반의 활성화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곡들이 쏟아지고 있는 탓에 “이번 앨범은 이미 김빠졌다”고 만류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 앨범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좀 쉬었다가 파트2로 나올까도 했는데, 팬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셔서 파트1의 타이틀곡 ‘하루가’를 뉴 버전으로 만들어 다시 활동하게 됐어요.”
그는 전 소속사와 결별 후 8년간 가수생활을 하며 틈틈이 준비했던 1백여 곡들 중 모니터링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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