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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영입 희망 1순위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한눈팔지 않는 삶
정치권 영입 희망 1순위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한눈팔지 않는 삶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9.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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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돈보다는 명예가 더
중요한 사람이고,
명예보다는 내 마음 편한 것이 더 중요한 사람”

세계적인 보안전문회사 안철수연구소를 세운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는 의사 출신의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도 유명세를 탔다. 1988년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 중에 우연히 ‘브레인 바이러스’를 접한 그는 바이러스를 퇴치할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후 7년간 컴퓨터 백신을 만들기 위해 의학 공부와 컴퓨터 공부를 병행했다. 1995년에는 안철수연구소를 세워 안정된 의사의 직업을 포기하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2005년까지 대표이사를 맡고, 미국에서 MBA 과정을 거친 후 현재 카이스트 (KAIST)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안 교수가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이유는 자신보다는 회사를, 회사보다는 사회를 위한 생각과 실천을 오랜 시간 일관되게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대박을 노리는 일부 벤처 사업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그의 경영철학은 ‘정직, 성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였다. “회사를 창업하고 경영하는 것이 돈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돈 때문에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일이 생기면 굉장히 자존심 상할 것 같다”고 밝힌 그는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회사를 경영해 벤처업계의 신망이 높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IT업계, 나아가 사회 전체에 큰 울림을 남기며 반향을 일으켰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MBA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떠났던 것도 사회에 조금 더 기여하고 싶은 사명감에서였다. ‘무릎팍도사’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당시 회사 사정은 굉장히 좋았어요. 매출도 최고를 기록하던 해였고요. 그런데 한편으로 저를 괴롭히던 생각은 제가 경영하는 한 회사는 잘되고 있는데 다른 벤처회사들은 어려웠다는 것이었어요. 혹시 내가 내 능력을 산업 전반으로 쓸 수 있으면 어떨까, 그 생각을 하게 됐죠.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해볼 만하다 싶었어요.”

정치권의 거듭된 손짓에도 번번이 고사
국내 굴지의 보안전문회사를 10년 동안 경영한 사업가이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도 그는 단 한 번도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참 괜찮은 사람”, “정말 맑고 투명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가 TV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그야말로 ‘안철수 신드롬’이 일기도 했다. 그동안 게스트로 초대된 인기 연예인들을 제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데다 출판계에는 ‘무릎팍 효과’로 불릴 만큼 안 교수 저서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사회와 세상에 대한 사명감, 권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겸손한 성품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안철수 교수야말로 나라의 지도자감이다”라는 소감을 시청자 게시판에 남기기도 했다. 사회적인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그에게 정치권에서 관심을 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안 교수는 정치권으로부터 수차례 영입 제의를 받아왔고, 이번 내각 개편을 앞두고도 총리 후보로 떠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확고한 의지 때문인지 이번 개각에도 그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안 교수는 학교가 방학에 들어간 7월 초 미국 필라델피아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기업가 정신에 대해 연구하며 시간을 보낼 계획으로 출국했다.
안철수 교수가 정치에 뛰어들어 ‘깨끗한 정치’를 보여주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아서일까. 각종 인터뷰에서 늘 “정치를 할 생각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는 한 강연에 참석했다가 “안 교수가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다”는 말에 속내를 털어놓았다.
“참여정부 시절에 정보통신부 장관 제의를 받았고,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한나라당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할 자신이 없고 힘(권력)을 즐기지 못하기에 거절했어요. 저는 실무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안 교수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도 “내가 한다고 잘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나 자신이 없다. 성공 확률이 낮다고 본다”면서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그런 마음은 먹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잠재적인 대권 후보’라는 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듣보잡’이라고 할 것”이라며 “황당한 얘기”라고 웃어넘겼다. 이번 총리 기용설 역시 그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많은 이들의 바람(?)이 빚어낸 해프닝으로 끝났다. 안철수 교수는 언론사들의 연락이 잇따르자 안철수연구소 홍보팀을 통해 “어떤 곳에서도 의사 타진이 없었다”며 “과분한 인정은 감사하지만 결코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Make a difference’가 나의 꿈
CEO 시절부터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책의 종류도 다양하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한 기술서적부터 에세이, 경영서…. 책을 많이 낸다는 것은 할 말이 많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책을 쓰고 나면 불편하기도 하고 후회를 한 적도 있다는 안철수 교수. 노출증 환자도 아닌데 너무 속마음을 다 드러내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꾸 책을 내다 보니 익숙해졌고, 막상 숨길 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책을 통해 그의 흔적을 남기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유독 책과 인연이 깊었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한 것 같다. 스스로도 책 중독을 넘어 활자 중독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안 교수는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회사를 운영할 때 독서를 통해 배운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활자에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글을 깨치고 나서부터 활자광이 되었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냐면 책을 읽을 때 발행일, 편집인, 심지어는 정가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렸어요. 책을 보는 방법도 좀 남달랐는데, 전 스토리보다는 사람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소설이나 역사책에서 그 인물이 다양한 환경에서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의대 다닐 때는 몰랐는데 회사를 운영하면서는 그렇게 책을 본 게 상당한 도움이 되더라고요. 원래 이쪽 업계에서는 CEO가 의사면 투자를 안 한다는 게 원칙이었어요. 그만큼 의사는 조직에 대해 서툰 측면이 있다는 얘기죠. 사람에 대한 이해, 포용력 등은 모두 책을 통해서 배운 것들입니다.”
안철수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말을 했다. 자신의 말이 세상을 바꾸는 작은 단초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크로마뇽인이 그린 벽화를 후대 사람들이 보고 ‘아, 그때 누군가 살아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듯이 나(我)라는 존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입니다. 책을 써서 남기는 것도 흔적이고, 나의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의 생각이나 사회 제도가 바뀐다면 그것도 좋은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영어로 메이크 어 디퍼런스(make a difference)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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