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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색 스쿨버스 타고 길 위를 달린다
자주색 스쿨버스 타고 길 위를 달린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5.24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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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자는 대로
지구별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는 히피가족의 행복한 이야기”


영화기획자, 시나리오 작가, 요가강사, 농사꾼, 명상가, 테라피스트, 힐링 마사지스트… 이 모든 것이 박은경 씨의 삶의 궤적을 따라 붙은 ‘직업’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95년 그녀는 한국에서의 경쟁적인 삶에 지쳐 인도로 훌쩍 떠났다. 그녀는 요가와 명상을 배우며 생활하는 수행센터 ‘아쉬람’을 찾았고, 그곳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인도명상에 빠져 있던 어머니를 따라온 19세의 금발머리 청년과 서른둘의 동양 여자는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렀다. 
“어릴 때부터 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영적인 자유에 대한 갈구가 강한 편이었어요. 인도로 뜨면서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학교 공부와 반복적인 직장생활 속에서 만족을 모른 채 달려왔던 제게 주고 싶은 선물이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그때 인도로 간 것은 인도가 저를 큰소리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남편과 시어머니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떠나고 싶을 땐 깃털처럼 가볍게
현재 남편 바바와 열세 살짜리 아들 쿠온과 함께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는 박은경 씨는 떠나고 싶을 땐 깃털처럼 자유롭게 떠나고,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질릴 때까지 머무는 히피의 삶을 살고 있다. 스쿨버스를 개조한 자주빛깔 카라반을 타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1∼2년씩 머무르기도 한다. 남편 바바는 “적게 벌면 적게 먹고 저승 갈 때는 빈손으로 갈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라고.
“남편과 아들 쿠온은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디에 갖다놓아도 항상 ‘즐거운 여행 중’인 사람들이에요. 인생 자체가 바로 이벤트죠.”
남편 바바는 학창시절 목공예 시간이 제일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 가구 만드는 일과 인테리어 꾸미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고, 요즘은 친구들과 친환경 집짓기에도 열중하고 있다. 박은경 씨는 요가를 가르치고 번역일을 하며 한국 유학생의 하숙도 하고 있다. 인도에서 배운 아유르베다와 치유마사지를 가르치는 일도 병행하느라 바쁘게 보내고 있다.
남편과 처음 만나게 된 인도의 아쉬람을 떠나기 며칠 전, 명상을 하던 그녀는 편안함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느꼈다. 그 소리는 “Be playful. Don’t be serious!”였다고. “심각하게 살지 말고 즐겁게 놀아!”라는 분명한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박심각’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던 박은경 씨는 그 후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로 아쉬람에서 받게 된 이름 역시 그녀의 결심을 굳혀주었다. 그녀의 새로운 이름은 산스크리트어인 ‘지반 켈리(Jivan Kheli)’. 인생이라는 뜻의 ‘지반’과 놀이, 즐거움을 의미하는 ‘켈리’가 결합되어 ‘오! 즐거운 인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박은경 씨는 이름처럼 오늘도 신나게, 재미있게 삶을 즐기고 있다. “떠나 있으나 멈춰 있으나 인생의 시계는 똑같이 흘러간다”라는 생각으로 의기투합하는 부부의 여행에는 아들 쿠온도 함께다.
“세계 어디서나 영어가 통하긴 하지만 아직도 그 나라 말을 조금 알아야 할 경우가 있어요. 외국어를 사용하는 기쁨은 ‘단순함’인 것 같아요. 말을 잘 모르니 단순하게 살게 되고 의사소통에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되거든요. 침묵으로 통해야 하니까 상대방의 눈빛을 더 자주 보게 되고, 그 사람을 느껴야 하니까 사람 자체에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되죠.”

길 위에서 자라난 아이, 쿠온
아들 쿠온의 이름은 아일랜드 고어인 갤릭어로 바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히피 바이러스’를 가진 엄마, 아빠 때문에 첫돌이 되기 전부터 길 위의 삶을 시작한 쿠온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호주대륙,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쑥쑥 자라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거의 대부분 길 위에서 맞았던 쿠온. 인도에서 잉태되어 타스마니아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첫돌을 보냈다. 첫 걸음마를 시작한 것도 가족의 자주색 스쿨버스 안이었다. 인도에서부터 호주의 타스마니아섬, 바이런베이, 인도네시아의 발리, 한국, 호주의 시드니로 옮겨 다니는 가족의 방랑 덕분에 쿠온은 초등학교 시절 다섯 번이나 전학을 해야 했다. 학교를 한 학기 쉬면서 인도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미국, 일본, 동남아 등지로 몇 달씩 세계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카라반 파크나 호텔, 여관, 어디론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보내서인지 쿠온은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한 덕에 적응력 하나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적응의 천재’이기도 하다.
“쿠온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 있어요. 지난해에 ‘한국에 1년 가 있자’라는 말을 우리 부부가 꺼냈을 때였어요. 그전에는 어디를 가자고 해도 잘 따라오더니 1년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호주 친구들을 떠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더군요. 그날 저녁 훌쩍거리며 잠든 쿠온을 보고 ‘미안해 쿠온’이라고 속삭였던 것 같아요. 한국으로 가는 데에는 쿠온의 한국말과 문화체험이라는 목표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한번 오래 살아보고 싶다는 제 욕심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쿠온이 한국에서 무척 적응을 잘해서 ‘미안해’라는 말은 무색해졌어요(웃음).”
떠나고 머무르는 생활의 반복 속에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삶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욱 풍부해진 것 같다는 박은경 씨. 아들 쿠온 역시 인종과 종교를 떠나 인간을 이해하는 세계인으로 자라서 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엄마로서의 바람이다.
“저에게 떠남이라는 의미는 내가 머물렀던 자리를 둘러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떠나는 삶과 머무는 삶 두 가지가 빛과 그림자처럼 해의 다른 각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머무는 삶이 말하는 것이라면, 떠나는 삶은 듣는 것이에요. 남의 이야기를 듣고 저 자신의 이야기도 듣는 거죠. 이제는 삶 자체를 명상으로 여기며 살아가려고 하지만, 사실 계속 돌고 도는 일상이란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렵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여행은 반드시 멀리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일단 자기가 머물던 환경에서 벗어나면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이나 개인의 고통 같은 것이 아주 사소하고 무의미해지거든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삶이 좋은 삶이다
‘정착하지 않은 삶’은 그녀에게 늘 ‘좋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할 기회를 주었고, 다른 이들의 ‘좋은 삶’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해줬다. 박은경 씨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필리핀의 보라카이섬에서 지낼 때, 섬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루 일하고, 그 돈으로 밤새 술 마시고 춤추고, 다음 날은 시원한 나무 밑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는 사람들. 돈이 필요하면 다시 일하고, 또 술 마시고, 춤추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한 가지 일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일을 생각하며 바쁘게 살았던 그녀로서는 단순하게 살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행복을 저축하기 위해 불안한 잠을 잔 밤이 얼마나 많았던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과 자녀교육, 새 차, 내 집 마련… 우리는 끝없는 달리기를 하고 있고 또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자녀가 모두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다른 것을 돌볼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세상이 주는 감각의 즐거움은 순간적이고 한계가 있어요. 그것이 새 차이든, 집이든, 맛있는 음식이든, 달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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