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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연 극사실 회화의 대가, 지석철 화백
개인전 연 극사실 회화의 대가, 지석철 화백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8.09.05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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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다 더 정교한 극사실 회화의 거장 지석철 화백이 그의 작품 인생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개인전을 열었다. 가장 차가운 기법을 통해 따뜻한 감성을 끌어올리는 지 화백을 만나 그의 작품과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취재 백종국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 갤러리로부터 그의 작품에 대한 자료를 받기 전까지 기자는 그를 오브제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 사진작가로 알고 있었다. 가끔 언론을 통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지만 그를 화가라고 정정할 수 있는 단서를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편견이란 무서운 것이다.

바로 국내 극사실 회화의 대가인 지석철 화백(65)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흔히 ‘쿠션 작가’ ‘의자 작가’로 알려져 있다. 40년 동안 의자 하나만 심도 있게 파고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의자 작품을 한 번쯤은 언론을 통해 접했을 것이다. 지난 5월 19일부터 6월 23일까지는 서울 강남의 소피스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볼 기회도 있었다.

<부재의 서사 A Narrative of Absence>라는 제목을 단 지석철 화백의 전시회는 그의 그림인생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신작 22점과 함께 해외에서 전시되거나 국내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핵심 작품들도 선보였다.

특히 1970년대말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반작용>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200호 그림도 두 점이나 내걸려 관심을 모았다. 매우 오래된 소파, 닳아 헤진 소파의 등받이를 그린 <반작용> 시리즈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진짜가 가까 같고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그림이다.

한국 극사실 회화 초반기의 대표작으로 1978년 중앙미술대전에서 그에게 대상 없는 최고상을 안겼던 <반작용>은 80호 종이에 색연필로 그려졌다. 종이로는 80호 이상의 그림을 제작할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가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캔버스에 오일로 그린 200호 크기의 <반작용> 연작이 새로 선보여 감회를 새롭게 했다.

 

사진보다 더 정교하게 그리는 화가
“<반작용>은 지금은 없어진, 홍익대 앞 유정다방의 소파를 클로즈업해서 그린 것이었지요. 척 클로스라는 유명한 하이퍼리얼리즘 작가의 500호 크기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아 더 크게 그리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평생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200호 크기의 2점을 내걸며 소원을 풀었습니다.”

지석철 화백은 200호 크기의 작품 하나를 그리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했다. 소파 가죽의 주름, 흠집 하나하나까지 세필로 표현해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장인정신으로 버텨냈다고 떠올렸다. 조수를 두지 않는 그로서는 애초에 다작은 꿈도 꿀 수 없을 듯했다.

<반작용>은 단순히 낡은 소파의 등받이 가죽을 그린 것이었지만, 소파에 앉았다가 사라진 숱한 사람들의 부재(不在)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산업화시대의 물질주의 만연으로 우리 모두가 영혼을 상실했던 1970~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개인적 상실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대 주류인 추상미술, 개념미술, 단색회화에 반발한 지석철 작가는 형상 있는 그림을 그리기로 하고 대상의 물성감을 살리기 위해 1960년대 미국에서 태동한 극사실 회화(하이퍼리얼리즘)의 기법을 끌어들이고 한국적 체험을 내용으로 담았다. 미국의 극사실 회화가 그림을 사진처럼 기계적으로 그린다면 당시 한국의 극사실 회화는 감성과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주 익숙한 사물들도 그림의 대상으로 선택되면 돌연 비일상적인 존재감을 갖게 되며 의미가 부여된다.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한다고 할 정도로 사진에 버금가는 묘사를 실행하는 극사실 회화는 그에 좋은 방법이다. <반작용>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그림을 그로테스크 하게 만들고 다른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이런 지석철 작가의 작업 기법은 1982년 파리비엔날레에 한국대표작가로 참여하면서 쿠션에서 의자로 그 대상이 변화된다. 평면보다는 오브제로, 동양적인 재료로 어필할 재료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실 대상을 극소화한 ‘미니 의자’라고 했다. 미니 의자는 기능을 다하지 못 하는 의자로서 일일이 배나무 가지 껍질을 벗겨 공예적 수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의자의 표정이 하나하나 다르다.

파리에 이 미니 의자 300개를 가지고 가 반석 위에 가지런히 전시했는데 참가국 130개국 작품 중 베스트 10에 선정될 만큼 인기를 모았다. 그 인기로 인해 북유럽 순회전시도 펼칠 수 있었다.

“미니 의자는 인간 존재와 동의어입니다. 각박한 현대 상황,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하고 의미하고 있지요. 1개의 미니 의자가 외로움, 고독이라면 군집화 된 미니 의자는 우리들의 초상입니다. 그 미니 의자는 존재에 대한 기억과 소중함, 만남과 이별,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밀려오는 고독, 존재가 꿈꾸는 희망의 메시지들을 불러일으키며 사랑을 받았습니다.”

작가는 미니 의자가, 의자가 아닌 또 다른 어떤 것이어도 좋을 존재의 표상으로 읽혀지길 바라며 그 후 40년이나 이에 천착했다.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는 경운기와 1000개의 미니 의자를 전시한 작품 <어느 부재의 사연>으로 관심을 모았다. 배우 홍경인을 새긴 판화와 많은 미니 의자를 전시해 이문열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패러디하기도 하고, 화면에 미니 의자를 배치하여 프랑스 작가 마그리트 작품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또 프랑스 니스 해변을 배경으로 많은 의자를 부려놓는 낡은 트럭을 오브제와 회화로 각각 제작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헬리콥터나 목선을 오브제로 활용하는 대형 입체작품도 기획 중에 있다. 그의 미니 의자는 회화, 판화, 사진, 입체, 설치 등 장르를 넘나들며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며, 나무 청동 아크릴 왁스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매너리즘을 매체로서 극복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니 의자의 탁월한 내러티브 즉 서사 효과 때문이다. 미니 의자는 인간 사랑 세월 꿈 욕망 희로애락 등 사라져 간 것들에 대해 우수를 느끼게 하며 인간사의 수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소멸된 것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 심지어 그것들의 화려한 부활을 꿈꿔 본다.

 

40년간 의자 하나에만 파고든 이유
지석철 화백은 1953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몰락한 집안이었지만 교육열이 대단한 그의 부모로 인해 7남매 중 막내인 그도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다녔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마산은 예향으로 그는 바다를 보며 서정성을 키우고 작업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 현대적인 기법을 쓰는 작가의 작품에서 애잔한 서정성이 물씬 묻어나는 밑바탕이 고향 마산인 것이다.

젊은 시절 ‘묘사의 명수(名手)’로 불릴 만큼 정치하게 물상을 묘사하는 능력을 인정받았던 지 화백은 자신의 재질을 살려 극사실 회화 기법을 장착하며 이 분야의 대가로 자리 잡았다. 그의 기법은 얼음처럼 차갑지만 작품 전체에는 따뜻한 감성이 흘러넘친다.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다른 여러 가지이기도 했던, 작가의 아이콘인 의자는 현대적 인간 군상을 표현하는 탁월한 메타포였다. 의자라는 사물은 어떤 형태로든 주어지기만 하면 관객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면서 작품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쳤다.

단순 명징한 이미지로 깊고 그윽한 삶의 내면풍경을 드러내는 기량, 다양한 조형 수단을 통해 인간의 이야기를,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을 감성적 시어체로 표현해내는 역량으로 그는 오늘의 작가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호암미술관 등을 비롯해 대영박물관, 와카야마현립근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 화백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두 자녀에게 물려주는 데에도 성공했다. 아버지의 강요 없이도 딸과 아들은 미술을 전공하고 부친의 모교인 홍익대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특히 순수미술 쪽 추상화를 전공한 아들 지근욱 작가는 올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품을 판매하는 등 촉망받는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올 상반기 홍익대 미술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지석철 화백은 새로운 상황을 앞두고 한껏 들떠 있다. 시간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작업을 더 열심히 하고 지인들을 만나며 여행도 떠나겠다는 계획이다.

“솔직히 교수와 작가를 겸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미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작가로서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보여주려 노력했지만 부족했다는 생각입니다. 더욱 더 작품에 매진하고,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영상비디오 작업도 시도할 것입니다.”

지난 1970년대 한국에서 저급한 미술 사조로 취급되었던 하이퍼 리얼리즘. 최근에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재평가 되며 제2세대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자리하고 있다. 요즘의 경향은 미국식에 접근하고 있는데 제1세대 작가인 지 화백은 이에 대해 다소 우려를 표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나 관심도가 낮은 상황에서 지 화백은 하이퍼 리얼리즘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바랐고, 어려운 길을 택한 후배 작가들과 미술학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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