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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기도했던 김수미 '내가 체험한 정말 이상한 사건들'
자살기도했던 김수미 '내가 체험한 정말 이상한 사건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3.04.1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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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까지 포기하고 지켜준 남편이 없었으면 지금쯤 중이 되었을 것이다”

영원한 일용이 엄마 김수미가 너무도 솔직한 고백에세이 ‘나는 그 해 봄 중이 되고 싶었다’를 펴냈다.
남편의 외도와 시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자신도 믿을 수 없었던 신비로운 빙의 체험과 자살기도까지, 폭풍과도 같았던 지난 삶을 반추하며 그녀가 써내려간 너무도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빙의로 가정이 풍비박산 일보직전까지 갔던 신비한 체험

이 이야기는 너무나 신비로워 나 자신도 믿을 수 없기에 아꼈다가 이제야 고백한다. 가족들과 ‘전원일기’ 출연자들은 지난 2년 동안 내가 미쳐 있었다고 한다. 방송가에선 나에 관한 소문들이 끊이지 않고 떠돌아 다녔다. 알코올 중독이다, 중풍이다, 미쳤다…. 남편은 자신을 찾아온 기자들에게 부탁했다.
“맞다. 가끔씩 미친다. 두 달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다 받아봤지만 의학적으로는 밝혀낸 게 없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들이 있고, 이제 스물세 살이 된 딸 아이도 있다. 김수미가 미쳤다는 기사가 나가면 신문이 조금 더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자식들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기자들은 나에 관한 기사를 일절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한동안 미쳐 있었다. 빙의! 한자어대로 풀이하자면 안절부절 못 해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뜻이다. 불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말이다.

‘익사나 살해나 교통사고를 당해 갑자기 억울하게 죽은 혼백이 유주무주(有住無住) 고혼이 되어 갈 곳을 찾지 못하면 머물기에 적당한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내어 미혹하고 싸늘한 영체를 그곳에 숨기게 되는데 그로 인해 영체가 들어간 곳은 흉기가 되고, 영체가 들어간 사람은 빙의가 된다.’


시어머니의 죽음으로 찾아온 빙의

카톨릭 신자인 내가 이런 믿기지 않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시어머니의 죽음 직후였다. 시어머니는 4년 전 내 차에 치여 돌아가셨다. 시어머니가 식사를 하시면 아침밥을 먹지 않는 나는 그 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동무가 되어드리곤 했다. 시어머니는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인텔리로 친정도 매우 윤택하고 일본여자처럼 예의도 발랐다. 내 남편을 유복자로 키우면서 사업을 시작하셨고 일선에서 물러난 뒤로는 여행으로 소일하며 편안하게 지내셨다.
그날 아침에도 시어머니는 냄비 바닥에 신 김치를 깔고 지진 고등어가 너무 맛있어서 다이어트를 하려 해도 너 때문에 할 수가 없다고 하시며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셨다. 사흘 후면 내가 직접 각본을 쓴 모노드라마가 공연될 예정이었기에, 아는 분들께 나눠주어야겠다며 포스터 몇 장을 들고 나가셨다.
어머니가 나가고 10분이나 지났을까.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데 가슴이 뛰고 이상하게 불안했다. 전화 벨소리의 주인공은 기사 아저씨였다. 길 건너 주유소에 있는데 빨리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뛰어나갔다. 경찰차를 지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보니 어머니 머리에서 쏟아진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울거나 기절을 하는 게 정상일 텐데, 어찌 된 게 눈물은커녕 그냥 소름이 끼치도록 차분해졌다. 급발진이 원인이었다.
어머니의 죽음 후 사람들은 몹쓸 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하시다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며 나를 위로했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시기엔 너무 젊고 건강하셨다. 초상을 치르는 동안 나는 내내 급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에 기가 막혔다. 어머니의 시신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밥을 먹을 수가 없었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부간이었음에도 어머니와 나는 각별한 사이였다. 남편과 싸우고 내가 집을 나가버리면 어머니는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어멈이 다 옳아요. 유복자라고 아범을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래” 하시며 며느리 화풀어지라고 내 방 꽃병에 꽃꽂이까지 해주셨다. 내가 공연을 하게 되면 혹시라도 관객이 들지 않을까봐 다니던 교회며 친구,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가 수백 장의 티켓을 팔아주시기도 했다.
나에게 어머니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몇 개월이 흘러도 내 상태는 나아지질 않았다. 만사가 다 귀찮아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가서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드라마 섭외가 들어왔지만 ‘전원일기’도 빼달라고 해야 할 형편이었다. 심지어 주방으로 물 마시러 가는 것도 귀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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