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2:45 (금)
 실시간뉴스
조수빈의 사람산책-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서른 살 앵커의 인생에 행복한 눈을 맞추다
조수빈의 사람산책-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서른 살 앵커의 인생에 행복한 눈을 맞추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5.24 0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수진은 내일 그만둔다고 해도 후회가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당장 무대를 떠날 일은 없다. 이는 우리에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세계 최고의 발레단 슈투트가르트의 프리마 발레리나의 모습을 최대한 사랑하고 즐기지 못한 이들이 세상에 아직 많으니 말이다.

“단 한 번도 다른 삶을 동경해본 적이 없어요. 무대 위에서 완전히 몰입하려면 오히려 현실에선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지요. 그런 점에서 결혼은 내게 아주 큰 선물이에요.”
터키 태생인 남편 툰치 소크멘은 강수진과 같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15년 동안이나 함께해온 선배이자 동료. 따라서 둘의 만남은 운명이라기보다는 생활에 가까웠다. 남편은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첫눈에 하늘이 보내준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난 어릴 때부터 목표를 세우면 끝내 그걸 이루고 마는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의지의 한국인’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독종’인 셈이다. 하지만 내 목표였던 뉴스 앵커의 꿈을 이룬 뒤, 또 사랑도 2순위로 미뤄가며 어느새 서른이 된 뒤, 내 삶에 대해 조금의 콤플렉스를 느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나는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예쁜 아기를 낳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뉴스에 나오는 세상 이야기는 잘 알지만 인생에 대해선 모르는 게 많은 건 아닌지, 가끔 내 자신에게 묻곤 했다.
그 질문의 횟수가 점점 늘어날 때 강수진을 만난 거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어쩌면 난 혼자 선입견을 갖고 있던 게 아닐까. 여자에게 성공과 행복은 양립할 수 없는 거라고….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이 아름다운 여인은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최정상의 발레리나이자 한 남자에게 마음껏 사랑 받는 아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이런 선배 여성이 있어서….


#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
조수빈 ‘갈라’ 공연을 막 끝냈는데, 어떤 기분인가요.
강수진 약간 힘들었지만 관객들 반응이 너무 좋아 만족해하고 있어요. 과거는 과거이니 이젠 독일로 돌아가서 내 예전 패턴대로 생활해야겠죠. 
조수빈 다시 돌아가서 오랫동안 해온 연습을 또 해야 한다니 지겹지 않으세요.
강수진 지겨우면 벌써 그만뒀겠죠. 이 생활은 성스러운 생활이에요. 아침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행복한 일상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발레는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상이에요. 난 한번 사랑하게 되면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남편도 마찬가지예요.
조수빈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강수진 어머니에게 물어봤는데, O형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네요(웃음).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고, 내 갈 길 묵묵히 가는 걸 보면 O형이 맞는 것 같아요.
조수빈 성품도 그렇겠지만, 무대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힘은 남편의 사랑도 한몫한 것 같아요.
강수진 난 복이 많은 것 같아요. 부모님은 내게 축복 같은 분들이시고, 언니, 여동생, 남동생 모두 이상적인 형제들이에요. 다들 유학의 경험이 있어서 우리 가족은 다 함께 모인 적이 별로 없어요. 떨어져 있으면서 늘 같이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도 그리움 때문인 것 같아요.
조수빈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교장선생님도 가족 같은 분이라 알고 있어요.
강수진 마리카 베소브라소바(Marika Besobrasova) 교장선생님은 제 인생을 코디해주신 은인이세요. 기숙사 생활 3년 반, 그리고 마지막 1년은 교장선생님과 함께 살면서 발레뿐 아니라 제 인생을 길라잡이 해주셨어요. 무엇보다 저 자신을 찾는 데 많은 길을 열어주셨죠. 재능이 있어도 그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딴 길을 가게 되거든요.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하자 뉴욕, 영국 등에서 저를 픽업해 가려 했는데, 선생님은 “아직 준비가 안 된 아이”라며 절 모나코로 다시 끌고 가셨어요.
조수빈 더 다양한 무대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강수진 난 기분 나쁜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에요(웃음). 그러고 보니 성격이 진짜 O형 같네요. 교장선생님은 지금 나이가 94세쯤 되셨어요. 오래전부터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차를 몰고 비엔나, 플로방스, 로마, 베니스 등을 데리고 다니셨죠. 그리고 가는 도시마다 박물관 등을 견학시키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무대 위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어요.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영감이랄까.
조수빈 김연아 선수가 브라이언 오서 코치를 만나서 행복한 스케이터가 됐다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요.
강수진 맞아요. 코치라는 게 중요하죠. 히딩크 감독을 보세요. 어느 팀을 가든 최고로 만들잖아요. 기술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원래 잘했던 김연아 선수가 더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코치의 역할이 분명 주효했다고 생각해요.

매일 아침 20분간의 호흡명상을 한다는 그녀.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요가 스트레칭이다.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맞는 요가동작을 재구성하여 이를 스트레칭 요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발레는 육체를 고난도의 기법으로 다루는 예술이기에 늘 준비작업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다치기 쉽다.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세기의 발레리나에게도 그 준비에서는 게으를 수 없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의 힘듦과 아픔쯤은 이제는 일상적으로 껴안아야 하고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과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약간은 그 길이 고단하고도 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순간 도무지 인체의 일부분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진 그녀의 유명한 발. 책 제목처럼 ‘당신의 발에 입을 맞추고 싶습니다’라고 외쳐주고 싶어졌다.

 
 # 고요하지만 열정으로 시작되는 일상
조수빈 슈투트가르트에서도 늘 아침 7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고 들었어요. 오늘도 이른 인터뷰를 위해 일찍 일어났어야 했는데 힘들지 않은가요.
강수진 원래 이 시간에 일어나요. 그런데 조수빈 앵커가 힘들겠어요. 늦게까지 뉴스를 하는 것을 본 것 같은데….
조수빈 아, 제가 뉴스 하는 거 보셨어요?
강수진 그럼요. 한국에 있으면 뉴스는 보게 되죠. 게다가 KBS 9시 뉴스 앵커가 저를 만나러 온다니 당연히 관심이 생기던데요.
조수빈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일과는 어떻게 되세요. 전 사실 저녁 뉴스를 진행하고 나면 그 여파(?) 때문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거든요.
강수진 그러고 보니 우리 둘, 비슷하네요. 나도 공연하고 오면 늦게 자는 편이에요. 그런데 늦게 일어나지는 않아요. 별로 잠이 없어요. 이른 시간 일어나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죠. 그리고 강아지들과 산책 등을 하고 연습실이 있는 극장으로 향하죠.
조수빈 오늘도 그럼 명상과 스트레칭을 했나요?
강수진 그럼요. 명상과 스트레칭을 못하면 외출을 안 할 정도로 몸이 힘들어요. 커피 한잔 마시고 다시 마음을 잡고 평소대로 한두 시간 정도 저만의 방법으로 몸과 정신을 가다듬으면 하루가 편해요. 그러면 지금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 기분 좋게 하루를 열 수 있게 되고요.
조수빈 때로는 철두철미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가요.
강수진 사람인데 왜 안 그러겠어요. 그런데 성격 자체가 대나무 같다고 해야 하나, 한길만 보고 걷는 편이에요. 
조수빈 발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발레리나 강수진의 성공은 여러 통로를 통해 알고 있어요. 특히 부상을 숨기고 연습하던 그 정신력, 그리고 화제가 된 발사진 등이 있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