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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또 다른 꿈 ‘싱글맘’ 핸드볼 스타 임오경,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될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다”
모녀의 또 다른 꿈 ‘싱글맘’ 핸드볼 스타 임오경,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될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8.0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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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밖에서는 180도 바뀌는 여자, 이제는 소소한 일상과 행복을 누리고 싶다’

모녀가 함께하는 도산공원 산책길. 손을 꼭 잡고 산책하는 모습이 자매지간처럼 다정해 보인다. 뽀얀 피부에 오밀조밀한 이모구비, 부드러운 미소, 거기에 패션감각까지 겸비한 임오경 감독.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여성스러운 외모다. 핸드볼은 몸싸움이 심하고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스포츠다. 그만큼 ‘여전사’의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임 감독은 그 상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잘 아는 사람들은 천생 여자라고 해요. 요리하는 거 좋아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설거지부터 방 청소까지 다 해놓고 잠을 자는 성격이거든요. 핸드볼팀 선수들에게도 늘 얘기하죠. 시합과 연습이 끝나면 여성으로 돌아가라고요(웃음). 여자 운동선수 하면 모두들 우락부락한 얼굴, 남성스러운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잖아요.”
평소에는 세민이와 집 근처 석촌호수 길을 자주 걷는다는 임 감독은 특히 울창하게 뻗은 소나무 사이사이를 좋아한다. 산책 도중 세민이가 엄마를 앞질러 뛰어갔다. 모녀는 가위바위보를 하며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팔목을 힘껏 때리기도 했다. 세민이의 강한 승부욕은 엄마를 똑 빼닮은 것 같다.

자녀 교육에 누구보다 엄격하다
“세민이가 언어에 관심이 무척 많아요. 일본에서 태어나서 미국 학교를 다녔거든요. 아홉 살 때 한국에 들어와서 외국인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일본에서 친구가 오면 일본어로 통역해주곤 한답니다(웃음).”
외국어를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지원해주고 있는 엄마는 앞으로도 중국어와 스페인어 두 언어를 더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밤 딸의 공부를 봐주는 일은 빼놓지 않는다.
공부뿐 아니라 엄마를 닮아 운동신경이 발달한 세민이는 스포츠에도 소질을 보인다. 몸을 움직여야 뇌 활성에 더 좋기 때문에 방과 후에는 주로 운동을 시킨다는 엄마는 그동안 골프, 수영, 인라인, 농구, 축구까지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세민이를 보기만 해도 흐뭇해진다. 사교성이 좋은 세민이는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세민이가 친구랑 싸워도 딸아이 편을 안 들어요. 무언가 원인 제공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세민이를 야단칩니다. 세민이가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거든요. 일본에서 태어났을 때 9년 동안 제가 주로 데리고 다녔어요. 어른들과 같이 생활하다 보니 애어른이 된 것 같더라고요. 무척 어른스러워요.”

첫 여성 감독인 만큼 첫 단추 잘 끼우고 싶어
초등학교 시절 키가 크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임 감독은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핸드볼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공을 잡은 이후 한국 여자 핸드볼의 전성기를 이끌며 대표적인 여성 스포츠 스타가 된 임 감독은 강인한 체력, 절묘한 패스와 슛으로 코트를 장악했다.
16년 전 한국체대 졸업과 동시에 일본 히로시마로 떠난 임오경 감독.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히로시마 이즈미(현 메이플 레즈)는 그녀가 합류하고 1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됐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25세의 어린 나이에 플레잉 감독 자리까지 꿰찼다.
“세민이를 낳기 전까지 경기에 출전했어요. 출산 후에도 갓난아이를 바구니에 데리고 다니면서 활동했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예요. 한숨만 절로 나오죠.”
1994년부터 일본 히로시마 이즈미의 선수 겸 감독으로 몸담으며 14년간 일곱 번의 우승을 이루어냈다. 그녀는 2년 전 서울시청 여자 핸드볼팀 감독직을 수락하며, 또 한 번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영화 ‘우생순’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 핸드볼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구기종목이다 보니 ‘여자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선입견이 있다는 것도 잘 알아요. 초심을 잃지 말고 더 열심히 잘하자는 각오입니다.”
임 감독은 서울시청 여자 핸드볼팀 감독을 맡은 지 1년 조금 지나서 열린 2009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이변을 연출해냈다. 그것도 기존 실업 2위 팀을 꺾은 것이다. 감독인 그녀가 선수로 직접 나서며 열정을 발휘했다. 당시 선수가 많지 않은 데다 부상자도 너무 많았던 탓에 본인 스스로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일에서만은 완벽을 추구합니다. 선수들 트레이닝하는 것도 하나하나 다 봐주죠. 연습을 열심히 해야 시합에 나가서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도 늦추지 않아요. 어려운 환경에서 연습을 하고 경기에 우승을 하면 그만큼 더 뿌듯한 게 없잖아요.”
사실 구기종목의 유일한 여성 감독이어서 부담도 된다. “가정과 일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는다”고 강조하는 그녀는 핸드볼팀 감독으로 돌아오면 악바리로 돌변한다고.
“첫 여성 감독인 만큼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팀과 똑같이 가고 싶지는 않아요. 여자 감독의 특별한 색깔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동안 선배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있는 셈이죠. 운동할 때만큼은 진짜 독할 정도로 이를 악물고 하지만, 운동이 끝나면 선수들을 잡아놓지 않아요.”

사랑하는 남자에게 요리를 해주는 여자이고 싶은 마음
“세민이 아빠하고는 헤어진 지 2년이 조금 안 됐어요. 그런데 제대로 가정을 꾸려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세민이 아빠를 만나 결혼하는 과정 자체가 남달랐거든요. 아이 아빠가 프러포즈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그때 그 사람이 복막염에 걸린 거예요.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하려면 보호자가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보호자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됐어요.”
배드민턴 선수였던 남편도 결혼 후 일본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임 감독이 소속된 히로시마와 무려 800km나 떨어진 곳이었다. 월말 부부가 된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생겼다. 갓난아이를 바구니에 넣어 데리고 훈련장에 나갈 정도였으니 당시 그녀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전남편과 가정다운 가정을 일구지도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지난날. 임 감독은 지나온 시간을 이야기하며 한순간 눈물 많은 여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딸 세민이에게도 마냥 미안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입장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된 가정을 한 번이라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의 삶에 시너지를 얻고 있는 것은 밝게 잘 자라고 있는 세민이의 모습이다.
“작년에 세민이한테 모든 걸 말해줬어요. 아빠는 엄마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고 있다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떳떳하게 얘기하라고 말해줬어요. 예전엔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아빠를 만났는데, 아빠 얼굴을 못 본 지 2년이 다 돼서인지 이제는 아빠를 찾지 않더라고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그동안 모든 어려운 일을 스스로 해온 임 감독.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찌개가 가장 맛있다”는 세민이의 말처럼 실제로도 요리를 잘하는 임 감독은 참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남편에게 요리를 해주고, 남편에게 사랑도 받는 여자이고 싶은 소망이다.

발문

“가정을 제대로 꾸려본 적이 없었죠. 싸우고 헤어진 것도 아니다 보니 결혼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아침밥 챙겨주고, 와이셔츠 만져주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어요. 무엇보다 세민이에게 좋은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저 또한 여자로서 사랑 받으며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싶고요”

사진캡션

- 박사과정을 앞두고 교수의 꿈을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임 감독은 그 어떤 청사진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코트에서 일군 꿈마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인생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갖춰진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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