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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월드컵 세계 3위 이끈‘지메시’ 지소연 선수 & 어머니 김애리 씨의 희생과 열정
여자월드컵 세계 3위 이끈‘지메시’ 지소연 선수 & 어머니 김애리 씨의 희생과 열정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9.1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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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좋아하는 딸 위해 모든 것 다 바쳐… 힘든 살림에 자주 닳는 축구화가 미운 적 많아”


유례없는 무더위로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던 여름날, 온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소식이 들려왔다. 독일에서 열린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이 세계 3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전까지 사람들의 무관심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 꿈을 키워온 소녀들이기에 세계 3위라는 기록은 국민들에게 1위에 버금가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특히 여섯 경기에서 여덟 골을 기록하며 최우수선수 부문 2위와 득점 2위를 차지한 지소연 선수는 순식간에 국민 여동생으로 등극했다. 161cm의 키에 아담한 체구이지만 경기 운영 능력이나 기술은 해외 프로리그의 남자선수 못지않아 요즘에는 지소연이라는 이름보다 ‘지메시’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국제축구연맹은 그녀를 두고 “지소연의 활약으로 한국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눈에 띈 축구소녀
90분 동안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며 폭발적인 드리블과 날카로운 슛을 날리는 지소연. 수비수 두세 명이 따라붙어도 웬만해서는 쉽게 볼을 뺏기지 않을 정도다. 그녀의 타고난 축구감각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지소연이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다. 당시 짧은 머리를 한 그녀가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눈여겨본 축구부 감독이 남자아이로 착각해 축구부 전단지를 건네면서 축구 인생은 시작됐다. 주위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무슨 축구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초등학생 시절 지소연의 실력은 이미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그녀는 한 인터뷰를 통해 축구에 푹 빠져 있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때는 하루 종일 축구 생각만 했고, 공을 차면서 노는 게 가장 좋았어요. 공부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축구만큼은 가장 오래 끈기를 갖고 할 수 있었어요.”
초등학생 때 그녀를 가르친 김광열 감독은 단체로 벌을 받거나 훈련을 할 때 축구부에서 유일한 여자 팀원인 지소연을 배려해 열외로 빼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왜 자신만 남자아이들과 차별하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오히려 당황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축구에 대한 열의와 끈기로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남자아이들을 제치고 늘 주전선수 명단에 들었다. 심지어 당시 다른 팀 감독들이 그녀가 있는 이문초등학교에 “남자선수 서너 명과 지소연 선수를 맞바꾸자”는 제안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오주중학교로 진학한 그녀는 현재 U-20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인 최인철 감독과 사제지간이자 때로는 부녀지간처럼 지금까지 함께해오고 있다.
동산정보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년에는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선수처럼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여 이미 그때부터 ‘지메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지소연은 현재 한양여대 2학년 졸업반이다. 학교에서는 공식 훈련이 하루에 두 번 있지만 그녀는 훈련이 끝난 뒤에도 저녁에 웨이트 트레이닝 등 개인운동으로 몸을 다진다.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불평 없이 묵묵히 해온 훈련은 그녀만의 비결이다.
“몸이 왜소하기 때문에 웨이트 훈련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보약이라 생각하고 이틀에 한 번은 꼭 하죠.”
그녀는 동기와 후배들 사이에서 ‘어머니’로 통한다. 대표선수가 된 이후로 축구협회에서 받는 축구화와 유니폼이 남으면 동기나 후배들에게 건네주는 마음 따뜻한 친구이자 선배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넉넉한 상황이 아닌데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마음 씀씀이는 아마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 월드컵이 끝나고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그녀는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어머니 이야기와 함께 쏟아냈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저 때문에 너무 고생하셨어요. 엄마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어요.”

딸 위해 인생의 모든 것 건 엄마
지소연이 세계가 주목하는 축구선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온 어머니 김애리 씨의 인생은 희생과 사랑, 인내의 시간이었다. 자신보다 딸과 아들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를 위해 지소연은 “찜질방이 딸린 집을 꼭 선물하고 싶다”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초등학생 시절 축구부 전단지를 들고 온 딸에게서 어머니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지소연의 부모는 처음에 그녀가 축구하는 것을 반대했다. 축구는 남자아이만 하는 운동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평소 엄마의 말이라면 한 번도 어기지 않던 딸이 이유 있는 고집을 부리자 김애리 씨는 결국 뒷바라지를 감당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자신 역시 초등학교 4학년 때 핸드볼을 했다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2년 만에 포기하고 중학교까지도 도중에 그만둬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만큼은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운동을 그만두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당시 봉제공장에서 버는 돈의 절반을 온전히 딸을 위해 써왔다.
“하루 열두 시간 넘게 봉제공장에서 미싱일을 해서 번 돈으로 소연이를 키웠어요. 빠듯한 살림에 두 달만 되면 닳아 떨어지는 축구화가 정말 미운 적도 많았죠.”
지소연이 열한 살 되던 해, 나라 전체가 2002 월드컵으로 떠들썩한 분위기였지만 그녀의 집은 어머니가 자궁암 판정을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려 수술을 했지만 수술 후에는 난소종양 등 각종 합병증이 생겨 몸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어려운 살림에 건강까지 안 좋아지자 부부간에는 불화가 생겼고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됐다. 이혼 후 어머니는 지소연과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남동생을 데리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 보조금 30만원을 받으며 생활했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올해부터는 동대문구 이문동의 60㎡(약 18평)의 연립주택에 들어가 살게 됐다. 하지만 미싱일을 하다 찾아온 허리디스크에 만성 근육통까지 더해져 몇 달째 일을 쉬고 있는 상태다.
“다른 선수들 부모들은 다 경기장에 가는데 저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요. 소연이가 경기장에 오면 더 아플까 봐 못 오게 했죠. 매번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하지만 늘 열심히 뛰는 소연이를 보면서 빨리 건강해져야겠다고 다짐해요.”
기자와의 만남에서 “까맣고 조그맣던 아이가 훌쩍 커서 이제 여자가 다 되었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던 김애리 씨. 한국에 돌아오면 남자친구도 한번 사귀어보고 결혼도 일찍 하라고 말하지만, 지소연은 “엄마 아픈 것 다 치료하고 동생 대학교까지 졸업시킨 뒤 서른 살이 넘어서 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수명이 짧은 여자 축구선수로 가장 잘 뛸 수 있는 시기에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것을 지소연은 사치로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지소연은 한국 여자축구 최초로 미국 여자프로축구리그(WPS) 진출을 꿈꾸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해외 팀도 여럿이다.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 속에서 아프고 힘들었던 만큼 이제는 온 가족이 웃음 짓는 날들만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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