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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을 딛고 ‘멋진 아빠’로 살아가는 이광기
깊은 슬픔을 딛고 ‘멋진 아빠’로 살아가는 이광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6.14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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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기를 만난 곳은 여의도의 월드비전 사무실이었다. 그는 아이티를 돕기 위한 자선경매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눈물로 마음을 몇 차례나 씻어내서일까. 눈에선 눈물이 마르지 않지만, 그만큼 눈은 정화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5월은 가정의 달이잖아요. 새삼 아들에게 고마워지더라고요. 7년 동안 우리 가족에게 큰 행복과 사랑을 줬는데,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 천사(석규)가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많이 주는구나. 살았을 때도 큰 선물을 주더니만, 사랑과 나눔이라는 선물을 또 주는구나 하고요.”
아들을 하늘로 올려보낸 지 만 6개월. 그는 한동안 말을 멈추고 흐르는 눈물만 닦아냈다. 살아 있다면 올봄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아들이 서툰 솜씨로 카네이션을 만들어 가슴에 달아주었을 거란 생각에 가슴 한쪽이 저려오는 듯했다.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아요. 아이가 필리핀에 있을 때 일이에요. 한국으로 전학 오기 전 다니던 현지 학교에서 작별인사를 한 뒤, 빈 교실에서 아이들의 가방을 뒤지고 있더라고요. 혹시 친구들의 물건에 손을 대는 건 아닌가 염려스러워 다가갔죠. 알고 보니 친한 친구들의 가방에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몰래 넣어주고 있었더군요.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아이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석규야, 네 친구들 도우러 가자”
이광기의 외동아들이자 막내인 석규(당시 7세)는 지난해 12월 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한 급성 폐렴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그것은 어느 문자 한 통 때문이었다.
“지난해 그 일이 있고 난 후 문자를 많이 받았어요. 친하지 않은 분들도 격려 문자를 많이 보내주셨죠. 그러던 중 어느 한 분이 성경구절과 함께 문자를 보냈는데, 눈에 확 들어왔어요. 알고 보니 정애리 씨더군요. 평소 큰 안면이 없었지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어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잡지를 보다가 정애리 씨가 소외되어 있는 나라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봤어요.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온몸에 전율이 흘렀죠. 그 아이를 품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어요. 정애리 씨는 월드비전을 통해 많은 아이들을 돕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아이들을 만나 도와주고 싶었어요.”
월드비전에서 “어떤 아이들을 후원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고민이 많이 됐다. 그러다 주방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벽에는 딸 연지와 석규의 키재기가 그려져 있었다. 2009년 10월 28일은 석규의 마지막 키재기를 한 날이었다.
“이왕이면 석규와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을 돕자고 생각했어요. 우리 아들이나 마찬가지 모습일 테니까요. 그렇게 2003년생 아이들을 후원하게 됐어요.”
그는 2월 초 “큰돈은 아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이름으로 기부를 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며 아들의 사망 보험금 전액을 아이티 긴급구호 후원금으로 기부했다. 자식을 잃고 슬퍼하고 있을 많은 아이티의 부모들을 생각하며, 후원금이 소중하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였다. 2월 11일에는 아이티에 직접 가 일주일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아이티에 지진이 났던 1월에는 석규를 보내고 많은 분들로부터 격려를 받았던 시기예요. 그때 마침 KBS ‘사랑의 리퀘스트’팀에서 아이티에 함께 가자는 제의를 해왔죠. 제가 힘들어할 때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잖아요. 아이티 참사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무언가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티행을 결심했을 때는 속으로 ‘석규야, 네 친구를 도우러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석규의 사진과 입던 옷을 깨끗이 빨아서 가져갔다. 그곳에서도 아들과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이름으로 아이티 돕기 계속할 것
그는 아이티에 ‘Love & Bless’라는 문구와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 2백 장을 만들어 갔다. 삐죽삐죽 하늘로 솟은 머리카락과 둥근 얼굴,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는 그를 꼭 닮았다. 그림은 석규가 지난 10월에 직접 그린 그림이다. 평소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아이는 특히 아빠의 웃는 얼굴 그리기를 잘했다. 이광기는 “티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는 현지 아이들을 보면서 가져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석규가 살아 있다면 아이티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아이티를 갈 때 ‘석규야, 우리 가서 아이티 친구들을 도와주자. 이 옷이 그곳 아이들의 슬픔과 절망을 막아주는 갑옷이라고 생각하자’라고 기도하며 짐을 꾸렸어요. 아빠의 입장에서 석규가 아이티 친구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주위에서는 티셔츠 판매기금으로 아이티를 돕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혹시라도 의도가 잘못 전해질까 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곳 아이들에게 티셔츠를 선물하면서 ‘우리 석규가 원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들이 좋아했던 그림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5월 7일 서울옥션 스페이스 전시장에서 열린 아이티 돕기 자선경매 ‘We believe HAITI’는 결심의 결과다. 자선경매는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아이티에 다시 한 번 힘을 보태자’는 의미에서 열렸다. 이광기는 평소 친분 있는 화가 50여 명으로부터 작품을 기증 받았다. 해외 화단 (畵團)에서 인정받는 화가뿐 아니라 구혜선, 하정우, 박상원 등의 동료 연예인들도 기꺼이 작품을 기증해주었다. 경매기간 중에는 티셔츠도 함께 판매되었다.
이번 자선경매의 주최는 월드비전과 Kevin이다. Kevin은 석규의 영어 이름이다. 애초 자선경매를 기획할 당시 월드비전이 작성한 기획서에는 이광기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하나, 자신보다는 아들의 이름을 적는 것이 맞는 것 같아 바꾸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도 아들의 이름으로 아이티가 조금이라도 재건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나눔을 계속하고 싶은 바람이다. 
“며칠 전 아내가 운영하는 학원 화단에 바람을 타고 날아왔는지 노란 꽃이 피었더군요. 집 앞 화단에도 그렇게 피어 있어요. 5년 동안 한 번도 꽃이 핀 적이 없었는데… 신기했어요. 가족끼리 등산을 가면 꺾어와 제게 건네며 엄마에게 주라고 했던 그 들꽃이었거든요. 석규가 우리 가족과 늘 함께한다는 생각에 기쁘고 감사했어요.”
그는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에서 지구촌 아이들의 아버지로 거듭나고 싶어했다. “아이티에 초등학교도 지어주고 고아가 된 아이들과 결연도 맺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석규가 이 땅에서 겨우 7년 동안 살았지만, 그 아이의 사랑과 나눔의 뜻은 제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방송 복귀,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의 선택
인터뷰 중간 중간 많은 눈물을 흘렸던 이광기. “아들의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는 그는 여전히 슬픔 가운데 있어 보였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이문세가 진행을 맡은 SBS 교양 프로그램 ‘사랑해요 코리아’에서 대한민국 스타 홍보 사절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나뿐인 아들을 떠나보내고 너무 쉽게 방송 복귀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다. 하나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슬픔에 잠겨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털어놓은 그. 힘이 들지만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며 슬픔을 이겨내는 길을 택한 것이다.
“저도 제가 예전처럼 즐거워하며 방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딸에게 아빠란 존재가 무엇일까를 고민해보니 철은 없지만 밝게 놀아주는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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