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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로 인생 2막을 연 1세대 패션모델 이희재의 싱글라이프를 엿보다
화가로 인생 2막을 연 1세대 패션모델 이희재의 싱글라이프를 엿보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8.0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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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90년대 큰 인기를 누리며 정상의 패션모델로 활동했던 이희재. 스무 살 때 방직협회가 주최한 ‘목화 아가씨’ 선발대회에서 1등으로 뽑히며 모델로 데뷔한 후 김동수, 루비나 등과 함께 패션모델이라는 직업을 대중에게 알린 국내 1세대 모델이다.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던 그녀는 1990년대 후반 모델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아름다워지는 비결을 알려주는 차밍스쿨 ‘와이낫(Why not)’을 13년간 운영하며 TV와 라디오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93년에는 책 ‘아름다운 여자 : 이희재의 차밍스쿨’을 통해 ‘이희재 다이어트’ 열풍을 일으키며 뷰티 아이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숨 가쁘도록 활발한 활동을 해온 그녀지만 한동안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랜만에 들려온 소식은 놀랍게도 화가로 변신했다는 것이었다. 7월 2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청담동 갤러리 ‘살롱 드 에이치’에서 열리는 그녀의 첫 개인전은 그간 쌓아온 화가 인생의 방점이다. 그녀를 닮은 듯한 회화(繪畵)들은 캔버스를 뛰쳐나올 듯 화려하고 생동하다.
전시 준비에 한창인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그녀의 작업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맨 위층이었다. 회오리처럼 생긴 층계를 오르려는 순간 의외로 물감냄새가 났다. 화가로 변신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왠지 패션과 뷰티를 주도해온 그녀에게선 향수냄새가 날 거라 생각했나 보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소파와 의자에는 색색의 물감이 묻어 있고, 바닥에는 팔레트와 물감 등이 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림을 그리며 독신의 삶을 즐기다
모델 일을 접은 후 차밍스쿨과 방송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다고 말한다. 몸이 아파 강의도, 방송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모두 그만두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혼자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다.
“10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그린 건 6년 전 이 작업실을 얻으면서부터고요.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했는데, 그때 크로키나 스케치 같은 걸 배워둔 터라 기본기는 있었죠.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걸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잘한다’고 격려를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겨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웃음).”
처음에는 ‘집에 예쁜 그림을 걸겠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그림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좀 더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개인교습으로 3년간 그림지도를 받았고, 2006년에는 그룹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녀의 소질을 알아본 큐레이터들은 개인전 제의를 해오기 시작했다. 화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개인전이었지만,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룹전에 참가할 때도 그림만 걸었지 전시장에는 가지 않았어요. 그림은 저 자신을 표현하는 거고, 그런 그림을 내보인다는 건 벌거벗은 채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과 같거든요.”
의외였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하나 그림을 본 순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림은 이희재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런 그녀가 ‘루이와 레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이제는 보여줄 때다 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무대에 서기 직전이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에요. 다른 모델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긴장을 풀지만, 저는 담배를 못 피우니까 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쳐요. 이미 다 된 화장 위로 또 한 번 덧대어 하는 거죠. 손이 덜덜 떨려서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화장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거예요. 아마 전시할 때도 그렇게 떨릴 거예요.”
이번 전시의 소재는 말(馬)이다. 그녀가 ‘루이(Lui)’와 ‘레이(Lei)’라고 부르며 의인화한 말들이 화폭에서 살아 움직인다. 루이와 레이는 이탈리아어로 ‘그’와 ‘그녀’를 뜻한다. 그와 그녀라… 무언가 숨은 뜻이 있을 듯해 물었다. 그녀는 “처음엔 루이만 그렸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 마리(루이)만 그리는 것을 보고 주위에서 ‘왜 한 마리만 그리느냐’며     ‘억지로라도 두 마리씩 그려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고 ‘외로우면 한 마리 더 그려넣자’고 그린 것이 레이예요. 그래서 루이와 레이, 그와 그녀가 된 거죠. 하지만 전 루이에게 더 애정을 쏟는 것 같아요. 수놈이라서 그런가(웃음).”
패션과 아트를 아우르는 그녀답게 이번 전시는 독특하게 구성된다. 그녀의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금의 일부는 이웃을 위한 자선활동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전시 첫날에는 이희재의 그림을 넣은 티셔츠와 패션디자이너 한혜자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여름 의상을 선보이는 패션쇼 무대를 연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결혼할 생각 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에어로빅장으로 향한다. 한 시간 동안 신나게 땀을 뺀 뒤 샤워를 하고 곧장 작업실로 향한다. 아침 겸 점심으로 작업실에 와서 사과와 빵을 먹고, 저녁까지 작업에 몰두한다.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것은 이러한 자기관리 덕분이다. 살이 조금만 쪘다고 생각되면 음식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린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노하우. 이순(耳順)을 앞둔 나이에도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나 다름없이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녀. 하지만 아직 독신이다.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법도 한데 의외였다.
“20대 때 결혼을 다짐한 사람이 있었어요.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인연이 아니었나 봐요. 이후 서른여덟 살까지는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서른아홉 살 때 남자를 찾아보려고 했더니 좋은 사람은 다 결혼하고 없더군요(웃음).”
화려했던 패션쇼 무대의 조명이 꺼지면 늘 공허한 마음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삶을 살아왔지만 외로움도 마음 한 켠에 존재한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결혼할 생각이 있다. “완벽주의 탓에 남자가 있어도 불편해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노코멘트”.
대화를 하다 잠시 쉼표를 찍은 사이 고개를 들어 그녀 뒤편을 바라보았다. 면사포를 쓴 레이가 루이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결혼 안 한 것을 후회할 때도 있어요. 여자는 남들 하는 거 다 해보고 살아야 해요. 가장 부러운 것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이들 키우면서 사는 여자예요. 그런 평범한 여자의 삶이 가장 부러워요. 하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을 해도 외로움은 있잖아요. 사람들이 그건 뼈를 깎는 것처럼 아프대요. 요즘엔 오히려 저를 부러워하는 여성들도 많던데요(웃음)?”

 

 

(발문)
“모델 일도 멋지게 해냈고,
이렇게 그림도 그리게 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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